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상업적이지 않은 예술이 있었던가

등록 2007-06-08 20:17

<예술의 탄생>
<예술의 탄생>
남경태의 책 속 이슈 /<예술의 탄생>
래리 쉬너 지음·김정란 옮김/들녘

이따금 들리는 고가 미술품 경매 소식은 듣기만 해도 아찔하다. 현재 세계 최고가의 그림은 지난해 팔린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으로 무려 1억 3500만달러, 우리 돈으로 1천 억원이 훨씬 넘는다. 국내 최고가는 지난 5월 22일 45억원에 팔린 박수근의 〈빨래터〉가 차지했다. 한 아름밖에 안 되는 크기의 그림이 수십억원이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지만, 5월 초에 경매된 세잔의 정물화는 가로와 세로가 두 뼘도 채 안 되는데 236억원에 팔렸다. 상품의 가치는 투하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 마르크스가 이런 현상을 봤다면 뭐라 할까? 물론 예술품의 가치는 창작의 의미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작품을 제작하는 데 걸린 시간과 노력에만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클림트, 박수근, 세잔이 자기 작품에 아파트 수십에서 수백 채 가격만큼의 혼을 불사르지는 않았을 성싶다.

이렇게 현대 미술은 상업성을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럼 고전 미술이라고 해서 상업성이 없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과거에는 미술품을 돈으로 거래하지 않았으니 순수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에나 예술은 늘 상업적이었다. 다만 19세기 후반에 화랑들이 생겨나고 미술품 시장이 형성되면서 상업성이 노골화되었을 뿐이다.

철학, 역사, 예술을 넘나드는 현대의 르네상스맨 래리 쉬너는 〈예술의 탄생〉에서 지금과 같은 개념의 예술이 탄생한 것은 겨우 200년 전이라고 말한다. 공식 미술품 시장이 없던 시절에 미술품의 고객은 바로 교회, 군주, 귀족들이었고, 화가는 자신의 예술적 동기보다 의뢰인의 취향과 주문에 맞추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암굴의 성모〉를 의뢰받았을 때 작품 내용, 성모 옷의 색상, 완성 날짜, 수선 보증 등을 명시한 계약서에 서명했다.” 미켈란젤로처럼 의뢰인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예술성을 굳게 지키려 애쓴 사람도 있었으나, 예술가도 자신의 예술로 먹고살아야 했기에 대부분은 예술가 이전에 ‘공예가’의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는 공예와 예술이 분리된 시기를 18세기로 잡는다.

미술만이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가도 자신의 음악을 사주는 팬들이 없으면 먹고살 수 없다.
남경태/번역가·저술가
남경태/번역가·저술가
지금과 같은 방송 매체나 오디오 장비가 없었던 시절의 음악 팬은 군주와 귀족들이었다. 근대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프랑스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음악이 발달한 이유는 중앙집권적인 절대주의 왕국보다 수많은 연방국가들로 나뉘어 있는 독일 지역에 음악의 ‘소비층’이 훨씬 많았던 탓이다. 흔히 예술을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로 구분하지만, 예술의 역사 전체를 훑어보아도 상업적이지 않은 예술은 없었다. 그런 구분을 앞세운 것은 18세기에 성립된 유럽의 예술관인데, 정작 유럽의 예술사도 그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래서 지은이는 각 민족과 시대의 예술을 유럽식 예술 개념으로 통합하려는 잘못된 관습에서 벗어나라고 외친다. 그것이 곧 이 책의 원제목인 ‘예술의 발명’과 번역서의 제목인 ‘예술의 탄생’의 차이를 메우는 길이다.

남경태/번역가·저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