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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좋은글

정(情)이 없는 자는 거짓말쟁이

등록 2013-11-26 21:43

진달래철에는 진달래를 따먹고 머루철에는 머루를 따먹고 해가 져서 사방이 캄캄해진 뒤 돌아가곤 했습니다. 우관 스님이 '이놈 다리몽댕이를 뿌질러놓겠다'고 벽력 같은 소리를 지르며 정말 몽둥이를 들고 달려나오셨지요. 나는 스님 눈에서, 호랑이한테 물려가지는 않았을까? 그런 겁게 질린 빛을 보았습니다. 돌아온 것만이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빛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정을 확인하기 위해 번번이 산 속을 헤매다가 어두워서 절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스님은 몽둥이로 때리진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커다란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스님은 내게 있어서 어머님이요 아버님이었습니다. ...
나는 누구든 사람을 보면 솔나무에선 솔냄새가 나고 느릅나무에선 구린내가 나고 계피나무에선 맵싸한 향기가 나듯이 단박에 그 사람의 냄새를 알 수 있습니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 그런 얘기는 아니고요, 사람의 정이 있느냐 없느냐…아무리 남에게 좋게 보여도 정이 없는 자는 거짓말쟁입니다. 네, 거짓말쟁입니다. 가증한 거짓말쟁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그건 거짓말쟁입니다. 자신을 슬프게 생각해본 일도, 불쌍하다 생각해본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슬픈 것처럼, 불쌍한 것처럼 읊조리지요. 남에게는 대자대비한 것처럼 몸짓이 아주 큽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한테 하는 거짓말입니다. 나는 언젠가 어느 주막에서 눈물 한 방울을 쪼르르 흘리며 이보란듯 옷고름으로 찍어내는 늙은 영감쟁이를 본 일이 있소. 눈물은 아니 흘려도 슬픈 것이오 비 오듯 쏟아져도 슬픈 것인데 어거지로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을 소중하게 옷고름으로 찍어내는 그 품을 보고 구역질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토지 2부 1권 제2편 '꿈 속의 귀마동' 중에서>(박경리 지음, 나남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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