세메냐의 싸움이 제2막에 들어섰다. 여자냐, 남자냐의 논쟁을 벗어나 호르몬과의 전쟁이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스위스 연방법원이 여자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28·남아프리카공화국)에게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춰야 육상 800m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31일(한국시각) 전했다. 스위스 연방법원은 앞서 6월에는 재판 기간에는 제한 없이 각종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고 했다가 뒤집었다.
올림픽 여자 800m에서 2연패를 일군 세계 1위 세메냐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추라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결정에 반발해 올해 스위스 연방법원에 항소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지난해 세메냐에게 지구력과 함께 스피드가 필요한 400m~1600m 종목에 출전하려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춰야 한다고 결정했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도 세메냐 쪽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위스 연방법원의 결정으로 세메냐는 9월 열리는 2019 카타르 도하 세계육상대회 800m에 출전하지 못할 전망이다. 5000m 등 장거리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제한이 없지만, 세메냐는 주종목 800m에 집중하고 있다.
세메냐 쪽은 이에 대해 “세계대회 800m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싶었는데 출전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 여자 선수의 인권을 위해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세메냐 쪽 변호사는 “경기는 결승선에 도달할 때 결정된다”며 불복의 뜻을 밝혔다.
세메냐는 피임약 등을 복용해 인위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의 수치를 낮추면 출전하도록 한 국제육상경기연맹의 결정을 반인권적이라고 보고 있다. 진화론이나 문화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명확한 구분은 없으며, 양성을 공유한 사람도 많다는 주장도 있다. 또 여자 가운데도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높은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양으로 남녀를 구분하는게 옳으냐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세메냐는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한다. 절대로 약물 투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은 공정한 경쟁을 위해 세메냐가 혈액 1리터당 5나노몰 이하로 최소 6개월간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유지해야 출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자의 경우 7.7나노몰에서 29.4나노몰, 여자는 통상 2나노몰 이하의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연방법원의 재판은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결정이 번복되지 않으면 2020년 도쿄올림픽 800m에서 3연패를 노리는 세메냐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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