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가족처럼 여기는 내 곁의 동물에게 최선의 마음을 다하면 되는 일이다.
선거가 끝났다. 거리 곳곳에 현수막이 넘쳐나고 아침마다 지하철역 앞에는 각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나와 시민들에게 선전하던 그때, 한 현수막에서 ‘봉제 산업 활성화’란 표현을 발견했다. 그 현수막이 걸려있는 곳 주변은 봉제공장이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재개발로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 있다. 변화가 빠른 서울에서 재개발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였다. 원주민을 쫓아내고 동물도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폭력에 반대하는 것은 정의를 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있을까. 무엇보다 주민들의 삶에 무슨 영향을 줄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각종 공약이 쏟아진다. 책임은 질 수 있을까. 아, 나중에 예산이 떨어졌을 때 주민들이 반대해서, 여건이 안돼서 등등 말을 바꿔버리면 그만일까.
동물복지가 그야말로 뜨는 새로운 아이템이 되자 선거를 앞두고 여러 정치인이 동물 관련 공약을 발표하였다. 동물병원 진료비 인하 같은 공약이야말로 현실성 없는 공약이라는 것을 이곳 ‘선수’들은 다 안다. 무엇을 짓는다, 만든다 등 폼 잡는 공약일수록 뻥튀기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천만이나 되는 반려인이 표밭이라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이겠지만, 반려인 중 일부는 ‘내 개만 사랑해요’라는 생각으로 가득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최근 한 불법 번식장에서 개와 고양이들이 구조됐다. 동물보호법 개정과 동물에 관한 시선의 변화로 불법 농장이 점차 폐쇄될 전망이다. 이제, 이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동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동물복지의 실현은 보여주기식 공약과는 정반대 편에 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장기간의 계획을 세워야 하며, 당장에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끈질기게 이루어내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 다른 당과도 협력해야 한다. 그런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십년 전에도 유기동물의 수는 10만이었다. 매년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8만~9만, 큰 변화는 없다. 사람들이 동물에 관심만 기울이면 뭐하나. 숫자가 줄고 있지 않은데. 그러나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정치인이 없다. 아, 사실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기간에 하기 어렵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정치인의 노력으로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말해라! 하지도 못할 공약 남발하지 말고.
얼마 전 한 불법 번식장에 대한 제보가 들어왔다. 참혹한 환경에 방치된 개와 고양이가 100여마리 있었고, 번식업자는 일부 개와 고양이들을 포기할 의사를 비쳤다. 전국 각지에서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모였고 현재 구조가 진행 중이다. 법 개정을 통해 번식업이 허가제로 바뀌고, 개 식용 반대 운동이 점차 격화되면서 불법 농장들이 조금씩 폐쇄될 전망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 우리는 폐쇄된 농장의 동물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까지 할 시점에 왔다.
평등한 관계가 정착하기 위한 원칙은 어렵지 않다. 약속이다.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약속은 이런저런 핑계로 어긋났다. 복지와 공존이라는 번듯한 말만 무성하게 할 것이 아니라 버려지고 방치된 개와 고양이부터 지키자.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제 불법 농장에서 쏟아져 나올 동물들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이보다 명확한 정부의 과제가 있을까.
나는 오래전 강아지를 키울 환경이 안 되었을 때 3천만원 빚을 내서 이사한 적이 있다. 친구를 위해 쓴 3천만원 빚이 과연 빚일까? 혹자는 나의 열정적인 동물 사랑에 대해 극찬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친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상식에 맞게 살려고 노력할 뿐이죠.” 가족처럼 아끼겠다고 약속해놓고 왜 마음이 바뀌었다고 버리나.
지금은 고양이 니체를 사랑하니, 니체에게 최선을 다하자. 관심을 조금만 밖으로 돌리면 내 할 일을 방해하면서까지 최선을 다해 애정을 요구하는 니체.
사람들이 다 제각각이듯 나는 동물에 과도한 애정을 느끼는 편은 아니다. 내가 스스로 이 동물 저 동물을 찾아 데리고 온 적도 없다. 그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갈 곳 없는 동물들 몇 마리와 함께 살아 본 것뿐이다. 그러나 한번 마음에 품은 동물에게는 최선을 다했다. 동물복지는 애정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의 문제다.
지금은 고양이 니체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니체에게만 최선을 다할 거다. 어차피 다른 고양이에게 관심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난리를 치는데 내가 어찌 다른데 눈을 돌릴까, 감히 집사 주제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니체가 나보다 일찍 ‘무지개다리’를 건너겠지. 이후 혼자가 되면 한동안 니체를 그리워하겠지만 동물을 다시 들이진 않을 거다. 물론 길 가다 어떤 고양이에게 낙점된다면야…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 볼 일!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