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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인간과동물

“니체, 난 네가 원할 때만 만질거야”

등록 2018-03-20 11:20수정 2018-03-20 14:16

[애니멀피플] 전채은의 나의 사랑 프리드리히 니체
단돈 몇 천원에 파는 ‘동물 체험’이라는 폭력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맘대로 만져도 될까
동물과의 스킨십에도 ‘소통’이 필요해
‘미투 운동’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부패한 권력과의 투쟁에서 이제 다양한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는 시민운동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동물을 위한 활동을 하다보면 갖가지 이슈에 대응하게 되는데 그 중 동물체험을 빙자한 만지기 행사가 있다. 동물을 함부로 학대하는 행위 모두에 화가 나지만 특히 체험전에 분노하게 되는 것은 동물 체험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의 논리 때문이다.

내가 니체를 만질 수 있는 시간

‘이쁘다’라고 말하며 처음 본 동물을 만지는 사람들을 보면 여성에 대한 추행과 중첩되는 측면이 있다. 동물 체험을 합리화하는 논리에는 동물을 만지는 것은 체험하는 것이고 그 행위를 통해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다는 사고가 숨어 있다. 철저히 상대방을 대상화하는 논리다. 동물에게 ‘널 만져도 되니?’라고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은 말을 못한다. 그렇다고 이런 질문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킨십이 서로에게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고발에 반드시 따라오는 변명에 이런 것이 있다.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다.’ 상대방은 합의가 아니라고 하는데 왜 한 쪽은 합의라고 할까. 합의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합의가 아니라는 거다. 여성은 수치심 때문에, 피해를 당할까봐, 혹 ‘꽃뱀’이라는 소문이라도 날까봐. 참고 숨기고 기억에서 지워내려는 소극적 행동을 한다. ‘왜 바로 싫다고 반항하지 그랬어?’라는 반문은 여성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하물며 동물은! 그럼 묻자. 말을 못하니까 내 맘대로 해도 된단 것일까?

나는 니체가 가만히 있을 때 절대 만지지 않는다. 자유 시간을 즐기는 것은 철저히 니체의 의지에 맡겨둔다. 집사가 할 일은 니체가 자유롭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공간과 재밋거리를 제공하면 그만이다. 그럼 언제 니체와 스킨십을 하냐고? 니체가 내 무릎 위에 올라올 때다. 니체는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지 않는다. 먼저 나를 쳐다보고 “야옹” 말을 걸기 때문이다. 내가 무릎을 톡톡 치면 그제서야 니체가 올라온다. 그리고 목 부분을 천천히 만지면 눈을 감고 목을 뒤로 젖힌다. 그리고 골골골. 니체가 자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만져도 별 반응이 없다면 더 이상 만지지 않는다. 골골하지 않는다면 니체는 지금 다른 곳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책상위에 재미있는 물건이 있다거나. 니체가 다른 데 정신이 가 있다면 나는 만져선 안 된다. 스킨십은 소통이다. 나의 손길에 상대방이 좋아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럼 만지고 싶은 욕망은 어쩌냐고? 사랑한다면 나의 욕구보다 상대방의 행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니체가 행복해할 때 행복한데 그럼 나는 니체를 덜 사랑하는 것일까. 스킨십의 시간을 니체가 선택하도록 두는 이유는 니체와 내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고 사실상 니체의 삶의 결정권을 내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내 위주로 생각했을 때 상대방을 억압할 소지가 생긴다.

예쁘면 다 만져도 되나요?

사람들이 주장하는 욕망과 욕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고 묻고 싶다. 성적 욕구, 만지고 싶다는 감각적 요구는 감춰지고 쌓이고 쌓여 분출되지 못한다고 해서 어디선가 폭발해버리는 날 것의 원시적 욕망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인간의 욕망 역시 만들어지거나 왜곡되거나 변형되거나 새롭게 창조된다. 성폭력, 성희롱, 성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여성을 만나지 못해 욕구불만에 빠진 불쌍한 영혼이던가? 그들 대부분은 아내가 있거나, 애인이 있거나, 혹은 아내나 애인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추행은 오히려 위계적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너는 거기에 있고 나는 만질거야. 니가 이쁘니까.’ 묻지 않고 살피지 않는다. 명백히 동물 체험도 성추행도 폭력이다. 반드시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 아니다.

나는 거리에서 반려인과 산책하는 개들을 만지지 않는다. 혹시라도 개들이 놀라거나 당황할까봐 아무리 예뻐도 흘긋 쳐다보는 것으로 그친다. ‘이쁘다’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입가에서 맴돌고 만다. 그런데 전철에서 이쁘다고 남의 아이를 만지는 분들이 있다. 물론 그런 행위가 막 허용되던 시대도 있었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강조되던 시대, 개인과 개인의 거리가 뒤엉키던 시대. 개인주의가 없는 시대. 국민가수에서 더 나아가 국민여동생이 있던 시절. 왜 문근영이 우리 모두의 여동생이어야 하는가?

합리적 개인주의가 없던 시절에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아이들을 그냥 만졌다. 단지 아이가 이쁘다는 이유로 단지 지나가다 본 개가 이쁘다는 이유로 단지 그 동물이 이쁘고 내가 돈을 냈다는 이유로. 아이가 이쁘니 만져도 된단 것일까. 그럼 노인은 왜 안만지나. 노인은 피부가 쭈글거리고 냄새가 나서일까? 노인은 당신보다 위계가 높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전채은 대표가 무릎에 올라온 고양이 니체를 꼭 안고 있다.
전채은 대표가 무릎에 올라온 고양이 니체를 꼭 안고 있다.
5천원짜리 체험이라는 폭력

동물체험에는 종별 구분이 없다. 호랑이·사자 등 맹수만 안 만질 뿐이다. 물려죽기는 싫을테니까. 파충류·양서류를 비롯하여 개·고양이도 예외 없다. 최근에 한 동물원에 고양이 체험 공간이 생겼다. 모두 품종묘였다. 사람들이 들어와 이 고양이, 저 고양이를 만졌다. 고양이 털 만져 기분이 좋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고양이들에게 왜 묻지 않는 것일까. 물론 자신이 만진 고양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서로를 알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관람객들은 5000원을 주고 들어와 잠시 고양이를 만지고 다시 가면 그만이다. 돈을 주고 고양이를 만진 것이다. 물론 그 고양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고양이의 취향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고양이를 만지게 해주고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존중과 배려 공존을 가르치고 싶다면 아이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이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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