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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마음산책

34만원의 행복 ‘감로수’, 그들이 사는 법

등록 2009-04-22 14:07

   익산 원불교중앙총부 성직자들

 밖은 줄이고 안은 늘려 ‘마음부자’

 영성 열려 타종교인과 교류 많아

 

 원불교가 열린 날인 대각개교절(28일)을 앞둔 20일 전북 익산으로 가는 길엔 비가 내렸다. 인간의 욕망이 가져온 오염으로 인한 기상 재앙이 우려될만큼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였다. 익산 원불교중앙총부에 들어서니 막 목욕을 끝낸 새색시처럼 온갖 꽃들이 수줍게 미소짓는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도 없고, 궁궐처럼 치장하는 대리석 건물도 없지만 낮은 한옥과 오랜 누옥들 사이에 놓인 돌 하나도 주위와 어우러져 멋스럽지않은 것이 없다. 그 오솔길로 흰저고리, 검정치마 입은 여성들이 사뿐 사뿐 걷고 있다. 이 아름다움을 가꾸는 원불교 여자 교무들이다.

 

 돈으로 치장한 것보다 무욕의 내면이 훨씬 아름다워

 

 하나같이 대학을 졸업한 재원들인 여자교무들이 받는 한달 용금(월급)은 34만원이다. 총부와 교당 등에서 먹고 사는 생활을 한다지만 사회적 통념에 비춰보면 적어도 너무 적은 액수다. 결혼을 한 남자 교무들은 좀 더 배려를 해 두 배를 주지만 그래도 72만원이다. 남자 교무들에게 시집온 아내는 맞벌이를 각오하는 게 예사이긴하지만 그래도 가장의 수입인데도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여러 종교 가운데 타종교인에 대해 가장 배타성이 없이 열려있는 원불교 성직자들은 타종교인들과 교류가 특히 많다.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의 대부분은 이들보다 경제적 여건이 나은 편이다. 경제적으로는 빈민에 속할만한 원불교 성직자들이 실제 삶에선 서울 가회동이나 삼청동 한옥촌의 거주자들보다 더욱 더 멋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란다. 그리고 좀 더 주의 깊게 그들의 처소를 살피면서 돈이 아닌 ‘무욕의 내면’이 돈으로 치장한 것보다 훨씬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란다. 돈 들이지않은 그 순수함이 내면을 더 환하게 비춰주는 때문일까. 항아리 두껑의 물 속에 담긴 조약돌 하나하나도 다이아몬드보다 더 멋스럽게 빛난다. 남이 쓰다 버린 물건도 그들을 만나면 고가의 골동품처럼 제자리를 찾게 된다. 외부인들이 원불교인들에게 갖는 의아함은 그런 외면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더욱 더 큰 신비는 그런 수준의 월급으로도 풍겨내는 행복한 아우라다.

 원불교의 행정 수반인 이성택(66) 교정원장실도 매달 받는 용금은 젊은 교무들과 한푼의 차이도 없다. 아예 옷에 돈 한푼 안 넣고 다녀 늘 무일푼으로 살아가지만 그의 얼굴은 ‘60대 미소년’이다. 그는 원불교 성직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라 상대적 행복감을 누리는 이유로 ‘은혜와 감사’를 꼽았다. 한탄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는 은혜에 감사하는 습관을 길들인다는 것이다. 그는 “상황이 어려워져 소유와 쓰임새를 줄여야하는데도 예전 그대로 욕심을 부리다보면 고통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면서 “욕심을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가 고통과 행복을 가르게 된다”고 했다.

 

 “사욕으로 시시비비 가리는 것도 빼야”

 

 이 원장이 행복한 삶으로 가기 위해 빼라며 권유하는 것은 물질적 소유만은 아니다. 그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옳고,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그르다며 미워 하는데, 시시비비를 가르는데도 사욕이 아닌 공심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며 “산업사회는 ‘강력한 신념’이 있어야 성공하던 시대였지만, 지식정보사회에선 얼마나 사고가 유연하느냐가 대중적 호응을 가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과 여자교무들이 가꾸는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1시간30분간 차를 달려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94년전 대각한 전남 영광 영산성지에 들어서니 익산총부 보다 더욱 더 소박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영산성지 소장인 청타원 이경옥(63) 교무 앞 탁자 위엔 ‘버려진 도자기’에 꽂은 꽃과 접시 위에 놓인 민들레 한송이가 이 교무만큼이나 아름답다. 이 교무는 경상도의 유학자였던 할아버지가 젊은 소태산 대종사를 한번 보고 ‘공자를 만났다’며 즉각 이 마을로 이주해와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50여년만인 11년 전 다시 이곳에 와 살게 된 그는 어린 시절 보아온 초가집이며 물레방아 등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한다. 옛것을 없애고 새롭게 화려하고 크고 넓고 높게 짓는 것에 환호작약하는 시대에 소박한 옛멋을 풍기는 이 교무가 성지 연못에서 따온 연잎으로 우려낸 차를 건넨다. 아, 감로수다.

 익산·영광/글·사진 조현 종교명상전문기자 cho@hani.co.kr

 

 

 ◈대각개교절이란?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날이다. 즉 원불교가 열린 날이다.

 소태산은 1891년 5월5일 전남 영광에서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7살 때부터 자연현상과 인생에 대해 특별한 의문을 품고 스스로 도(道)에 발심해 20여년간 구도고행을 계속해 마침내 1916년 4월28일 큰 깨달음을 이루었다.

 소태산은 깨달음을 이룬 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하고, 모든 진리는 일원(一圓)의 진리에 귀결되므로 이 땅에 일원의 진리가 충만되고 나누어지는 일원세계의 건설을 주창했다. 그리고 세상을 두루 살펴보니 인류의 정신은 날로 그 힘을 잃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해 물질의 노예생활을 하니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주창하고, 먼저 미신타파, 문맹퇴치, 저축조합 운동을 통해 혼란한 시국 속에 희미해 가는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땅에 떨어진 인류의 정신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다.

 소태산은 영광에서 태어나고 대각하고 초기 교화를 하다가 1924년 지금의 원불교 중앙총부가 있는 전북 익산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본격적인 교화를 시작했다. 이 때 종교의 간판을 처음 걸었으며, 자신의 포부와 경륜을 감은 일원세계건설의 지침서로 <원불교정전>을 저술 편찬해 제자들을 길러내고, 53살인 1943년 6월1일 열반했다.

조현 종교명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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