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염은 췌장 효소가 췌장 주변을 파괴하면서 복막염이 진행되고, 혈관을 타고 전신에 염증을 일으키며 심각해질 수 있다. 특히나 면역력이 약한 노령 동물의 췌장염은 순식간에 염증으로 진행된다.
“췌장이 안 좋으면 췌장을 먹이면 좋다는데?”
“네에??!!”
‘베이비’는 췌장염 때문에 고생 중이었다. 14살 요크셔테리어인 베이비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배탈이 나서 온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다. 속이 불편하면 밥을 알아서 먹지 않는다는 ‘기특한’ 베이비는 결국 며칠 동안 설사와 식음 전폐로 췌장염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췌장은 우리 몸의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소화효소가 모두 분비되는 곳이다. 췌장에서 만들어진 소화효소가 십이지장으로 분비되고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소화효소들이 췌장조직 내에서 활성화되어 음식물이 아닌 췌장 자신을 소화하게 되는 상태가 바로 췌장염이다.
실제 많은 수의 강아지들이 ‘만성 췌장염’(Chronic pancreatitis)을 앓고 있다. 꼬마슈나우저(미니어처슈나우저), 요크셔테리어, 셰틀랜드양몰이개(셰틀랜드시프도그), 비숑프리제 등은 유전적으로 췌장염에 취약하다고 알려졌다.
유전적인 요인 외에도 췌장염이 생기는 원인은 당뇨나 호르몬 질환 등이 있지만, 과다한 지방이나 탄수화물 섭취가 주된 원인이다. 베이비의 경우도 역시나 ‘음식’이 문제였다. 할머니의 사랑은 맛난 음식으로 표현됐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맛난 건 기름지고 칼로리 높은 음식이 대부분이니.
췌장염은 췌장 효소가 췌장 주변을 파괴하면서 복막염이 진행되고, 혈관을 타고 전신에 염증을 일으켜 심각해질 수 있다. 특히나 면역력이 약한 노령 동물의 췌장염은 순식간에 염증으로 진행된다. 베이비도 염증 상태가 좀 심각했다. 췌장염을 할머니에게 이해시켜 드리기는 쉽지 않았
다. 기특한 베이비는 반나절만 굶으면 다시 밥을 잘 먹는 애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베이비가 병원 온 즈음에 병원에 췌장염 환자가 많았다. 보호자들끼리 ‘우리 애는 구토가 심해서 췌장염인 줄 알았다’ ‘우리 애는 밥을 안 먹고 배가 아픈지 몸을 웅크리고 있더라’ 등등 각각 다양한 증상을 얘기하면서, 췌장염이 잘 낫지도 않고 죽을 수도 있단 말에 할머니 걱정은 태산 같아졌다.
구토하면 우선 금식을 해야 한다는 설명에도, 할머니는 ‘빨리 뭐라도 먹어야 할 텐데…’ 하시며 걱정만 하셨다. 자칫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을 때에도 계속 ‘밥을 못 먹으면 기운이 안 나는데, 뭐라도 먹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을 하셨다. 할머니 생각에는 밥이 ‘보약’인데, 베이비에겐 밥이 ‘독’이 되는 상황이 납득이 안 되셨던 거다.
입이 짧아 처방식을 먹지 않는 베이비 때문에 입원해 있는 동안 처방식을 강제로 먹여야 했다. 몸에 좋다는 북어죽도 끓여 오고, 소화 잘되는 호박죽도 끓여 왔지만, 베이비는 먹고 나면 어김없이 토했다. 할머니는 우리와 계속 먹이는 거로 실랑이했다.
“할머니! 제발! 베이비는 처방식과 물만 먹어야 한다고요. 지금 할머니가 주시는 음식은 다 췌장에 무리가 돼요.”
그래도 할머니는 뭐든 먹이고 싶어 하셨다. 뭐라도 먹고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그 마음은 너무나 애타는 마음이었다.
먹어야 산다는 생각이 확고한 할머니는 결국 어디서 들으셨는지 췌장이 안 좋으면 췌장을 먹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듣고는 소나 돼지의 췌장을 구해다 먹이겠다고 하신 것이다.
다행히 베이비는 고집을 꺾고 저지방 처방식을 먹기 시작했고 퇴원을 했다. 물론, 할머니에게 어떤 기름진 음식도 먹이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받았다. 하지만 뭐든 주고 싶은 할머니를 완전히 말릴 순 없었다. 그래서 삶은 양배추를 갈아서 한 티스푼만 처방식에 얹어주는 거로 합의를 봤다. 베이비는 계속 약물치료를 받으며 집에서 관리 중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본 이유는 베이비의 할머니 때문이었다. 자꾸 내 눈에는 <너에게 췌장을 먹이고 싶어>로 보였다. 사실 영화에서 췌장암인 주인공 소녀가 나오긴 하지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는 말은 췌장암과는 상관없었다. 그걸 알고 난 후에도 자꾸 ‘너에게 췌장을 먹이고 싶어’로 보이는 건, 췌장을 먹여서라도 낫게 해주고 싶은 할머니의 막무가내 사랑 때문일까. 할머니, 베이비는 앞으로 저지방 음식만 먹어야 해요. 할머니도 베이비도 오래오래 사세요.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