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해고 시대… 쫓고 쫓기는 ‘경쾌한 비극’

등록 2008-04-18 18:57

〈너희에게 내일은 없다〉
〈너희에게 내일은 없다〉
장르소설 읽기 /

〈너희에게 내일은 없다〉
가키네 료스케 지음·박재현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9800원

가키네 료스케는 <와일드 소울>(영림카디널, 2005)이라는 인상적인 작품으로 처음 한국에 소개됐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일본의 자국민 포기 정책을 향한 통쾌한 복수극을 보여 주고 있는데, 진중한 주제를 가볍게 풀어내면서도 주제가 가진 무게까지 가볍게 만들지 않은 수작이다. 이 작품은 일본 추리작가협회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등 세 가지 상을 휩쓸었으나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 가키네 료스케의 두 번째 작품이 나왔다.

<너희에게 내일은 없다>는 제목부터 암울하게 들리는, 이른바 ‘해고 소설’이다. 무라카미 신스케는 해고 전문 기업의 능력 있는 사원. 그의 업무는 의뢰가 들어온 회사의 구조조정 후보 사원들과 면담해 퇴직을 권고하고 대상자를 확정하는 일이다. 모두 다섯 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주인공이자 해고 전문가인 신스케가 다섯 회사의 퇴출 대상 사원들과 벌이는 공방전이다. 절대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사원들, 일정 수 이상은 대상자에 올려야 하는 해고 전문가. 신스케는 어찌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들려주면서 지금 퇴직할 경우에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 설명하는 동시에 잔인할 정도로 자존심을 건드리며 자신이 원하는 결과로 이끈다. 하지만 사원들도 각자 나름의 사정과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제목이나 소재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이 공방전은 제법 경쾌하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비한다면 심지어 유쾌하게 느껴질 정도다. 작가는 어두운 상황을 매력적인 인물들과 시트콤을 연상시키는 재치 있는 연출로 표현해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작가의 시선은 정리해고의 필요성이라든지 회사라는 조직에 붙들려 어쩔 수 없이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에 몰두하지 않는다. 그보다 시선을 좁혀, 냉정한 현실을 파악하고 다른 기회를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분명, 지금도 흔들리”면서도 “이 세계가 나쁘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각각의 생기 넘치는 인물들과 공방의 묘미, 잔잔하게 이어지는 러브스토리의 매력은 단순하게 보이는 이야기를 아주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나 인물들의 완성도는 아주 훌륭하다. 각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존재만으로도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난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 바람기가 다소 있는 꽃미남이자 여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별로 없으면서도 순진한 의협심을 발휘하는 구석을 보이기도 하는 신스케는 처음에는 밉살맞지만 결국에는 사랑스러워진다.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완전히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토록 설득력 있는 해답을 이처럼 빠른 템포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건 역시 작가의 역량이지 싶다. <와일드 소울>과 함께 가키네 료스케가 어떤 작가인지 알 수 있는 즐거운 작품이다. 전작에 비해 몰아치는 즐거움은 없지만 아기자기한 매력들이 가득 담겨 있다. 장르성이 높은 대중 소설에 수여하는 야마모토 슈고로 상 2005년 수상작.

지호 〈북스피어〉 편집장 joe@booksfear.com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