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놓는다. 역대 성인들 중에서 가장 자연친화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라고 하겠다. 가장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일 텐데, 바람처럼 몸 가볍게 맘 가볍게 거룩한 영을 따라 사는 까닭이다. 어느 순례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오로지 잔 하나와 빗 하나를 들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자기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시고 있는 사람을 보자 도중에 잔을 버렸다. 그리고 빗 대신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는 한 사람을 보자 빗도 버렸다.
독일의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신비와 저항>이란 책에서 이를 두고 '투박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는 영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은행에서 저축을 장려하는 구호처럼 "네가 소유한 그 무엇이, 너의 존재다"라는 공식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쁨을 줄 것 같은 소유가 확실히 짐이 된다는 것이다. 주인과 소유자는 자기 재산의 노예와 종이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약속받은 궁전이 오히려 감옥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발적 가난'은 자유를 위한 조건이어서,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가난 부인과 결혼하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아버지와 결별하고 출가할 때 옷감장수 아버지의 유산을 받지 않았다. 그는 나병과 불결함 앞에서 구역질하지 않고 오히려 돈 앞에서 구역질을 하였다. 누군가가 교회에 놓아둔 돈을 한 형제가 집어들자, 프란치스코는 그 형제에게 돈을 입에 물고 당나귀 똥에 덮여진 거름더미까지 가라고 일렀다. 그는 돈을 똥같이 여기라고 가르쳤으며, 그의 형제들은 교회의 재산이나 책들도 멀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소유와 기득권을 포기할 때, 우리는 자유롭게 되어 프란치스코처럼 문둥병자를 껴안고 입 맞출 수 있다. 새들과 대화를 나눌 만큼 가벼운 영혼이 된다.
……
무주 산골에 살 때였다. 어느 날 산길을 내려오는데, 마을 형님 한 분이 양복 차림에 지게를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묻자, "밭에…"라고 답한다. 그는 아마 밭에 캐어둔 감자라도 지고 올 모양이다. "1년 내내 한 번도 양복을 입을 기회가 없더라고…. 생각해보니, 양복 윗도리 양 어깨에 넣은 '뽕'때문에 이 옷이 지게질에 제격이란 생각이 들더군." 남이야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든 말든 장롱에서 몇 해째 묵고 있던 양복이 쓸모를 찾은 것이다.
*지게 진 사람들/한겨레 이종찬 선임기자
아, 투박함이 주는 아름다움이여, 이 사랑스런 쓸모있음이여!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력만이 교회가 기득권이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도 살아갈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수도원의 모든 제복이 작업복이며 일상복이 되는 날, 건강한 노동과 휴식, 하늘과 흙냄새가 낯설지 않은 교회가 탄생할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첫 서원 때 바닥에 엎드려 겸손을 다짐하던 마음은 프란치스코가 알몸으로 그리스도를 따라나섰던 그 마음이다. 그래서 맘만 아니라 몸도 가벼워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성전인 우리 몸이 감옥 문을 열고 우리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너에게 가고 싶다 - 지상에서 영원한 하늘을 갈망하는 길 찾기> (한상봉 지음, 이파르)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중에서
저자 한상봉
서강대 사학과와 신학대학원 신학과를 졸업했다. 천주교사회문제연구소 연구원,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간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 격월간 잡지 《공동선》 편집장을 지냈으며, 전북 무주에서 농사를 짓다가 예술심리치료사로 일을 했다. 현재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넷신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편집국장으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 『지상에 몸푼 말씀』『연민』『내 돌아갈 그립고 아름다운 별』 『내가 너희에게 그랬듯이』『가족을 위한 축복기도』『생활 속에서 드리는 나의 기도』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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