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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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좋게만 나오면 사기거나 ‘보나마나’
궁하면 통하고 밤 깊으면 새벽 가까워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토정비결이나 한 해 운수를 점쳐 봅니다. 이 때 ‘잘 나간다’고 나오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초장부터 김이 새고, 의기소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토정비결이든 당사주든, 주역점이든 늘 좋게만 나올 수 없습니다. 늘 좋게만 나온다면 그런 점괘는 사기일 것이고, 보나마나 할 게 분명합니다.
어떤 점괘든 사시사철이 운행하듯이 개인의 운세도 강할 때가 있으면 약할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으면 좋은 때가 있다고 돼 있습니다. 어떤 운세에나 고저장단이 있게 마련입니다. 평생 길한 운만 있는 사람도 없고, 평생 불길한 운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좋은 운이 화 되고, 나쁜 운이 복 될 수도
오늘 운이 나쁘거나 좋다고 해서 내일 또한 그러라는 법이 없으며, 오늘 좋은 운이 내일 화가 될 수도 있고, 오늘 나빴던 일이 내일이면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길흉화복이 돌고 도는 이치를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가 말해줍니다.
북쪽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라면서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왔습니다. 화가 복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했습니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라며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 타기를 좋아하던 늙은이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이 병신이 된 것을 위로했습니다. 그러자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라고 했습니다. 1년 뒤 오랑캐들이 그곳을 침입했습니다. 그래서 장정들은 하나같이 싸움터에 나가 모두 전사해버렸는데 늙은이의 아들만은 다리가 병신이어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북방의 늙은이’(새옹)는 길흉화복의 돌고 도는 이치를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삶에서 활용하는 대처 능력이 차이 만들어
그러나 운세와 달리 삶은 계속 길한 삶이 있고, 불길한 삶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까요
점괘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잘 맞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토정비결이니 당사주이니 주역이니 하는 것도 동양의 지혜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이를 삶에서 활용하는 것은 좋다고 봅니다. 다만 점괘를 받은 이후입니다. 그 대처 능력이 차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점괘나 꿈은 그 자체보다도 해석이 중요합니다. 똑같은 일을 당해도, 똑같은 상황에서도 100사람이 대처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듯이 똑같은 점괘를 받은 사람이라도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지고, 1년 뒤 그들의 삶이 같을 수 없습니다.
제 홈페이지의 벗님글방에서 ‘주역산책’을 쓰는 청고 이응문 선생 부인 덕천 선생 또한 주역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분인데, 지난해 초 그분이 괘를 뽑은 결과 중천건(重天乾)괘 초효가 나왔다고 합니다. 중천건괘는 주역 64괘 중 첫 번째 괘로서 아주 좋은 괘지만 초효는 ‘잠룡(潛龍)이니 물용(勿用)이니라’(잠긴 용이니 쓰지 말지니라)라고 돼 있습니다. 아직 활동을 개시할 때가 아니라 물 속에 잠겨 있는 상태이니 써서는 안 된다고 했으니 뭔가 해보려는 사람에게 이것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덕천 선생은 의외로 아주 좋아하더군요. ‘드디어 조용히 공부할 때 왔다’고요. 그렇게 물 속에 잠겨 있을 때 마음 공부도 하고, 몸도 튼튼히 해서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해 두어야 활동을 개시할 시점 이후에 다른 용들이 백리를 날 때 그는 천리 만 리를 날 수 있을 테니까요.
마음만 바로 서면 어떤 괘건 긍정 효과
저도 지난해 어느 때인가 괘를 뽑아보니, 수산건(水山蹇)괘가 나왔습니다. 주역 39번째인 이 괘는 64괘 가운데 4대 난괘로 꼽힐 만큼 골치 아픈 점괘로 꼽히고 있습니다. 험한 것이 앞에 있으니 어렵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뒷동산을 오르려 한다면 그 산은 험하지 않으니 어려울 것도 없다. 그러나 히말라야를 넘으려 한다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히말라야를 넘는 것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끈기 있게 올라가면 되리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움이야 있었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니, 그 어려움을 억울하게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제 삶의 과정에서 당연하고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받아들여 좀 더 편안해짐을 느끼게 됐습니다. 마음 자세가 바로 서면 어떤 점괘건 자신에게 긍정적인 도움이 되게 됩니다.
길흉화복의 이치와 자연 순환의 이치를 통찰하게 되면, 궁하다고 해서 좌절하지만 않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고, 궁하면 반드시 통하는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궁하려면 차라리 온전히 궁해져야 강 밑바닥을 발로 차고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기에 하늘이 무너진 속에서도 새 하늘이 열릴 비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문제는 내게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 임하느냐 입니다. 문제는 점괘가 아니라 점괘에 대한 해석과 대처입니다.
그러니 새해엔 좋은 꿈만 꾸려고 애쓰지 말고, 어떤 꿈이든 멋진 해몽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꿈보다 해몽’입니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