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알바레즈는 지난 2014 소치겨울올림픽에는 미국 쇼트트랙 대표선수(왼쪽)로 2020 도쿄올림픽에는 야구 대표팀으로 출전해 두 개의 은메달을 땄다. AP 연합뉴스
“여름에도 이기고∼ 겨울에도 이기고∼ 그∼랬다, 정말 그랬다∼”
트로트 가수 류기진의 ‘이겼다’ 가사 일부다. 해외축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승리의 만족감을 표출하는 ‘밈’으로 자리 잡은 이 노랫말처럼, 여름에도 이기고 겨울에도 이긴 올림픽 영웅들이 있다. 종목을 바꿔가며 여름, 겨울올림픽에서 모두 메달을 거머쥔 변신과 도전의 대가들이다.
대기록의 첫 장을 장식한 인물은 미국의 에디 이건이다. 이건은 1920 앤트워프올림픽에서 복싱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올랐고, 1932 레이크플래시드겨울올림픽에서 서른이 넘어 시작한 봅슬레이로 두 번째 금메달을 땄다. 여름과 겨울 두 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을 수확한 선수로는 90년이 흐른 지금도 그가 유일하다. 이건은 1·2차 세계대전 당시 모두 장교로 복무했고 짬짬이 예일·하버드·옥스퍼드에서 법을 공부한 변호사이기도 했다. 그는 1983년 미국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같은 해 열린 두 올림픽에서 메달을 수집한 선수도 있다. 동독의 스케이터 크리스타 루딩은 이미 1984 사라예보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를 제패한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는 뒤이어 1988 캘거리겨울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500m 은메달, 1000m 금메달을 땄고, 겨울올림픽이 끝난 지 7개월 만에 서울올림픽에서 사이클로 은메달을 추가했다. 사이클은 스케이트를 타지 않는 비시즌에 연마한 것이었다. 1994 릴레함메르겨울올림픽부터 여름, 겨울올림픽 주기가 바뀌었기 때문에 루딩의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과 루딩처럼 계절과 종목을 가리지 않고 메달 사냥에 성공한 선수는 역사상 6명뿐이다. 스키점프 초대 챔피언(1924)인 야코브 툴린 탐스(노르웨이)는 1934년 베를린에서 요트 은메달을 땄다. 10대 때부터 빙상을 동경해온 클라라 휴스(캐나다)는 먼저 사이클로 동메달(1996년)을 딴 뒤 2002년 스피드스케이팅 은메달을 추가한 경우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육상 유망주 로린 윌리엄스는 2012년 런던 대회 때 여자 400m 계주 금메달, 2014년 소치 대회 때 여자 2인승 봅슬레이 은메달을 땄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프로야구(MLB) 엘에이(LA) 다저스의 내야수 에디 알바레즈가 지난해 도쿄에서 야구로, 7년 전 소치에서 쇼트트랙 남자 4000m 계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실 이들의 올림픽 성취는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 1920년 앤트워프 대회 금메달 이후 이건은 복싱 체급을 올려 1924 파리올림픽에 나섰다가 1회전에서 탈락했고 4년 뒤 봅슬레이 선수로 변신했다. 윌리엄스가 육상에서 봅슬레이로, 알바레즈가 스케이트에서 야구로 넘어온 계기도 부상이었다.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기회 앞에 망설이지 않았던 결단이 그들을 더 오래 빛나도록 만들었다.
계절과 종목의 경계를 넘어 올림픽에 도전한 선수는 지금껏 144명에 이른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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