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생산기지 ‘러프 드래프트’
디즈니 작품 등 10여종 동시에 제작
디즈니 작품 등 10여종 동시에 제작
“지난 20년 동안 ‘안’에서는 하청이라고 폄하받았지만 ‘밖’에서는 장인으로 대접받았어요.”
13일 ‘스펀지밥’ 10돌을 기념해 <한겨레>에 최초로 공개된 서울 강남의 7층짜리 러프 드래프트 빌딩 내부는 분주했다. 밑그림→원화→동화→스캔 등의 과정을 400여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층별로 나눠맡아 10여개의 작품들을 동시에 만들어 내는 현장. 이곳에서 스펀지밥뿐만 아니라 심슨 가족을 비롯한, 세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닉, 워너 브러더스, 월트 디즈니 등의 미국 애니메이션이 생산되고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만화 작업은 ‘엉덩이’를 필요로 한다. 손으로 직접 그림을 겹쳐놓고 동작 하나하나를 한장씩 일일이 인화하던 작업이 컴퓨터 프로그램 작업으로 단순화됐을 뿐이다. 그 외에 만화의 형태와 동작을 구현하는 모든 작업들은 여전히 애니메이터들의 손 작업을 거쳐야 한다. 설립자로 1992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는 박경숙 대표는 담담하고 당당했다.
“엉덩이를 붙이는 게 힘들어 젊은 지원자들이 창작을 하겠다고 많이 떠났죠.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 어떤 입장에서 그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터가 명품 부티크가 될 수도 있고, 하청 공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애니메이션 기술의 발달에 따라 한때 컴퓨터 기술만으로 만화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만화다운’ 만화에 열광했다. 제작사들이 다시 물감이 지나간 붓칠의 느낌이나 인물 스케치에 손길을 탄 흔적을 원하게 된 이유다. 3층 원화를 그리는 파트에서 만난, 오른손에 흰 면장갑을 낀(손가락은 구멍을 냈음) 한 애니메이터는 10년째 오로지 스펀지밥만을 그리고 있다.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죠.” 스펀지밥만을 위해 꾸려진 5개 팀 30여명의 작업자들도 마찬가지다. 박 대표는 “이제는 30명 가운데 한 사람만 교체가 있어도 미국에서 알아볼 만큼 섬세한 작업이 됐고 그만큼 구현하는 퀄리티가 높아졌다”며 “인건비가 싼 중국 등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게 우리의 붓칠”이라고 말했다.
그림에 대한 10여년의 신뢰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생산과정에서의 영역을 조금씩 더 넓혀가고 있다. 사전 작업 단계인 콘티와 모델 만들기, 후반 작업인 사운드·효과 등을 제외하고 모든 작업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보조 캐릭터나 배경 등은 직접 만들어내기도 한다.
“스펀지밥이나 심슨 가족의 오랜 인기를 보면서, 중요한 것은 기술력보다 콘텐츠라는 점을 인정해요. 하지만 장인의 대접을 받는 우리의 손 기술이 그 발판이 될 것입니다.”
글·사진 하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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