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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운명처럼, 전생의 니체와 살로메가 만났다

등록 2017-11-07 15:10수정 2017-12-13 10:34

[애니멀피플] 내 사랑 프리드리히 니체 1회
길에서 얼음장 같은 몸으로 발견돼
키보드 점거하는 업무 방해꾼 되기까지
질투심 많은 치즈냥 니체와의 첫 만남
고양이 니체는 독점욕이 많다. 반려인이 일하지 못하도록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훼방을 놓고 있다.
고양이 니체는 독점욕이 많다. 반려인이 일하지 못하도록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훼방을 놓고 있다.

그는 질투심이 많고 독점욕이 많다. 내가 오랜 시간 일에만 집중하면 곧잘 심술을 부린다. 컴퓨터 앞을 가로막는 거다. 외출했다 한참 만에 돌아오면 현관문 앞에서부터 그가 부르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빨리 안 들어와?” 어김없는 잔소리쟁이다.

출장을 가게 되어 그의 식사를 친구에게 부탁하면 출장지로 어김없이 카톡 메시지가 날아온다.

친구: “나만 들어가면 소리소리 질러.”

나: “영상 좀 보내봐.”

영상 속 그는 그야말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까칠남이다. 흡사 성질 고약한.

친구: “꺼지라는 거 같아.”

나: “설마.”

친구: “이런 거 같은데. 나도 사람이 그리워, 하지만 넌 우리 엄마가 아니야. 간식이나 주고 꺼져.”

다른 사람은 싫어. 오직 너야 라는 말, 사랑은 독점욕을 표현할수록 달콤하게 타오른다. 결정적으로 친구의 이 말은 오랫동안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이 아이는 너 없이는 안 되는 거 같아.”

오직 나만 기다리고 사랑하며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밖에 없는 그. 나는 그의 연인이자 하인이자 엄마다. 그는 수컷 고양이. 이름은 프리드리히 니체.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니, 그는 나에게 와 연인이 되었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은 그가 내가 부르니 꽃이 되었다는 시처럼. 이름은 존재의 정체성이며 운명이다. 고양이의 이름이 철학자가 된 것은 사실 질투 때문이었다. ‘미학자 진중권씨의 고양이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라는데. 그럼 나도 철학자의 이름을 붙여줘야지.’

그런데 작명은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를 붙이자니 칸트는 너무 딱딱하고 스피노자는 부르기에 너무 길었다. 니체가 딱 적당하다 싶었다. 게다가 니체는 루 살로메의 연인 아니었나. 대학 시절 루 살로메를 흠모했다. 그러나 루 살로메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팜므파탈이라는 거다. 하지만 현대의 가치로 재해석하자면 루 살로메는 당대 최고의 지성인 중 하나였다. 지적인 대화가 가능한 여성. 니체에게 살로메는 환희였고 감동이었을지 모른다. 당시 니체는 루 살로메에게 집착을 하다못해 그녀를 비난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지금 시대로 보면 그야말로 ‘찌질남’이었던 걸까.

니체는 운명이라는 단어로 살로메와의 첫 만남을 설명했다고 한다. 반려견을 두 마리 천국으로 보낸 후 펫로스에 시달렸던 내가 다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가 운명처럼 왔다. 마치 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만난 니체와 살로메처럼. 전생에 니체를 아프게 한 죗값으로 현생의 살로메는 이 까칠한 고양이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집사로 전락했다. 이것이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의 운명적 첫 만남은 ‘대표님, 어쩌죠?’ 에서 비롯했다. “대표님 큰일 났어요!” 동네 캣대디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연인즉슨 “밥 주고 돌아섰는데 동네 고양이가 내 발밑에 자기 새끼를 두고 가는 거예요. 새끼를 보니까 눈곱이 잔뜩 끼어있고 몸이 너무 차요. 얼음장 같아요. 어쩌죠? ”

급한 대로 병원으로 가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증상을 들어보니 어차피 오래 못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고양이들의 척박한 삶에 대해서야 익히 알고 있는 터. 그런데! 사흘 후에 캣대디에게 전화가 왔다.

“대표님 고양이 멀쩡해졌다고 데려가래요. 어쩌죠? 첫 번째 ‘어쩌죠?’는 병원비가 걱정이라는 뜻. 두 번째 ‘어쩌죠’?는 보호할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사진을 보니 아기 고양이가 정말 귀여웠다.

“금방 입양 가겠죠. 일단 데리고 오세요.”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금방 입양을 갈 것이라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갔지만 입양 문의는 오지 않았다. 이미 구조되어 입양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아기 고양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내 무릎 위로 어깨 위로 머리 위로 책상 위로 컴퓨터 본체 위로 책 위로. 요정처럼 천사처럼 때론 악동처럼 달리고 뛰고 날아다녔다. 귀여운 아기가 어엿한 청년이 되어갈 무렵 나는 의문이 생겼다. 왜 니체의 엄마는 자기 새끼를 버리고 간 것일까?

글·사진·그림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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