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깃들었던 고양이 에밀리가 사라졌다. “한참을 사라졌다가 또 나타나기도 해요” 라고 동네 캣대디가 위로했지만. 상실감은 의외로 컸다. 혹여라도 에밀리가 추울까 봐 입구에 쳐놨던 비닐이 바람에 찢어졌지만, 나는 고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너덜너덜해진 비닐이 바람에 밤이고 낮이고 서걱거렸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구조하지 않는 활동가
나는 늘 구조 요청에 응하지 않는 나쁜 활동가였고, 냉정한 대표였다. 왜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마음을 주는 동물들에게 나는 한없이 헌신적이었다. 사랑하면 아팠다. 그래서 냉정한 척 아닌 척 외면해왔다. 동물권 운동은 오래전 주인에게 학대받아 눈이 먼 강아지 한 마리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달려왔던 길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강아지처럼 다른 동물들에게도 행복한 삶을 열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십수 년의 시간이 흘렀다.
십년간의 경험에서 배운 것은 많은 동물에게 행복한 삶을 열어주겠다는 것은 이상에 가깝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대부분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현실에 대한 아픈 자각과 통찰은 현실 속에서 나를 냉소적으로 만들었다. 단체를 만든 지 7년째, 나는 지금 내 뒤를 이을 사람을 찾고 있다. 내가 설립한 단체지만 ‘동물을 위한 행동’은 내 것이 아니다. 회원들의 것이고, 동물들의 것이다. 활동가들에게 기회와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단체를 만든 것이기에, 이제 나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키워낼 필요가 있다. 내가 오래 한 자리에 있다 보니 활동가들이 나에게만 의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용단이 필요했다. 대표가 된다는 것은 늘 책임져야 하고 많은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일이다. 외로운 길이다.
늘 집사를 가만히 두지 않는 고양이 니체. 업무를 방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하라고 감시하는 것 같다.
나는 구조도 거의 하지 않았고, 외부에 적을 만들어 공격해 이슈를 끌지도 못했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차마 하지 못했다. 자극적인 사진으로 후원금을 모으지도 못했다. 그 이유에서 활동가들을 고생시켰다. 많은 후원금을 모아 인건비를 많이 주어야 좋은 대표인데. 늘 적은 활동비를 주고 많은 일을 시켰다. 악덕 대표라고 욕을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외롭고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었는데, 진실 되지 못한 태도는 견딜 수 없었다.
‘티 안나는’ 활동의 의미
나는 늘 전문적이고 싶었고, 합리적인 태도로 설득하고 합의하고 싶었고, 그런 이유에서 어려운 글을 쓰고 읽고 티가 안 나는 일만 해왔다. 지금도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관심 없어 하고, 모두가 불편해하는 글을 읽고 있다. 많은 활동가들이 유기 동물에 신경 쓸 때 동물원을 다녔고, 동물원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물고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실험기관 앞에서 자극적인 시위를 해야 후원금이 들어 올 텐데, 어려운 원서 번역해서 기관에 주고 되도록 동물을 아프게 하지 말자고 설득을 하러 다닌다.
나는 바보다. 그래도 내 양심은 속일 수 없었다. 오랜 경험에 비추어보니 동물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고통스럽게 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회피하고 싶어했다. 결국 동물 복지도 인간을 설득해야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가올 가난이 두렵지만 설마 굶어 죽을까 싶다. 이 용감함의 기원은 역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내 인생의 정체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돌아보니 내게 남은 것은 텅 비어가는 통장 잔고와 고양이 니체 한 마리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고양이 연인 하나만이라도 내 편이라면, 내 인생도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외치고 싶다. 어디 나 같은 바보 또 없나요? 외롭고 가난해도 나름 쫄깃한 인생. 나처럼 거침없이 달려갈 사람.
글·그림·사진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