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휴심정 뉴스

‘한학 대가’ 기세춘 최후의 역작 ‘주역대전’ 세상에 나왔다

등록 2023-05-30 15:24수정 2023-05-31 02:32

동양학 최고 경전
기세춘 선생. 조현 종교전문기자
기세춘 선생. 조현 종교전문기자
재야 한학의 고수이자 민주화운동가인 묵점 기세춘(1933~2022) 선생의 최후 저서인 <주역대전>(周易大全)이 세상에 나왔다. 주역대전은 지금까지 주역과 관련한 주요 주석을 망라한데다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을 세계 최초로 덧붙여 편역한 기념비적 역작이다.

저자는 고봉 기대승의 15대손으로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양식 학문을 거부한 부친의 영향으로 부친이 훈장이었던 자기 집 서당에서 10살에 사서삼경과 주역까지 뗐다. 고교 시절 때 이승만 타도를 외치며 의혈동지회를 결성했고,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1963년 동학혁명연구회를 만들어 창립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그 공부모임이 통일혁명당사건 조작에 연루돼 신영복 등 회원 다수가 간첩으로 몰렸다. 고인은 모진 전기 고문을 당하면서도 회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끝내 허위자백을 거부해 기소유예 처분됐으나 통혁당사건 재판 내내 불법 구금되고, 마침내 서울시공무원 직책을 잃고 영원한 재야인이 됐다.

신영복이 1988년 가석방되자 그와 함께 <중국역대시가집> 4권의 방대한 저서를 공동 편역했다. 2500년 전 공자와 쌍벽을 이뤘던 진보사상 묵자를 세상에 드러내며 묵자학회를 창설한 고인이 1992년 <천하에 남이란 없다-묵자>란 책을 내자 당시 감옥에 있던 문익환 목사가 이 책을 읽고 서신토론을 펼친 게 <예수와 묵자>란 책으로 출간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서울대 사회학과 김진균 교수와 향린교회 홍근수 목사, 신영복 등과 동지이자 친구로 시대 상황을 함께했다.

<주역대전>은 저자가 생전에 펴낸 유가, 묵가, 도가 등 20여권의 저작의 대미다. 저자가 그 전에 냈던 <주역>을 불살라버리고, 벼르고 별러 낸 최후의 역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년에 이 책을 펴내려고 여러 출판사와 접촉했으나 원고지 1만5천매, 글자 수로 300만자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의 편집과 한자 교열에 출판사들이 손을 들었다. 고인이 지난해 별세하자 제자들이 <주역대전> 출판위원회를 꾸렸다. 마침내 저자의 ‘절친’이었던 김진균 교수의 아들인 김태진 대표가 운영하는 진인진출판사가 대작의 출판을 떠맡았고, 마침내 3권 중 첫권을 내는 개가를 올렸다. 2, 3권은 고인의 2, 3주기에 낼 예정이다.

주역대전.
주역대전.
주역은 유학 4서3경 가운데도 왕도로 꼽힌 동양학의 최고의 경전으로 꼽힌다. 공자가 책을 엮은 가죽 끈을 세번 고쳐 맬 만큼 열심히 읽었다는 책이다. ‘대전’(大全)이란 한 분야에 관한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한 책에만 부여하는 이름이다. 1415년 명나라 때 발간된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은 그때까지 나온 주역에 대한 주석들을 집대성했다고 하여 붙여졌다. 공자 이후 주역에 독창적인 주석을 단 학자로는 위나라 왕필과 손나라의 정호·정이 형제, 주희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유학자 송시열은 ‘주희(주자)의 말씀에 일점일획이라도 거스르는 자는 사문난적이다’고 진보학설을 탄압해 이런 기조는 노론이 집권한 조설말기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다산은 강진 유배 중 <주역사전> 집필에 착수했고,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것을 피하려 주희를 넘어 공자로 복귀한다고 주장했다. 기세춘은 다산의 주역사전을 읽은 뒤 자신의 주역책을 절판시키고 <주역대전> 편역에 몰두했다. 어려서 한학을 익힌데 이어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25년 간의 미국 목회활동을 뒤로하고 지리산에 정착해 살며 기선생과 호형호제하던 한성수 목사는 “형님이 아니면 주역대전을 낼 수 없는 사람이 없으니, 후학들을 위해 내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은영 <주역대전> 출판위원장은 “다산은 왕필 이후 주희까지 주역을 의리론으로 해석한 바탕 위에 상수론적인 분석을 첨가함으로써 주역을 더욱 세밀하고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주역대전>은 하나라의 연산역과 은나라의 귀장역 아래 역경 본연의 원리에 접근했다는 면에서 공자를 능가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저자는 별세 전 미리 써둔 서문에서 “필자나 중국·우리 학계에서도 기존의 해석을 절대 권위로 의심치 않았으나 다산이 ‘덜 떨어진 왕필의 형편없는 역학만이 독점적으로 전수되니 우리 유학의 액운’이라고 비판한 것을 보고, 몇 달 동안 자괴감에 빠졌다”며 “다산은 주역의 매 괘마다 <시경>을 인용했는데, 주역이란 여타 경전과 달리 성현의 말씀과 문자를 배우고 익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에게 부과된 천명을 찾고 스스로를 결단하기 위해 점치는 책이므로 무엇보다 시세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함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썼다. 그는 이어 “나는 혁명가였던 다산을 따르겠다는 각오로, 눈을 뜨면 일신우일신을 주문처럼 외우며 여든살 노인의 편협함을 경계하고, 나의 번역이 도살이 되지 않았는지(원전을 해치지 않았는지) 전전긍긍했다”고 고백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휴심정 많이 보는 기사

두번째 화살을 맞지않으려면 1.

두번째 화살을 맞지않으려면

홀로된 자로서 담대하게 서라 2.

홀로된 자로서 담대하게 서라

착한 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3.

착한 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천도재도, 대입합격기도도 없는 사자암의 향봉스님 4.

천도재도, 대입합격기도도 없는 사자암의 향봉스님

고통이 바로 성장의 동력이다 5.

고통이 바로 성장의 동력이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