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필리핀 민다나오/① 알라원
해발 2005m 고지, 문자·숫자 모르는 원시공동체
지원받아 학교 지었지만 선생님 없어 빈 교실만
우리들의 낙원은 도대체 어디쯤 있는 것일까요.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녔음에도 아시아의 대표적인 분쟁지역이 되어버린 필리핀 남단의 민다나오섬을 다녀왔습니다.
갈등과 개발의 와중에서 낙원을 되찾으려 애쓰는 원주민과 분쟁지역민들 속으로 들어가 자비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국내의 자선구호단체 제이티에스(JTS) 실무자들과 함께 민다나오의 산악지대 100㎞를 행군하며, 오지 중의 오지 마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민다나오에서 7일의 여정 가운데 3일은 제이티에스 이사장이기도 한 법륜 스님 일행과 함께 했고, 그들이 돌아간 뒤엔 제이티에스 실무자 및 현지 제이티에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덤불 속 길 없는 길 따라
오지 마을 중 처음 찾은 곳은 알라원입니다. 지난달 27일 새벽 4시 민다나오섬 중부 산골도시 말라이발라이의 호텔을 출발했습니다. 말라이발라이에서 알라원산으로 가는 길엔 끝도 없는 파인애플 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오전 8시쯤 알로원산 아래 실리폰마을의 잔디밭에 내려 간단한 요기를 한 뒤 알라원을 향해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알라원에 가는 길엔 민다나오 원주민들을 돕고 있는 자선구호단체 제이티에스(JTS) 이사장 법륜 스님을 비롯한 제이티에스 활동가 등 30여명과 함께했습니다. 민다나오 오지 카라수얀에 지은 학교, 송코에 지은 평화홀 준공식에 참여하기 위해 온 이들은 먼저 2년 전 학교를 지은 알라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숲에서 사람 냄새를 맡은 거머리가 떨어진다기에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잔뜩 긴장했습니다. 그러나 3,4월은 건기여서 그나마 습기가 많지 않은 때문인지 거머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기 때는 계곡으로 변해버린다는 좁은 산길의 돌들은 건기인데도 미끄러워서 잠시만 방심해도 넘어지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넘어지면서 덤불 속 길 없는 길을 따라 걷기를 18㎞. 알라원 사람들이 놓은 구름다리를 지나고 또 낭떠러지 옆을 지나 계곡을 건너자 마침내 정글 밖으로 툭 터진 새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해발 2005미터에 있는 세상 밖 세상 알라원이었습니다.
낭떠러지 길 따라 18km, 정글 밖 툭 터진 지상 낙원
100m 폭포 아래 흰 구름 감도는 언덕마다 새 둥지 같은 나무집들
비가 내릴 때마다 쏟아지는 100여 미터의 수직폭포 아래 흰 구름 감도는 언덕마다 새둥지 같은 나무집 20~30채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 평지 마당 한 편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원주민 아이들은 먼 나라에서 온 한 무리의 이방인들을 신기한 듯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바라보고, 그 뒤 잔디밭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 옆에선 원주민 청년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네 시간 넘게 정글을 헤치고 온 이방인들을 위해 원주민들은 장작불 위에 삶은 카모테(고구마) 한 솥과 야생 커피를 끓여 내놓았습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입니다. 이들에겐 더 이상 내놓으려야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세 끼를 거의 카모테로 해결한답니다. 이들도 쌀밥을 먹고 싶지만, 카모테 한 부대를 지고 먼 길을 내려가 봐야 한 가족의 한 끼 먹을 쌀도 구하기 어렵기에 그저 이 산골에서 나는 카모테와 야생 커피로 끼니를 때울 뿐입니다.
삼나무껍질을 벗겨서 이들이 하루에 버는 돈은 30페소. 우리 돈으로 7백~8백원에 불과합니다. 그 돈으로 여덟아홉이나 되는 식구들의 한 끼 먹을 쌀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생활은 궁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도 고구마 한쪽에 자족하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늘 너무도 배부른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바위에 앉아 있던 마을 이장 리토에게 “알라원에 몇 가구나 사느냐”고 물었더니 “28가구”란다. 이어 “마을인구가 몇 명이냐”고 물으니 “그것은 모르고, 한 집에 여덟 명 내지 10명 정도가 산다”고 했다. 가구 수도 대답하는 사람마다 그 수가 다르다. 문자도 숫자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원시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구호단체 JTS는 자재만 지원, 원주민 스스로의 손으로 짓게
이런 마을 가운데에 교실 세 칸짜리 작은 학교가 생겼습니다. 행정 공무원은 커녕 경찰관도 우체부도 아예 오지 못하는 이런 오지에 어떻게 학교가 세워진 것일까요. 조상 대대로 고립되어 살아온 이곳에 알라원부족학교가 생긴 것은 지난 2006년 8월이었습니다. 제이티에스가 건축자재를 지원해 주어 교실을 짓기 시작한 지 1년만이었습니다. 이들은 머나먼 세상에서 벽돌 한 장 한 장을 나르면서 학교를 짓는 동안 처음으로 ‘협동’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학교는 알라원 사람들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지만 정부는 이 머나먼 오지에 학교를 세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들에겐 어린 자식들을 아랫마을에 유학 보낼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취학 연령대인 5~12살 어린이 70여명 가운데 아무도 글자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고립된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정부가 알로원 일대 산악지대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원주민들은 끊임없이 ‘하산’ 명령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 이들의 생산물은 제값을 받지 못하는 반면 생필품 값은 갈수록 비싸져 소금과 설탕, 쌀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가끔은 마을 젊은이들이 알라원의 가족들을 위해 돈벌이에 나서보기도 하지만 글조차 모르는 이들은 하루 품삯군이나 종살이 외에 할 것이 없습니다.
문명세계와 은둔세상 사이에서 미아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아이들
그래서 학교는 알라원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를 지으면서 부풀었던 알라원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정작 학교는 지어졌지만 어느 교사가 이 외딴 원주민 마을에 올 것입니까. 최근 부임해 온 교사도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 이틀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원주민들은 오가는 길이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알라원으로 가는 낭떠러지 옆에 나무로 안전대를 설치하고 길도 닦았지만 선생님을 구할 길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부족장인 크리센 쇼 가와한 등 알라원 사람들은 법륜 스님을 바라보면서 “어느 선생님도 우리 마을에 와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발 ‘능력 있는’ 당신이 교사 초빙을 비롯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달라”는 하소연이 담긴 눈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구제’는 제이티에스의 방침과 어긋나며, 돈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인도 불가촉천민 촌에도 학교를 지어준 바 있는 법륜 스님은 “그 마을 사람들은 대접할 고구마조차 없어서 먹기도 어려운 야생 도토리를 앞치마에 주워와 주었던 것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면서 “교사가 이 오지에서 고립감과 문화적 갈등을 극복하고 머물기 위해선 학교를 짓고 길을 닦는 것만큼이나 간절한 여러분들의 ‘정성’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원주민 어른들은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겠다는 듯 제이티에스 사람들의 눈가에 젖은 촉촉한 물기를 가슴에 머금고 각자의 나무집으로 돌아갔지만 아이들은 밤이 깊도록 마당에서 뛰놀고 뒹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일곱 살 소녀 앨라디의 눈동자도 별빛처럼 반짝였습니다. 문명의 세계와 은둔의 세상 사이에서 미아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앨라디의 머리 위에서 그에게 조화와 평화와 행복의 길을 밝혀주겠다는 듯 수많은 별빛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민다나오(필리핀)/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29개 마을 학교 만들기 지원…구원보다 자립 최우선
제이티에스가 구호하는 법
제이티에스(JTS·Join Together Society)는 지금까지 민다나오섬 29개 마을에 64칸의 교실을 지었다. 29개 마을은 하나 같이 필리핀 정부의 행정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오지로 학교가 없거나 분쟁지역이어서 어느 종교단체나 엔지오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무슬림 구역 등이다.
제이티에스가 처음 민다나오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2002년. 이사장인 법륜 스님이 막사이상을 수상할 때 가톨릭국가인 필리핀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살상의 땅’ 민다나오의 평화를 위해 일해 달라고 법륜 스님에게 구원을 요청하면서부터였다. 그 뒤 민다나오의 정신적 지도자인 토니 주교의 제자인 엔지오 대표 도동- 세비어대 트레시 교수 부부가 제이티에스 프로젝트에 앞장섰다. 또 마닐라에서 사업을 하는 이원주, 노재국, 이종섭, 이규초씨 등이 한국에서 파견된 최기진, 최졍연, 송현자씨 등 실무자들과 함께 오지 산간지대와 분쟁지역을 누비면서 시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지원해가자 토니 주교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원주민들을 ‘구원’하지 않았다. 오직 스스로 힘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협조’해줄 뿐이었다.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민다나오에 온 스페인과 미국, 일본 등의 제국들은 민다나오의 기름진 땅과 무한한 자원에 탐을 내며 당근을 내밀었고,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를 심는 데만 주력해 민다나오를 종교 분쟁의 땅으로 만들었다. 대부분이 민다나오를 그들의 낙원으로 만들려고 했지 원주민들의 낙원이 되도록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제이티에스(jts.or.kr)는 정토회라는 불교단체를 모태로 한 엔지오이지만, ‘종교’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포교를 목표로 하지도 않는다. 원주민들이 기독교를 믿건 이슬람을 믿건 그들의 기도 방식대로 함께 기도할 뿐이다. 원주민 자신들의 믿음을 소중히 간직하며 낙원을 만들어가는데, 학교만이 아니라 교회나 모스크(이슬람사원)까지도 보수하거나 지어줄 수 있다는 그들이다.
제이티에스는 돕는 방식도 독특하다. 학교를 지어주는 게 아니라 자재만 공급하고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에다 자신들의 협력으로 자재를 날라다가 스스로 짓도록 한다. 그런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협력해 마을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학교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법륜 스님은 “자칫 잘못하면 돕는 기관과 사람은 만족할 수 있지만, 상대를 영원히 거지와 노예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33개 민다나오의 원주민들이 모임을 갖고 대화하면서 갈등을 풀고, 자신들의 전통과 가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제이티에스가 송코라는 원주민마을에 ‘평화홀’을 짓도록 지원해준 것도 외세와 여러 종교들에 의해 찢어지고 상처 입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낙원을 되찾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남한보다 조금 넓은 면적에 인구 2천만…천혜의 자연
분쟁의 섬 민다나오
민다나오는 남한보다 조금 넓은 면적에 2천만이 사는 필리핀 최남단의 섬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이웃하고 있다. 평화로운 원주민들의 낙원이었던 민다나오에는 14세기 이웃나라에서 건너온 무슬림들이 500만여 명이 살고 있다.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등장했고, 미국 식민지(1899~1945)시대에 기독교인들을 정착시키고 무슬림을 코너에 몰면서 무슬림들의 분리투쟁이 본격화했다.
1946년 필리핀 공화국의 등장 이후 이주 정착민이 증가하면서 무슬림과 원주민들은 더욱 더 깊은 산속으로 이주했고, 무슬림반군과 공산반군이 이런 산간지대를 활동 근거지로 삼으면서 민다나오는 ‘천혜의 낙원’임에도 아시아의 대표적인 분쟁지역이 됐다. 2000년대 들어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으나 간헐적인 충돌이 여전히 계속돼 민다나오인들조차 분쟁지역의 출입을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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