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한국 독서계의 일본 소설 바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문학평론가 두 사람과 시인 한 사람이 문학적 ‘일류(日流)’를 나름대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놓았다. 〈21세기 문학〉 가을호가 마련한 특집 ‘한국문학 속의 ‘니혼 웨이브’’에서다.
〈열광과 냉소의 틈새, 그 좁은 문을 찾아서〉라는 글에서 평론가 정여울씨는 최근의 일본 소설 바람을 주도하는 독자들은 전통적인 문학 독자보다는 일본 대중문화의 마니아들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대중음악 등 일본 하위문화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이 그 연장에서 일본 소설로 몰려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이 선호하는 것은 “일본 내부에서도 ‘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극히 일부의 일본문학 콘텐츠”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씨는 제1차 일류를 이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주인공들은 미국 팝 문화와 소비적 감수성 및 사회로부터 단절된 연애의 공간에 갇혀 있는 “자폐적 댄디즘과 몽환적 에로티시즘”이라는 특징을 보이며 이런 부정적 특징은 하루키 이후 일본 대중문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후기자본주의의 극단적 소비주의, 전공투 몰락 이후의 일본 사회의 탈정치성”이 “다채로운 마케팅 전략과 대중문화적 요소의 활용”과 결합한 것이 오늘날 니혼 웨이브의 핵심을 이룬다고 정씨는 주장한다.
〈일본소설이 파고드는 자리, 틈새인가 공백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평론가 김경원씨가 내놓는 진단은 일본 소설에 한결 우호적이다. 그는 일본 소설이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으며 △소재가 다양하고 신선하며 디테일이 살아 있고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각과 관점이 있기 때문에 한국 독자들이 그에 열광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일본 소설이 그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가족과 연애상은 한국 독자들이 가까운 미래에 맞닥뜨리게 될 청사진으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 김씨의 판단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일본 소설의 새로움과 자극은 수용자들의 태도를 통해 창작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말로 일본 소설 바람이 한국 소설의 변화 역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다.
〈일본 소설과 ‘마음의 귀족’〉이라는 글을 쓴 시인 장이지씨도 니혼 웨이브에 공감하는 견해를 보인다.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적극 도입하는가 하면 대상 독자를 분명히 설정하고 책을 내는 일본 문단의 기획력을 그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일본 소설의 독자들은 재미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한국 작가들이 불륜 서사에 매달리고 있을 때(…), 독자들은 도시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일본 소설을 ‘선택’했다.”
장씨 역시 김경원씨와 비슷하게 지금의 니혼 웨이브를 주도하는 독자들이야말로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한국 소설의 이상적인 독자로 회귀할” 수 있다고 본다. 그가 보기에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일본 소설이 탈역사화하여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정치적 맥락과 배경을 지닌 작품들이 그 맥락과는 무관하게 소비된다는 것이다.
“일본 문학을 둘러싼 한국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 혹은 냉소, 그야말로 냉정과 열정 사이의 이분법에 갇혀 있는 듯하다.”(정여울) 이제 좀 더 성숙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할 때이다. 일본 소설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니혼 웨이브의 거친 파도를 넘어설 지혜의 일단을 이 특집에서 얻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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