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새 뮤직비디오 장면들.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창조경제의 좋은 예’로 첫손에 꼽히는 싸이의 입지가 지난 일주일 사이에 조금 애매해졌다. 신곡 ‘행오버’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이후의 심심한 반응 때문이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클릭 수나 외국 언론의 반응 등 기사가 쏟아지고 있긴 하지만 정작 주변에서 ‘행오버’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진공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먼저 공개된 제목 ‘행오버’는 뮤직비디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동명의 미국 코미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기대를 했으리라.(‘술 취해 하는 진상짓’의 트리플 악셀 같은 영화다. 강추.) 게다가 싸이가 누군가. 콘서트에서 소주 일병을 원샷으로 해치우는, 연예인들이 “그렇게 잘 논다”고 입을 모으는 음주계의 ‘전설의 레전드’ 아닌가. 하나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뮤직비디오를 리액션으로 설명하자면 “오… 아… 음… 흠… 아… 응?”이 되겠다.
뮤직비디오의 소재 선택은 괜찮았다. 한국의 음주 문화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니까. 음주 문화가 무슨 자랑이냐며 핏대 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수십가지 폭탄주 제조법부터 온갖 술먹기 게임, 노래를 보라. 술을 마실 때만큼은 다들 ‘창의력 대장’이다. 이 정도면 자랑해도 된다. 뮤직비디오는 편의점 라면과 삼각김밥, 숙취해소 음료, 사우나, 도미노주, 중국요리 반주, 당구장 자장면에 노래방, 디스코 팡팡, 포장마차, 패싸움까지 ‘풀코스’로 우리 음주 문화를 보여준다. 그런데, 원래 이 코스를 타면 진짜 신이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흥이 안 난다. 소주와 맥주의 상표가 너무나 정직하게 앞으로 보고 있어 ‘술 광고 같다’고 비판하려다가도 오히려 협찬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술병과 술잔이 계속 등장해도 “소주 한잔, 캬!”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게 함정. 소주 양 조절에 실패한 밋밋한 폭탄주 맛이다.
문제는 ‘한국 음주 문화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처럼 음주 문화를 ‘소개’한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걸 보는 외국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헤이 외국인, 이거 어때? 신기하지? 소주 좋아해? 두 유 노 폭탄주?”를 묻고, 볼거리를 하나하나 친절하게 나열한다. 그러다 보니 뮤직비디오의 장면 장면들과 그 속의 싸이는 이를 즐기기보다 보여주고 설명하기 바쁘다. 그 옆에 있는 스눕 독은 한국 문화 체험을 위해 막 들어온 외국인 관광객처럼 싸이가 안내하는 모든 것을 따라하는데, 그 역시 이 체험을 썩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는 외국인들이 혹시 길을 잃을까 염려했는지 중간에 꽂아둔 ‘이소룡’ 깃발(“서양인 여러분, 노란색에 까만색 스트라이프 들어간 트레이닝복이 나오면 그냥 거기는 동양인 거예요. 오케이?”)은 저 홀로 휘날린다.
싸이가 외국인에게는 친절해졌는지는 몰라도, 한국인에게는 조금 불친절해졌다. 한국인의 사고 시스템에 기본 설정으로 들어 있는 ‘소주 마시는 외국인 신기해하기’(‘한국어 잘하는 외국인 신기해하기’ 다음 항목임)나 디스코 팡팡 타는 스눕 독과 노래방에서 마이크 잡은 ‘무한도전-무한상사’의 권지용 사원 구경하기 정도가 볼거리의 전부다. 또 하나가 있다면, “외국인들은 어떻게 볼까?”에 대한 궁금증이겠다. 우리도 역시 싸이의 노래나 뮤직비디오를 그 자체로 즐기기보다 외국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쓰느라 바쁘니까. 한국 영화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면 그들의 연기보다 영어 발음에 더 주목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뮤직비디오는 ‘창조경제’에 화두를 던진다. 모두가 세계 시장을 ‘분석’하고 ‘겨냥’하라고 하지만 과연 그렇게 전략적으로 만든 문화 콘텐츠가 진짜 통하느냐는 점이다. 팬덤을 기반으로 둔 아이돌 산업에서는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로 승부하는 싸이 같은 뮤지션에게는 시장 신경쓰지 않고 전략 따위 없이 그에게 본능적으로 꽂히는 이야기를 펼치는 게 진짜 성공 전략이고, 그게 우리가 그새 잊어버린 ‘강남 스타일’의 교훈이다. 우리도 그에게 ‘세계 시장에서 성공해달라’가 아니라 ‘우리가 즐길 만한 음악을 들려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후속곡으로 예고한 ‘대디’ 뮤직비디오에서 “못난 아버지를 둔 딸아, 미안하다아아!” 패러디, 추천한다. 싸이라면 할 수 있다아아!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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