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견지동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관에서 열린 리영희 선생의 1주기 추모 행사에서 여는 말을 하고 있다.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리영희 ‘추모 시민의 밤’ 행사
250여명 추억…“인간다운 사회 추구한 휴머니스트”
최영묵 “‘물러설 수 없을 때 물러서면 안된다’는 것 배워”
250여명 추억…“인간다운 사회 추구한 휴머니스트”
최영묵 “‘물러설 수 없을 때 물러서면 안된다’는 것 배워”
한평생 ‘오직 진실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우상의 어두움을 벗겨냈던 리영희 선생의 정신은 그가 죽은 지 1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빛’을 전했다. 권력과 보수언론이 만든 종편 개국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저녁, 서울 견지동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리영희 1주기 추모 시민의 밤’ 행사에는 지난해 이맘때 세상을 떠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25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행사장을 빽빽하게 메운 사람들은 때론 눈시울을 적시며, 때론 미소를 띄우며 인간 리영희를 그렸다.
여는 말을 맡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내일 종편 방송이 출범한다고 하는 등 요즘 말도 안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며 “그래도 늘 더 나은 세상이 온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봤던 선생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되 용기를 갖고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또 “선생과 같이 많은 것을 남기고 가신 분들을 기리는 일은 해가 거듭할수록 슬픔에서 축제로 변해갈 것”이라며 “오늘이 그 첫걸음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리영희가 변화시킨 나와 세계’란 제목의 좌담에서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백영서 연세대 교수, 김부겸 민주당 국회의원,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등이 자신이 접했던 리영희의 모습과 그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리영희 선생을 처음 만났다는 유 전 청장은 그에게 주례를 부탁한 일화를 소개했다. “결혼식날 ‘주례는 한양대 리영희’라고 소개하자, 이름만 듣고 선생을 흠모했던 친구들이 ‘와’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그 뒤로 백영서 교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유인태 전 의원 등 당시 많은 청년들이 리영희 선생이 주례를 봐줬던 ‘주례제자단’이 됐다고 했다. 그는 “리영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사회를 추구한 휴머니스트였다”고 기억했다.
역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선생을 처음 찾아갔다는 백영서 교수는 “선생이 <8억인과의 대화>란 책을 만들 때 조수 구실을 하고 옥바라지를 돕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어머님이 주사 맞는 걸 보고 기절할 정도로 주사를 두려워했던 선생이 말년에 병상에서 주사를 꽂은 채 ‘내가 이젠 이렇게 주사를 많이 맞는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마음이 여리고 다정다감하셨다”고 기억했다. 그는 “선생은 내 연구와 실천적 활동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추’”라고 말했다.
정년 퇴임 때까지 연구실에서 조교를 했던 최영묵 교수는 리영희 선생이 제자의 추천서를 쓸 때 평가 없이 사실 관계만 나열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취직은 돕고 싶은데, 거짓은 쓸 수 없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는 것. 그는 “선생으로부터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때에는 물러서면 안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선생은 낙관적이고 유머가 있었다”며 “(그런 태도로) ‘언론의 4대강’이라 할 수 있는 종편을 막아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부겸 의원은 리영희가 수감됐던 감방에 뒤이어 들어갔던 경험을 소개했다. “‘방장’이 인상을 쓰면서 ‘너 리영희 알아?’ 묻길래 잔뜩 겁 먹고 ‘안다’고 대답했더니, ‘며칠 전까지 그분이 이 방에 있었는데 우리 모두 감화됐다’며 ‘긴장 풀라’고 했지요.” 김 의원은 “종편 개국에 대해, 선생이라면 아마도 ‘차악이라도 선택해서 더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으라’고 하실 것 같다”며 “방송사가 직접 광고 영업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보다 조금 뒷 세대인 김병권 부원장은 “20대 중반 통일운동하다가 조언을 듣고 싶어 학교 선배였던 선생님의 따님을 졸라 처음 선생을 만났다”며 “‘당장에 조급해하지 말고 역사를 선취하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한편 리영희 선생의 기일인 12월5일에는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추모식이 열린다. 추모식은 임재경 전 한겨레 부사장의 추모사와 지선 스님의 독경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서울에서 8시30분에 차량이 출발한다. 참가문의 010-9912-0615.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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