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노르웨이의 숲>은 고급문학의 죽음을 재촉하는 허드레 대중문학이다.(…)도발적이고 독자들의 허를 찌르기는 하나 성적으로 격리된 수용소 재소자들이 일상적으로 나눔직한 성의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71)씨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호되게 비판하고 나섰다. 유씨는 <현대문학> 6월호에 기고한 ‘문학의 전락 - 무라카미 현상을 놓고’라는 글에서 대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노르웨이의 숲>(한국어판 제목은 <상실의 시대>)을 가리켜 “감상적인 허무주의를 깔고 읽기 쉽게 씌어진, 성적 일탈자와 괴짜들의 교제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라 타매했다. 그는 무라카미의 “(상업적)재능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무라카미의 소설은 작가가 이미 사회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상실했거나 예술적 포부를 가질 수가 없는 시대의 언어상품”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보기에 “무라카미의 상상적 경쟁상대는 텔레비전과 스포츠와 비디오와 스테레오이다.” “그 경쟁에서 그는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고전이 보여주는 문학적 위엄의 상실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유씨의 이런 단호한 지적은 “지난 10년간 대학 초년생의 문학독서 성향을 조사”해 온 결과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맞닿아 있다. 인구 대비 대학생수 전 세계 1위(1997년)라는 통계와 젊은이들의 문학적 교양의 결여 사이의 불일치를 겨냥해 그는 “그들(=젊은이들)이 매우 부실한 문학교육의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한다.
유씨의 문제 제기는 계간지 <문학수첩> 여름호의 특집 ‘대학에서 문학은 살아남을 것인가?’와 통하는 바가 있다. 특집은 대학 내 문학교육의 제도와 현실, 문예창작과의 기능과 한계, 최근 소설에 나타난 대학의 풍경 등을 두루 다룬다. 특히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서울대생 48명과 중앙대생 65명이 응답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유종호씨가 제기한 젊은이들의 문학독서 성향과 문학적 교양에서의 ‘이상징후’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학생들의 대중문화에의 쏠림 현상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의 경우 응답자의 37%인 24명이 시나리오와 드라마를 교과목에 포함시켜 주기를 바랐고, 게임시나리오와 장르문학을 원하는 학생도 15.4%인 10명에 이르렀다. 서울대 학생 중에서도 18.8%인 9명이 시나리오와 대중문학, 영상매체관련수업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 질문에서 서울대생들은 박완서(9명)·공지영(5명)·김영하(3명)씨와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2명)를 꼽았으며, 중앙대생들은 오정희·김영하·성석제(각 4명)씨와 함께 박민규씨와 무라카미 류(각 2명)를 들었다. 설문결과를 분석한 글에서 문학평론가 이경수(고려대 연구교수)씨는 “김영하나 박민규 같은 젊은 작가들을 비교적 선호하는 성향 역시 이들 작품에 빈번히 출현하는 대중문화적 상상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한편 ‘2000년 이후 소설에 나타난 대학의 풍경’을 점검한 글에서 고인환(경희대 교양학부 교수)씨는 “대학이 소설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런 진단은 젊은이들이 자아를 확립하고 사회의 책임감 있는 일원으로 성숙해 가는 교양 형성의 장으로서 대학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유종호씨의 지적과 통하는 대목이어서 주목된다.
특집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유성호(교원대 교수)씨는 “21세기 문학의 독자적 가치는 ‘자본’과 ‘매체 권력’ 혹은 익명의 대중적 감각에 다가서고 발맞추고 순응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러한 대세에 저항하고 맞서는 미학적 전위에 의해 구현될 것”이라면서 지금의 문학이 “문학 ‘교육’이나 문학 ‘제도’ 안으로 급격히 수렴되고 있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우울한 결론을 제출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특집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유성호(교원대 교수)씨는 “21세기 문학의 독자적 가치는 ‘자본’과 ‘매체 권력’ 혹은 익명의 대중적 감각에 다가서고 발맞추고 순응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러한 대세에 저항하고 맞서는 미학적 전위에 의해 구현될 것”이라면서 지금의 문학이 “문학 ‘교육’이나 문학 ‘제도’ 안으로 급격히 수렴되고 있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우울한 결론을 제출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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