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휴심정 벗님글방

인연 따라 ‘수시’로 바뀌는 것이 인생

등록 2009-03-13 00:37

[벗님글방/원철스님] 천태산 영국사

잠시 내 이름으로 살 뿐 세상에 정해진 건 없어

 

 

영국사로 갔다. 지인들의 모임 때문이다. 구성원의 신분도 다양하고 또 나이 편차가 크다보니 세대간의 언어감각에 대한 차이도 있기 마련이다. 한글영어세대는 ‘영국사’라는 절이름을 들으면 유럽의 잉글랜드가 떠오른다고 했다. 한술 더 떠서 ‘영경(英京)’이란 이름은 ‘런던’을 생각나게 만든다는 썰렁하고 유치한 농담 몇 마디가 오고갔다.

 

기도한 공덕에 나라가 안녕해져 영국사

 

충북 영동의 영국사(寧國寺)는 천태산에 안겨 있다. 남인도 천태산에는 나반존자가 홀로 소나무 아래에서 정진했다고 했고 중국 절강성의 천태산엔 천태종 본산인 국청사란 큰절이 있다. 천태지의(538~597) 스님이 22년 동안 주석하였고 그의 뛰어난 제자인 관정(灌頂)은 스승의 법화경의 해설서를 정리하면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인도 중국 한국을 아우르는 산 이름인 셈이다.

 

한국 천태산 입구에는 노거수 은행나무가 당간지주 마냥 우뚝 서 있다.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운다는 전설은 여기서도 들을 수 있었다. 양산팔경(행정구역이 양산면이다)의 으뜸이라고 불릴 만큼 주변의 경치도 수려하다. 절의 본래 이름은 아니나 다를까 국청사였다. 대각국사 의천이 오래 머물렀던 고려 천태종의 본산이었다.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 곳에서 기도한 공덕으로 나라가 안녕해진 까닭에 두음법칙을 무시한다면 현재의 ‘녕국사’로 바뀌었다. 국청사 이전에는 만월사로 불렀다고 하니 절 이름도 인연 따라 수시로 바뀌기 마련이다. 천태산 역시 본래 이름은 지륵산이었다고 하니 세상에 정해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또한번 실감한다. 인생도 잠시 내 이름으로 살 뿐이다. 그래서 <한산시(寒山詩)〉에선 이렇게 노래했다.  

 

 아침풀잎에 맺힌 이슬을 보지 못했느냐(不見朝垂露)

 해뜨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지는 것을(日爍自消除)

 

‘세상 소리는 천태산에서 다 지우겠다’

 

천태산 국청사 역시 한산과 습득(拾得), 그리고 풍간(豊干) 때문에 선불교적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세 사람 이름 앞에는 모두 ‘천태’라는 당호가 붙는다. 그들은 천태산이 너무 마음에 들어 세간에서 들었던 모든 소리를 지워버리겠다는 각오로 귀를 씻고서 은거했다.

 

 살 만한 땅을 가리고 골라보니(卜擇幽居地)

 천태산은 두번 다시 말할 게 없구나(天台更莫言)

 

 이제 비로소 한산에 들어와(今日歸寒山)

 개울을 베고 누워 귀를 씻는다(枕流兼洗耳)

 

아무리 산이 좋아도 그것만으로는 2%로 부족하다. 서로 알아주는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한다. 풍간의 시는 비록  2수밖에 전하지 않지만 그의 역할은  단순한 지음자(知音者) 수준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그는 승려신분이었던 것 같다. 풍간이 적성산을 지나가다가 아이를 주워 길렀으므로 습득(拾得)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습득은 국청사에서 한산과 더불어 주방일을 거들면서 둘다 머리를 기른 모습으로 정진했다.

 

 한산은 제 한산이요(寒山自寒山)

 습득은 제 습득이라(拾得自拾得)

 어리석은 이들은 어찌 보고서 알 것인가(凡愚豈見知)

 풍간이 있어 서로 알아주리라(豊干却相識)

 

얽매이지 않고 ‘그때 그때’ 흐름에 따라 생활한 풍간, 습득, 한산

 

풍간은 불교의 진리를 물어올 때마다 늘 “수시(隨時)”라고만 대답했다. 우리 말로 하면 ‘그때 그때’ 혹은 ‘흐름을 따른다’는 말이다. 여구윤(閭丘胤)이 진리의 요체를 물으니 ‘문수와 보현을 만나서 물어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부엌에서 불을 지피고 설거지 일을 하는 한산과 습득을 문수와 보현의 화신으로 믿었던 것이다. 셋은 뒷날 ‘국청삼은(國淸三隱)’으로 불리었다. 천태종 본산에서 선종가풍으로 살았으니 그들의 삶은 어디건 매인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생활자체가 ‘수시로’였다.

 

한산시는 하이쿠(俳句)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일본의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문학사(文學史)는 평가하고 있다. 현재 해인사의 어른이신 법전스님도 젊었을 때 한산시에 심취했고 지금도 한산시집을 곁에 두고 가끔 읽는다고 주변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선서 한 두권 잡히는 대로 펼쳐(仙書一兩卷)

 나무 밑에서 읽히는 대로 읽는다(樹下讀喃喃)

 

이제 충청도 천태산에선 선서(仙書)를 선서(禪書)로 바꾸어도 좋을 것 같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휴심정 많이 보는 기사

두번째 화살을 맞지않으려면 1.

두번째 화살을 맞지않으려면

홀로된 자로서 담대하게 서라 2.

홀로된 자로서 담대하게 서라

착한 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3.

착한 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천도재도, 대입합격기도도 없는 사자암의 향봉스님 4.

천도재도, 대입합격기도도 없는 사자암의 향봉스님

고통이 바로 성장의 동력이다 5.

고통이 바로 성장의 동력이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