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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한기총의 ‘다빈치코드’ 코미디 가까이서 볼때 그건 비극이다

등록 2006-04-05 22:48수정 2006-04-07 17:08

저공비행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세기의 미스터리 중 하나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가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것이다. 추리소설로는 싱겁고, 서스펜스는 헐렁하며, 내세우는 주장은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몇 백 년 전부터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유일한 장점이라곤 술술 읽히는 것밖에 없는 이 뻔한 책이 왜 그렇게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걸까? 내가 집어낼 수 있는 답은 단 하나다. 독서량과 상식이 부족한 독자들이 난리를 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 따위가 신성모독이라고 기겁을 할 정도라면 그 사람들은 도대체 책을 얼마나 안 읽은 것인가?

바보 같은 뉴스 하나. 28일, 박근혜 대표가 ‘2080 씨이오(CEO) 포럼 특강’에서 한기총 홍재철 목사한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종교이든 그 신성을 모독하는 영화 등을 규제할 수 있는 입법을 할 계획이 있는가?” 답변: “가능하면 삼가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법적으로 가능한지는 국회에 돌아가서 물어 보겠다.”

이것이 코미디인 이유는 여기서 동기와 방법론 모두가 당연한 상식과 논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빈치 코드>가 이단인 영지주의 입장에 바탕을 두고 있고 반기독교적이기 때문에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세속국가인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명과 분석이 더 필요한가?) 딱하게도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 논리가 정당하다고 믿는 듯하다. 여기서 장르는 전환된다. 바보짓은 멀리서 구경할 때만 코미디다. 가까이에서 볼 때 그건 비극이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세속 국가에서 종교는 좀 짜증나는 위치에 있다. 국교를 믿는 나라라면 논리는 명확하다. 성전은 법률이 되고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게 남편이 이혼한다고 세 번만 말해도 이혼이 성립되고 개종하면 사형이 선고되는 한심한 것이어도. 하지만 한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건 개별 종교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의 상대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목소리 큰 집단들의 신성을 모두 인정할 수 있는가? 이건 외교술과 정치의 문제이지, 성스러움의 문제는 아니다. 원칙만 따진다면 세속국가에서는 종교에 대한 모든 비판들은 인정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신성모독이라고 우겨도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긴 신성모독이라 주장하는 것도 쉽다. 자기 의견과 다른 주장에 딱지만 붙이면 되니까.

한기총의 <다빈치 코드> 상영 금지 운동이 불쾌한 건, 이들이 신앙과 세속적 예의를 배배 꼬아 자기 멋대로 이용하고 때문이다. 그들은 영화의 주장이 명예훼손이고 신성모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타 종교에 대한 명예훼손과 신성모독을 가장 적극적으로 저지르는 사람들이 누구더라? 이런 무익한 소란을 일으키기 전에 약간의 자성의 제스처라도 취했다면 덜 유치해보였다.

어차피 <다빈치 코드>는 개봉될 것이다. 난 거기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다들 이렇게 광고를 해주고 있으니 흥행도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배급사가 한기총을 일부러 부추겨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만들어 가지고 노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또 다른 명예훼손이다. 나는 한기총이 별 것도 아닌 평범한 할리우드 오락 영화임이 분명한 작품의 ‘홍보’를 위해 대한민국, 헌법, 민주주의, 종교와 신념의 자유…. 그밖에 인류가 지난 몇 백 년 동안 피땀을 흘려가며 이룩한 모든 소중한 가치들을 모욕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일로 소송을 걸기엔 난 너무 게으르다.

듀나 영화평론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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