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타이 방콕에서 열린 제5회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회의에서 타이, 말레이시아, 중국 등 동북아·동남아에서 온 학자들이 역사화해와 동아시아공동체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제공
타이 방콕서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포럼’
동북-동남아 정서적 괴리감·상호 무관심 커
경제 협력관계 넘어 사회문화적 교류 넓혀야
분쟁해결 노력·인터넷 통한 역사교육도 필요
동북-동남아 정서적 괴리감·상호 무관심 커
경제 협력관계 넘어 사회문화적 교류 넓혀야
분쟁해결 노력·인터넷 통한 역사교육도 필요
‘역사화해’나 ‘동아시아공동체’ 등의 개념은 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세 나라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동남아 10개국의 협의체인 ‘아세안’(ASEAN)에 동북아 3개국이 결합하는 ‘아세안+3’처럼 동남아와 동북아가 함께 참여하는 지역협력 회의들이 발전되어오긴 했지만, 주로 서로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집중할 뿐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공동체’로서의 성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태국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은 4~5일 이틀 동안 타이 방콕에서 ‘동아시아공동체의 상호이해를 위한 역사화해’라는 주제를 내걸고 제5회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회의를 열었다. 한국, 일본, 중국, 타이, 말레이시아, 독일 등 9개국 학자들이 발표와 토론에 나섰다.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벌어져왔던 역사화해 토론을 동남아로까지 넓히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지역공동체의 가능성을 짚어보는 데 의의를 둔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전통, 종교가 뒤섞여 있는 동남아 지역은 동북아 못지않게 갈등이 심한 지역이다. 기조발제에 나선 타이 탐마삿대학의 타넷 아포른수반 교수는 ‘프레아 비히어’ 사원 지역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타이와 캄보디아 사이의 영토분쟁과 타이 남부에 정착한 말레이시아 출신 무슬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분리주의 운동을 타이 안팎의 대표적인 분쟁 사례로 소개했다. 이 두 사례를 통해 그는 “민족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 기억을 경우에 따라 선별적으로 채택하는” 타이 정부의 이중성을 비판했다. 타넷 교수는 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역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국가의 목적과 이익에 복무하고 있는 정치를, 사람들의 목적과 이익에 복무하도록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그동안 동북아 국가가 노력해온 역사화해 움직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 기조발제를 맡은 한운석 고려대 교수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은 유럽연합과 같은 동아시아공동체, 그리고 그 근간이 될 동아시아 정체성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며 “민족국가 관점의 정체성을 대체할 새로운 동아시아 관점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동남아 참가자들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분쟁과 화해를 위한 노력,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됐던 유럽연합의 경험 등을 소개했다. 한 교수는 “아시아 공통의 문화를 정의하는 것은, 동북아·동남아와 같은 좁은 범위에서부터 출발해 더 넓은 범위로 확대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현재 동북아와 동남아 사이의 정서적 거리가 크기 때문에, 유럽연합 같은 지역공동체로 가기 위해선 먼저 이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점이 주요 과제로 지적됐다.
쭐라칩 친완노 타이 탐마삿대 교수는 ‘아세안+3’에 무게중심을 두고, “아세안이 하나의 공동체로 가는 지역 통합의 과정을 밟고 있다면, 아세안+3은 공동기금 등을 통해 경제적 통합으로 향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운도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주로 경제적 영역에서의 제도 설치 등에 주요 관심을 두는 반면, 안보 영역에서는 진전이 적고 역사분쟁 등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분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을 아시아 지역협력 논의의 특징으로 들었다.
한국과 타이의 역사책을 비교 분석한 조흥국 부산대 교수는 “양쪽 교과서 모두 상대에 대한 관심이 적고, 기본적인 명칭이나 사실 등을 틀리는 등 오류가 많다”며 “서로에 대해 배울 기회를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아시아 내부에서의 문화적 교류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 전통 등이 모여 있는 동남아의 특징에 따라 역사화해와 함께 다문화주의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일한 유럽 참가자로서 공동교과서에 대한 유럽연합의 논의 경험을 발표한 롤프 비텐브로크 독일 자를란트대학 교수는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화해 움직임을 소개했다. 1993년 설립된 유럽 역사교육자들의 모임 ‘유로클리오’는 유럽연합의 재정지원을 통해 유럽 전역의 역사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2009년부터는 ‘히스토리아나’라는 이름의 인터넷 기반 역사서술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시간과 공간, 언어 등 기존의 제약에서 벗어난 인터넷 기반은 기존 민족국가의 틀에서 더욱 자유로운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에선 동남아의 주요 역사분쟁에 대한 전반적인 정리나 실질적인 분석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등 다양한 아시아 나라 참가자를 모으지 못한 점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한운석 교수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동남아 국가들과의 접촉을 넓혀가면, 중국과 일본 등도 역사화해 문제를 마냥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콕/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타이와 캄보디아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오랫동안 분쟁을 벌여 온 ‘하늘 위의 사원’ 프레아 비히어의 모습. 1962년 국제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캄보디아 영토로 결정됐으나 타이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올해 초에도 이를 두고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번 회의에선 동남아의 주요 역사분쟁에 대한 전반적인 정리나 실질적인 분석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등 다양한 아시아 나라 참가자를 모으지 못한 점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한운석 교수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동남아 국가들과의 접촉을 넓혀가면, 중국과 일본 등도 역사화해 문제를 마냥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콕/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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