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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불난 호떡집’ 참여정부 어디로 가야 하나/유재현

등록 2006-06-08 19:33수정 2006-06-09 14:59

이번 선거 결과는 진보를 팔아 보수를 살찌운 기괴한 노무현식 정치의 사필귀정
그렇다면 보수대통합의 물꼬를 트는 것만이 가장 노무현스러운 결론일 테다
민주주의 사회의 예고된, 가장 큰 정규 이벤트인 국가적 규모의 선거 하나가 막을 내렸다. 선거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즉각적으로 다음 이벤트가 올 때까지 취할 동작을 선택하도록 하거나 최소한 예측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지표는 투표함에서 꺼낸 구겨진 투표용지들에 찍힌 도장의 위치들이다.

이번 지방선거처럼 간명하고 명쾌한 결과를 내놓은 선거도 그동안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감 없는 한 편의 싹쓸이 완승. 다른 편의 깨끗한 완패. 게다가 싹쓸린 쪽은 권력을 쥔 쪽이고 빗자루를 손에 쥔 쪽은 야당이다. 쓸리긴 쓸렸으되 여전히 권력을 손에 들고 있으니 관심의 초점은 노무현정권의 향배일 것이다. 겉으로는 고개를 숙이고 빙하시대에 돌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불난 호떡집 신세일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여, 수면 아래의 물갈퀴가 바쁘기 짝이 없을 오리는 정계개편의 항로를 향해 필사적으로 물을 젓고 있는 중이다. 세간의 눈과 귀는 역시 오리의 입에 쏠리고 있다. 오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 오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푸코가 언급한 대로 광기는 ‘세상의 쉽고 즐겁고, 경박한 모든 것을 지배’한다. 이때의 광기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우스꽝스러움에 붙여진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이번 선거를 두고 본다면 부정과 부패, 거듭되는 성추행 따위의 스캔들로 점철된 한나라당과 같은 전근대적인 보수정당에게 표를 쓸어준 1천9백만의 유권자들을 이런 종류의 광기에 의해 지배된 어리석은 우민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한편으로는 진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부적절한 힐난이다.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광기에 의해 감금된 사람들보다 그런 종류의 광기가 어디에서 샘솟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언제나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정권의 3년 동안 우리 모두는 쉴 새 없이 언어의 혼란에 휘둘려 왔다. 개혁과 진보는 원래의 의미를 잃었고 심지어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의 탄생에 이르러서는 일부 영민한 자들을 빼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뻐꾸기 둥지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인간을 광기에 빠뜨리는 것은 노골적인 폭력이나 충격이 아니라 인식의 체계에 혼란을 주는 것이다. 광기란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것이지 물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훔볼트가 말한 대로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 그런데 개혁과 진보를 두고 3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빚어진 극단적인 언어의 조작은 문자 그대로 우리 사회를 광기에 빠뜨리고 말았다. 또한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 조작의 주인공마저 치명적인 정치적 곤경에 빠뜨리고 말았다. 불철저한 계획과 능력의 부족함 때문인지 아니면 우매함 때문인지를 따지는 것 또한 이제는 무의미해졌지만 사필귀정인 것만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다.

보수와 진보 또는 개혁에 대한 사전적인 해석이 그나마 쓰레기통에 처박히지 않았다면(사실은 이미 그런 지경에 도달했지만) 노무현정권의 선거 대패는 개혁과 진보를 팔아 보수를 살찌우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기괴한 정치적 노선이 바야흐로 파탄의 지점에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언어와 현실이 끊임없이 불일치하고 격렬하게 충돌하는 동안 휩싸였던 어리석음의 광기로부터 우리 사회가 이제는 헤어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런 광기는 보수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어쨌든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미쳐버리게 되면 어디로 튈지도 모르거니와 머지않아 제어할 방법도 마땅치 않게 되어 때가 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보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번 기회에 이 오리를 제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면 오리 똥으로 더렵혀진 집을 청소하는 데에 몇 년이 걸리지도 모를 일이다. 갈지(之)자로 뒤뚱거려왔던 이 오리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지독한 우환덩어리였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합리적 수준과 정신적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이익과 책략은 잠시 뒤로 물리고 지금 바쁘게 물갈퀴를 젓고 있는 이 오리를 제 집으로 인도할 방법에 신속히 골몰해야 하며 이것이 이른바 선거 후 정계개편의 방향이 되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오리를 어디로 몰아야 할 것인가. 결론적으로는 보수대통합의 물꼬를 트고 상식적인 또는 최소한 상식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는 15년 전에 유사 모델을 경험한 바 있다.
유재현/소설가
유재현/소설가
모두들 기억하겠지만 장군 출신 노태우를 가운데에 두고 이제 막 육사를 갓 나온 소위처럼 뒷짐을 진채 좌청룡 우백호를 연출했던 김영삼, 김종필의 3당합당과 같은 통합이 보수건 진보건 지금 시대의 절실한 바람이 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권력의 단물을 독점하고 있던 집단들에게는 그 분점이 고통스럽기 짝이 없던 일이어서 분란도 있었지만 결국은 그것이 보수의 최대이익을 실현하는 길이었다는 것을 증명된 바 있다. 더불어 지금은 이 길 만이 지금의 노무현정권이 직면한 정치적 위기에서 단숨에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하고 확실하며 노무현스러운 길이다. 그동안의 혼란에 넌더리가 난 대부분의 정파들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쌍수를 들어 환영할 가능성이 높다. 모두모두 행복한 구국의 결단이니 지지와 성원을 마다할 리 없다. 그리하여 우리도 이쯤에서 바보들의 배에서 내려, 저 끔찍한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 진보와 보수가 정당하게 자웅을 겨루는 그런 반듯한 나라에서 한번 살아보도록 하자.

모쪼록 한국대표팀의 독일월드컵 선전을 바란다.


소설가 유재현씨가 ‘세설’의 새 필자로 참여해주셨습니다. 1991년 중편 <구르는 돌>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유씨는 <시하눅빌 스토리>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달콤한 열대> 등을 발표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18.0> 섹션에 4차례(1월27일치부터)에 걸쳐 ‘쿠바 탐방기’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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