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까칠한 영화 낳은 까칠한 매력

등록 2008-03-21 19:28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장르소설 읽기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임재서 옮김/사피엔스21·1만1000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스릴러다. 스릴러란 독자에게 긴장감을 통한 흥분과 재미를 만끽하게 만드는 장르. 그런 의미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스릴러이면서 스릴러가 아니기도 하다. 소설의 구성이나 외면만으로는 정통적인 스릴러의 문법을 따르는 것 같다. 우연히 살인이 일어난 현장을 목격한 자, 목적을 위해 목격자를 쫓는 킬러, 킬러를 쫓는 보안관. 잇달아 그들 앞에 펼쳐지는, 또한 그들 자신이 펼치는 폭력적인 사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정작 독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도식적인 구도가 아니라 그러한 자극적인 사건들을 서술하는 문장이다. 대개의 스릴러란 등장인물과 사건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리느냐에 따라 몰입도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장에 있는 듯, 독자 스스로 범인을 쫓는 듯 감정이입이 되어야 책의 재미가 배가되기 때문.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절제된 표현과 압축된 묘사로 상황을 이끈다. 이것은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모른다. 작가는 이야기의 진행을 설명하는 데 불친절하다. 처음에는 뭐가 어떻게 된다는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특징 때문에 집중하게 된다. 매카시가 의도적으로 삭제한 인용부호들도 마찬가지. 서술문과 대사를 구분하지 않아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오히려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는 구실을 한다. 장의 시작을 여는 보안관 벨의 철학적인 독백들과 함께 작품 전체의 분위기 또한 결정한다. 등장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극도로 드물고 선과 악의 가장 근본적인 대결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책의 서두에도 인용을 하고 있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은 예이츠의 시에서 따온 말이다. 예이츠는 이 시대에 자리할 수 없는 노인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비잔티움으로 향한다. 비잔티움은 육체의 세계에서 벗어난 영적 존재가 자리하는 곳.



임지호의 장르소설 읽기
임지호의 장르소설 읽기
하지만 다분히 시인의 자조적인 시선에서 구원을 열망한 ‘노인’은 단순히 이 세계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의 조화를 기원한다. 예이츠의 시에 빗대어 읽는다면, 나이 든 보안관의 추격전 또한 비잔티움으로 향하는 묵시록적 여정이라고 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반드시 ‘노인’을 나이 든 사람이라고 정의할 이유는 없다. 읽기에 따라 한 사람을 지칭할 수도, 한 시대를 가리킬 수도 있을 테니까.

코맥 매카시는 이 작품으로 스릴러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다. 책이 소개되기 전에 영화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터라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듯하지만, 영화를 본 독자든 보지 않은 독자든, 영화를 본 뒤든 보기 전이든, 함께 감상할 만한 작품이다.

임지호/〈북스피어〉 편집장

joe@booksfear.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