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 행위와 관상은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관상을 통해 자기 존재가 자비로운 우주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 사람은, 관상이 가져다준 깨달음이나 그 감정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 자비를 실천한다.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는 한 산문에서 영적으로 무르익은 한 선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일본의 한 선사가 그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 출간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었다. 그가 <도덕경>을 번역하고 인쇄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모으기까지는 꼬박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그 무렵, 나라에 역병이 창궐했다. 선사는 애써 모은 돈을 역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쓰고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시 10년 세월이 흐른 후 책을 인쇄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지진이 일어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 생겨났다. 선사는 집 잃은 사람들이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애써 모은 돈을 기부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10년 동안 돈을 모아 그 간절한 소원을 이루었고, 드디어 일본인들은 <도덕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코엘류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선사는 <도덕경>을 세 권을 펴냈다고 했다. 두 권은 보이지 않는 책이고, 한 권은 보이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대의 서가에는 보이는 책 말고, 보이지 않는 책이 몇 권이나 꽂혀 있는가. 보이는 책(경전 같은!)이 아무리 귀해도, 보이는 책은 보이지 않는 책, 즉 타인에 대한 자비로 이루어진 책들이 있어야 함을 가리키는 표지가 아닐까.
글 고진하 목사 시인(원주 불편당 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