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진(맨 왼쪽)씨 등 충남 보령 주교어촌계원들이 29일 오전 마을 바지락양식장에서 갯벌 상태를 확인하는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29일 오전 9시 충남 보령시 주교어촌계 바지락양식장, 하늘은 맑고 바다는 잔잔했다. 호미 들고 장화 신은 주교어촌계원 10여명이 갯벌로 향했다.
“이 사장님 한참 만이어유.” “경득 어머님 잘 지내셨어요?” 수인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주민들은 갯벌에 들어서더니 ‘썩썩’ ‘쓱쓱’ 호미로 갯벌을 긁어내기를 반복했다. 이날 계원들이 갯벌에 나온 것은 바지락의 천적인 쏙(갯가재와 생김새가 비슷한 쏙과에 속한 갑각류)의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어촌계는 2012년께 갯벌에 쏙이 창궐해 바지락 수확이 크게 줄어드는 피해를 입었다. 국립수산과학원, 보령시 등과 쏙 퇴치에 나서 3년 만에 바지락 생산량을 예년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이 사장으로 불리는 이형진(78)씨는 2010년 부인과 함께 인천에서 어촌마을로 이사 온 ‘귀어자’다. 그는 “바다 냉장고가 겨울을 잘 나야 내년 수확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다 냉장고는 언제 나가도 무엇이든 들고 올 정도로 갯벌에 먹을게 넘친다는 뜻이 담긴 주민들 은어다. 그는 “집사람이 아파서 서울 병원에 다니는데 열차 타면 2시간 반, 버스 타면 2시간이면 간다.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고 주민 인심이 넉넉해 좋은 데다 면 소재지에 사는 맨손 어민이어서 정책 혜택도 쏠쏠하다”고 귀띔했다.
“형님 저짝 좀 긁어봐. 있어?” “기다려봐 봐 여기까진 안 왔구먼.” 임석균 어촌계장의 물음에 이형원(64)씨가 대답했다. 이형원씨는 2014년 퇴직하자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처가인 보령 오천면과 가까운 이곳에 자리잡았다. 그는 “정착 의지만 확실하면 6개월 만에 어촌계원이 될 수 있다. 주민들이 어촌계 가입 조건을 크게 완화했다. 매일 음식을 나눠 먹을 만큼 이웃 간 정이 두텁다”고 전했다. 이씨 부부가 서툰 솜씨로 지난 5~11월 바지락 어로에 참여해 번 돈은 약 800만원이다. 텃밭에서 반찬이 나오고 연금도 받으니 사는 데 어려움은 없다. 이 마을은 돈 빌리는 주민이 없단다. 어촌계원이면 3천평 논농사 짓는 것보다 낫고 늘 일할 게 많아서 게으르지 않으면 살림이 군색하지 않다고 했다.
충남 보령 주교어촌계원들이 29일 오전 마을 공동양식장에서 작업을 한 뒤 바지락 풍년을 기원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
지난 6월 이웃한 군헌어촌계원이 된 엄애정(43)씨는 시아버지, 부부, 자녀가 함께 경기도 시흥에서 귀어했다. 엄씨는 “부부가 낚시를 좋아해 늘 어촌에 살고 싶었는데 귀어한 것에 만족한다. 낚싯배를 하려고 한국어촌어항협회에서 교육도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어업 인력과 어촌 경쟁력을 늘리기 위해 도시민 귀어 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진입 장벽을 낮추는 어촌계는 6천만~1억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귀어자는 창업자금으로 3억원, 집 구입비로 5천만원까지 각각 대출해준다. 한국어촌어항협회(sealife.go.kr)와 지역 귀어귀촌센터 등은 귀어 교육과 어촌 체험 팸투어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2015년 12월 말 현재 전국에서 1446가구가 귀어했다. 이 가운데 충남은 505가구로 전남(500가구)에 앞서 귀어 가구가 가장 많았다. 올해도 충남에는 88가구가 귀어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충남 167곳 어촌계 계원은 2015년 1만5362명에서 지난해 1만6162명으로 늘었다.
이성열 보령 귀어지원센터장은 “‘한번 해볼까’ 식으로 귀어했다가 적응 못 한 분도 많다. 충분히 알아보고 준비해 귀어 예정지에서 6개월~1년 정도 살아본 뒤 확신이 서면 그때 귀어하는 걸 권한다”고 조언했다. 보령시 귀어지원센터 (041)932-2254, 2243.
글·사진/보령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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