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옛사람 마음 요모조모 알리는 통역꾼

등록 2006-08-24 19:50수정 2006-08-25 14:51

정신문화연구원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투신
자기 분야에만 매몰되는 ‘전문가 오류’ 실감
문화현상 다각도로 보면서 미의식 정리
‘상징’ 코드로 읽은 전통미술은 필독서로
한국의 글쟁이들/⑦ 전통미술 전문 저술가 허균씨

21세기 대한민국 독서가들이 책으로 만나게 되는 ‘허균’은 두 명이다. 한 명은 누구나 아는 그 허균, 바로 <홍길동전>을 쓴 조선시대 허균이다. 또 한 명의 허균을 이미 알고 있다면, 당신은 전통문화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전통미술 전문 저술가 허균(59·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씨가 두번째 허균이다.

전통미술 저술가 허균이란 이름은 아직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민화나 고궁, 우리 옛그림, 다양한 전통문화의 상징 등 다양한 우리 전통미술에 관심을 갖고 이 분야 책을 읽어보려 한다면 허씨의 책을 피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 출판계에서 대중들을 위한 알기 쉬운 전통미술책을 쓰는 가장 대표적인 저술가가 바로 허씨다. 서양미술에 대한 책을 쓰는 국내 저술가는 여럿이어도 우리 전통미술 책을 쓰는 저술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 오주석씨가 세상을 떠난 뒤로 현재 전통미술 분야쪽에서 대중들과 같이 호흡하는 전문가는 허씨가 거의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씨의 책들은 전통미술이란 주제의 성격상 판매부수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허씨의 책들은 나온지 몇년 이상 지난 것들도 꾸준히 생명력을 이어가며 고르게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통미술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또한 우리 것에 대한 무지를 깨우쳐주는 동시에 한단계 더 나아가 “옛 사람들의 마음을 읽게 해준다”는 것이 독자들이 꼽는 허씨 책의 매력이다.

재미있는 것은 허씨 자신은 자신이 ‘저술가’로서 ‘책’이란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이가 아니란 점이다. 책이란 것은 그가 고른 수단으로 책 자체가 목적은 아니란 설명이다. “책 쓰는 것은 내 생각, 그리고 일반인들이 알아야할 것들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지 책 자체를 저술하는게 목적은 아니”라고 허씨는 말한다. ‘하다 보니’ 책을 쓰게 된 것이며, 수입 측면에서도 “책으로는 별 기대를 걸지 않”는다고 한다. “8, 9쇄를 찍고 1만권이 넘어가는 책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수입이 있는지 모를 정도에요.”

허씨가 책을 쓰는 것은 대중들에게 전문가들만 알고 넘어가기 쉬운 전통미술 분야의 재미와 진면목을 알려려는 것이 더 큰 목적이다. 인문교양서 분야에서는 책이 1만권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로 불리지만 정작 1만원짜리 책이 1만부 팔렸을 때 지은이가 받은 인세는 1000만원에 불과하다. 오로지 돈을 벌겠다고 이 분야에서 책을 쓴다는 것은 경제적 관점에서는 거의 무의미할 정도다.

비록 실정은 이렇다해도, 저술가로서 허씨는 분명 ‘프로 저술가’라는 평을 듣는다. 허씨의 책들은 허씨 자신이 기획한 <한국의 정원…> 등도 있지만 출판사쪽의 요청을 받아들여 쓴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출판사의 처지에서는 출판사의 품위와 이미지를 세우는데 전통미술 책만한 것이 없고, 이 분야 필자를 섭외한다면 당연 허씨가 최우선 섭외 대상이다. 전통미술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쓸 수 있는 필자가 허씨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출판사쪽 필자 섭외 0순위

허씨가 책을 내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지만 진정 홀로 글쟁이로 살기 시작한 것은 꼭 20년 동안 몸담았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정문연)을 나온 2002년부터다. 허씨가 저술가가 된 모든 철학과 밑천이 평생 직장이었던 정문연 생활 20년, 그리고 그 세월을 쏟아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작업에서 나온다. 잠시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다가 학교생활이 싫어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허씨는 정문연에 들어갔고, 그 뒤 정문연 최대의 사업이었던 이 백과사전을 만드는데 책임편수연구원으로 참여해 청춘을 바쳤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전통미술이란 한국인들에게 어떤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전문가로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주고받았다. ‘전문가의 편협함’ 또는 ‘전문가들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도 평생의 고민거리였다.

“전공에만 너무 천착하는 것이 문제라는 걸 실감했어요. 백과사전에 들어갈 항목을 전문가들로부터 글을 받으면 자기 분야의 관점과 관심사로만 써오는 거에요. 미술사쪽은 특히 더 그래서 너무 양식사에만 치중하고, 바로 인근 분야조차도 아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화현상이란 것은 성립요소가 굉장히 다양한데, 주변 문화요소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거죠. 백과사전 작업을 하면서 사물을 여러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어요.”

최대한 다각적으로 문화현상을 바라보려는 자세는 이후 그대로 그의 저술 원칙이 된다. 2002년 정문연을 떠난 뒤 허씨는 이 때 느꼈던 문제의식을 저술작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전공은 회회사였지만 점점 관심범위를 넓혀갔고, 이후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우리 전통미술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을 펴내기 시작했다. 대표작인 <한국의 정원…>은 이같은 허씨의 강점과 차별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이다. 허씨가 이 책을 낸 뒤 전국 여러대학 조경학과에서 잇따라 특강요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가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우리 전통 정원에 담긴 철학과 미의식을 정리한 책을 쓴 이가 조경학계에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에만 빠지는 함정을 벗어나 대중들의 관점에서 전통문화를 접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것도 허씨가 이뤄낸 성과라고 평할만하다. 특히 우리 전통미술을 주요 ‘상징’의 코드로 들려준 것은 그가 처음이다. 너무나 당연한 접근방식일 수 있지만 이를 독자에 맞춰 책으로 처음 써낸 것은 ‘콜럼버스의 달걀’같은 작업이었다. 1999년 펴낸 <전통미술의 소재와 상징>이 전통문화의 다양한 상징과 그 의미에 대한 필독서가 되고, 이후 대중서임에도 이분야 참고문헌으로 자주 인용되는 점은 그의 저널리즘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전통 이해의 단초 ‘문양’ 쓸 예정

앞으로 그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문양’이다. 우선 우리 문양부터 시작해 외국의 문양까지 아울러 포괄적으로 들여다볼 작정이다. “전 문양이란 게 꼭 난자 같아요. 그 단세포가 분할해 사람을 만들잖아요. 문양이란게 꼭 그래요. 전통을 이해하는데에는 외형보다 그 배후와 의미가 더 중요한데, 문화현상을 다방면으로,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문양입니다.” 문양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활속에서 흔히 보고 접하면서도 그 진면목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가령 태극문양 같은 거에요. 너무나 친숙한데도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문득 허를 찔른 듯했다. 앞으로 나올 허씨의 책이 그런 무지를 어느 정도 메워 줄 것 같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허균이 말하는 내 책은…

나는 오늘 옛 그림을 보았다(1997)

북폴리오 펴냄

<뜻으로 풀어본 우리 옛그림>의 개정판. 일반인들이 잘 아는 그림들인데 누가 그렸는지는 알지만 진면목을 모르는 것들로 골랐어요. 산수, 인물, 풍속, 사군자, 민화 다섯 분야로 나눠 우리 옛그림에 담긴 한국적 정서를 심도 있게 다뤄보고자 한 책입니다.


전통미술의 소재와 상징(1999·절판)

교보문고 펴냄

소위 상징과 의미에 대한 필독서처럼 되어 있어요. 우리 전통 미술을 지금까지는 주로 양식사로 보아왔는데 이렇게 상징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는 점, 이렇게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전통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주자고 했어요.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2000)

돌베개 펴냄

사찰은 ‘불교미술의 박물관’이 아니라 수행의 도량입니다. 절에 있는 다양한 유물들은 수행의 봉사용이지 전시작품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하나하나 종교적 해석이 필요하고, 그래서 외형보다는 그 교리적 배경이나 예법과의 관련성을 아는게 필요해 이해를 돕고자 썼습니다.


한국의 정원-선비가 거닐던 세계(2002)

다른세상 펴냄

선조들의 생활철학이나 미의식을 알아보는데 정원처럼 좋은 대상이 없어요. 생활공간이었기 때문에 손때가 묻어있고, 우리가 직접 현장에서 미의식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전통 정원 곳곳에 들어있는 상징들의 의미를 찾아내소 이해하도록 도우면서 전통 정원 28곳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어요.


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2006)

북폴리오 펴냄

일반적으로 민화란게 서민들이 즐겨 그렸던 서민전용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강한데, 그게 아니라는 게 이 책의 주안점이에요. 문화란 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없습니다. 배경이 있기 마련이죠. 민화의 배경은 고급 문화의 저변확대였어요. 왕부터 촌로까지 모든 사람이 다 즐겼던 것이 민화라는 것이란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