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용서는 영혼을 살리는 치료제입니다. 용서는 타인을 살릴 뿐만 아니라 나를 살리는 영약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을 지닌 자에게 타인과 나는 둘이 아니니까요. 타인과 나는 둘이 아니라는 자각이 용서를 가능하게 하지요. 비판과 단죄의 칼날보다 용서의 빛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광명으로 가득 채워줍니다.
......
*물건을 훔친 장발장을 오히려 감싸주는 신부. 영화 <레 미제라블> 중에서
용서는 용서받은 사람을 용서자로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영혼을 용서하고 용서받는 경험을 통해서 자랍니다. 용서하고 용서 받는 경험은 우리의 영혼을 성숙하게 합니다.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으면 꽝꽝 닫혔던 낙원의 문도 열리게 합니다.
해골산 언덕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 형틀에 달렸던 죄수 중의 한 사람도 '무지' 속에 있는 이들의 무지를 탓하지 않고 관용으로 품으시는 예수의 용서의 기도를 들었던 것일까요. 결국 그에게도 낙원의 문이 열립니다. 낙원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용서와 사랑을 매개로 아름다운 관계가 꽃을 피운 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물론 예수는 한 번도 아름다움을 입에 올린 적이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진짜 이름으로 오직 아름다움을 벗 삼았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관계의 꽃은 사랑에서 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미움과 증오는 우리를 계속 실작원에서 고통받으며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용서와 사랑의 기도는 하나님 나라를 무량무량 넓혀줍니다. 예수가 기도를 가르치면서 거듭 용서를 당부하시는 까닭이 그것입니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서로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이다.
(마가복음 11:25)
<성서 속 기도의 스승에게 배우다>(고진하 지음, 꽃자리) 중에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