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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누구나 자기만의 천재성을 갖고 있다

등록 2009-04-14 10:40

‘천출 백만장자’ 현실에선 신데렐라일뿐

기득권에 편입한 졸부의 시샘이 더 슬퍼

 

 

한국에서 슬럼가의 사람들은 갈 곳 없이 쫓겨나 죽어가고 있는 때 슬럼가 천지인 한 인도인이 백만장자가 되는 영화가 각광을 받고 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다. 영화는 슬럼가에서 자란 차이왈라(차를 나르는 심부름꾼) 소년이 인도 텔레비전 인기 퀴즈쇼에 출연해 승승장구해 백만장자가 된다는 이야기다. 학교에 다닌 적조차 없어 퀴즈 문제를 도무지 풀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소년 자말이 계속 퀴즈를 맞춰 상금을 축적해가자 이를 시기한 사회자의 고발로 경찰은 자말을 데려와 고문을 하면서 무슨 속임수를 쓴 건지 자백하라고 압박한다. 그 누구도 퀴즈쇼 문제 하나하나가 인도의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슬럼가에서 그가 직접 겪은 이야기 속에 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자말은 엄마와 형 살림과 슬럼가에서 살아왔다. 엄마가 종교간 폭동으로 힌두교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둘은 버려진다. 살림은 슬럼가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는 자선사업가로 위장해 아이들을 맹인으로 만들어 구걸을 시켜 이를 착취하는 놈들의 마수에 걸려든다. 동생 자말을 데려오게 한 놈들이 자말의 눈을 멀게 하려는 찰라 살림은 동생의 눈에 부어질 뻔한 뜨거운 약물을 놈들의 얼굴에 던지고 극적으로 도망쳐 기차를 탄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친형제자매처럼 지내온 라띠까는 그 기차를 타지 못한 채 붙잡히고 만다. 살림은 그들을 이용하려 했던 놈들과 다름없는 이들의 하수인으로 들어가 슬럼가의 개로 살면서 백만장자를 꿈꾼다. 그러나 자말은 오직 두고 온 첫사랑 라띠까를 잊지 못하다 결국 그를 찾아 나서고, 퀴즈쇼에서 승리해 백만장자가 되고, 악의 구렁텅이에서 첫사랑마저 구해내는 해피엔딩이다.

 

계급의 오만, 헌법은 헌법일뿐

 

화면을 가득채운 슬럼가의 모습을 보니 다시 인도에서 느꼈던 그 불편한 감정들이 고개를 내민다. 장기간 인도 여행을 하면서 인도 중부 도시 푸네역에서 남부 께랄라주 트리반드롬까지 40시간이 넘는 기차를 타고 갈 때였다. 인도의 기차역은 늘 구걸을 하기 위해 몰려든 슬럼가들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 정거장에서였다. 바로 내가 앉은 좌석 창밖에서 얼굴이 희멀겋고 조그만 사람이 얼굴이 아프리카 흑인에 가까울 만큼 검고 덩치가 큰 사람의 뺨을 철썩철썩 때리고 있었다. 맞고 있는 사람은 한눈에도 천민이었고, 때리는 사람은 최고 계급인 브라만으로 보였다. 인도에서는 차려입은 모습과 태도만 봐도 어느 계급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검은 사람은 몹시 억울하다고 울상이었다. 그런데도 그 폭력에 맞설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은 인도의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인도 헌법상엔 이미 평등의 기초가 놓여지고, 오히려 공무원 등의 임용에서 천민에게 특혜를 주도록 돼 있지만, 수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관습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다. 그런 관습을 석가도, 마하비라도, 마하리쉬도, 간디도 어쩌지 못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즉 권력과 부와 지식까지도 독점한 사람들은 특권계급이다. 별다른 투쟁과 갈등 없이 자자손손 승계되는 계급이다. 그 계급은 타인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쳐놓은 장벽이다. 그들은 교육에서도 ‘자유로운 경쟁’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부와 권력으로 자신의 자녀들이 쉽게 자신이 가진 것을 세습할 수 있는 체제를 고수한다. 그들은 기득권층이 가진 절대 우위의 환경에서 확보하는 ‘일부 지식’을 우위의 증거로 영재와 둔재를 갈라야 한다는 신념을 일반 대중들에게 주사한다.

 

백만장자 촌놈보다 더 그리운 건 ‘행복 순교자’

 

나는 ‘시크릿’이란 책을 읽은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진짜 시크릿은 누구나 자기만의 천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성현들이 모두 공개한 바이니 시크릿(비밀)도 아니지만.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뒤 한 첫마디도 “누구나 지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니 안타깝다”는 것이었고, 예수의 말도 “너 자신의 그런 권능이 있음을 알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급적 우위, 즉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천재는 천재고, 둔재는 둔재며, 기득권 자제가 가진 ‘일부 분야’의 우위를 일평생 동안 고정화시키기 위한 분리를 일찌감치 하기를 원한다. 남은 시간 더 이상 피곤하지 않게. 우리 인간의 대부분의 잠재의식은 무한하며, 뛰어난 극소수조차도 우리가 가진 능력의 10%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언설은 현실에선 기득권의 신념 아래 묻히기 일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성과 계기와 기회를 만나면 분출해 나올 수 있는 거대한 지하수는 지상의 통로를 만나지 못한 채 썩고 만다. 그래서 슬럼가의 소년이 백만장자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애고아가 왕자님을 만나는 신데렐라가 되는 것만큼이나 지난한 일이다.

 

더욱 슬픈 것은 천행으로 백만장자가 되거나 기득권의 대열에 올라선 이들이 더욱 더 졸부근성을 발휘하면서 차별에 앞장서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슬럼가 출신으로 최고의 방송인으로 성공한 퀴즈쇼 사회자가 슬럼가의 촌놈이 자신과 같은 성공을 이루는 꼴을 결코 봐줄 수 없다며 자말을 파멸시키기 위해 안달한다. 기득권도 아니면서 기득권의 개가 되어 자말을 고문하는 형사들처럼. 그래서 동서고금을 보아도 상민 출신으로 최고의 지위에 올랐음에도 민초들을 잊지 않고 헌신한 남강 이승훈이나 백범 김구 같은 인물들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본산 미국보다 오히려 더욱 더 ‘부자와 기득권을 위한 정책’이 최우선시 되는 현재 우리나라에선 더욱 더. 그래서 인도에서나 한국에서나 그나마 동생과 동생의 연인 라티까의 행복을 위해 한 몸 바칠 수 있는 순교자가 백만장자가 된 촌놈보다 더욱 더 그리워진다.

 

조현 종교명상전문기자 cho@hani.co.kr

 

 

◈ 인도 헌법의 아버지 암베드까르

 

불가촉천민으로 차별 철폐 명문화

불교개종 운동으로 간디와도 맞서

 

 

근대 인도엔 그런 순교자가 있었다. 암베드까르(1893~1956)다. 근대 불가촉천민의 아버지인 그는 인도 독립 뒤 헌법기초위원장과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인도 헌법의 아버지다.

 

인도의 어디를 가나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인도에선 간디와 암베드까르의 생일을 국경일로 제정해 두고 있다.

 

암베드까르는 뭄바이와 푸네 인근 데칸고원에서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불가촉천민이었기에 교실 뒤쪽에 자리 한 장을 펴놓은 채 조용히 앉아 있어야 했고, 교실 안 물주전자에 손도 댈 수 없는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불가촉천민이면서도 영국군 장교로 군사학교 교장을 했고 교육열이 강했던 아버지 덕에 대학에 들어갔고, 미국과 영국, 독일에서 공부해 박사가 돼 돌아왔다.

 

암베드까르의 남다른 점은 많이 배우고 부자가 된 불가촉천민의 상당수가 지위와 돈을 배경삼아 상위 카스트로 탈바꿈하는 반면 그는 인도 초대 법무부장관으로서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 철폐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등 불가촉민의 해방을 위해 평생 몸 바친 점이다.

 

그는 힌두교인들이 자신의 기득권만을 내세우며 평등한 법조차 받아들이지 않자 인간의 평등을 강조한 불교로 개종운동을 벌였다. 그의 신불교운동은 그 이후 불가촉민 수백만명의 불교 개종으로 이어졌다.  암베드까르도 애초엔 힌두교 안에서 차별을 철폐하려는 운동을 벌였으나 힌두교 카스트들은 그런 불가촉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물건을 팔지도 않고 무차별 보복과 테러를 가하자 1935년 불가촉천민에게 차별의 근원인 힌두교를 버리라고 외쳤다. 그리고 차별의 근거인 힌두교의 마누법전을 대중들이 보는 가운데 불살라 버렸다. 그런 행위는 인도에선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었지만, 인간다운 삶을 회복하기 위해 살해의 보복조차 감내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실제 불가촉민들은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하고, 힌두 사원에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힌두교인도 아니다. 마누법전에선 불가촉민은 개, 돼지, 닭과 마찬가지로 브라만이 식사하는 것을 보아서는 안 되며, 마을 밖에서만 살고, 낮에 돌아다니되 다른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지 않도록 표시하고, 밤에 돌아다녀선 안 된다고 돼 있다. 또 불가촉민 여자와 하룻밤 통정을 하거나 음식을 받아 먹으면 3년 간 탁발을 해 음식을 먹고 성구를 읊어야 속죄할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불가촉민에겐 저주의 법전인 셈이다.

 

간디와 암베드까르는 인도 독립을 위한 협력자이자 최대 맞수이기도 했다. 간디가 불가촉천민에 대한 불평등을 암적인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민족 독립을 위해 불가촉천민의 불교 개종을 비난했으나 암베드까르는 노예 해방, 인간 해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과감히 개종을 선택했다.

 

간디는 불가촉민을 ‘신의 자녀’란 뜻의 하리잔 이라고 부르며 불가촉민 양녀를 두고, 그들이 하는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해 극우힌두교도들로부터 난폭한 항의를 받곤 했다. 그러나 암베드까르는 간디의 행동을 동정주의로 여겼고, 스스로 ‘부수어지고, 찢기고, 으깨진 자, 핍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뜨라고 불렀다. 진정한 인간 평등을 깨쳤다면 모두가 같은 신의 아들이라고 했어야 마땅한데, 불가촉민을 여전히 따로 구분한 것은 차별 의식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불가촉민들의 생각이었다.

 

암베드카르는 1956년 수백만의 불가촉천민과 함께 불교로 개종하는 역사적인 의식을 집행했다. 암베드카르는 개종식을 마치자마자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연맹의 개회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나서 불교유적지를 순례한 뒤 뭄바이로 돌아왔다. 그는 개종식 두 달 뒤 주검으로 발견됐다. 

 

(<인도오지기행>(한겨레출판)의 ‘대리석상에 갇힌 신들을 깨워라’편에서)

  

조현 종교명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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