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드라마를 보다가 새로운 얼굴의 남자 배우를 발견했을 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그들의 이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1. 잘생겼는데 1) 웃는 모습이 귀엽다 2) 무표정이 멋있다 2. 키가 1) 애매하(거나 깔창이 의심된)다 2) 훤칠하게 크다 3. 뭘 입어도 1) 무대의상 같다 2) 화보 같다. 세 개 항목에서 1)번에 해당될 경우 아이돌그룹 멤버 출신일 확률이 높고, 2)번에 해당될 경우 모델 출신일 확률이 높다.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자리잡은 이종석, 김우빈, 이수혁, 홍종현, 성준, 김영광부터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 동생 역을 맡았던 안재현,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공효진의 전남친 역을 맡은 도상우, <잉여공주>에 출연하는 남주혁까지 요즘 뜨는 이들이 바로 2)번 남자 모델 출신 연기자들이다.
이전에도 모델 출신 남자 배우는 있었고, 그들 중 톱스타 반열에 오른 이들도 있다. 최근의 경향이 이전과 다른 점은 광고 모델이나 패션 모델뿐 아니라 패션쇼 런웨이를 걷던 하이패션 모델들이 많아졌다는 점과 연기자로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기존 기획사들이 모델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세한 분석은 <씨네21> 8월12일치 표지기사 참조) 그런데 요즘 잘나가는 모델 출신 배우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패션계에 종사하거나 패션 모델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 이들의 모델 시절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모델 경력은 몇 장의 패션쇼나 패션 화보사진, 또는 데뷔 시절을 회상하는 인터뷰로만 남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런웨이에서부터 이들을 알아보기엔 남자 패션 모델의 세계는 대중에게서 너무 멀리 있다. 여자 모델의 세계는 톱모델 몇몇을 통해 꽤 알려졌지만, 남자 패션 모델의 세계는 아직 닫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남자 패션 모델의 세계가 느낌 있는 남자들이 대거 포진한 ‘잠재적 노다지’라는 것을. 그리고 궁금해졌다, 저 세계의 법칙이.
자, 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면 어서들 온스타일의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가이스앤걸스>(이하 도슈코) 앞에 모이시라. 벌써 시즌5에 접어든 도슈코는 올해 처음 남자 모델까지 참가자를 확대했다. 여자 모델만을 대상으로 할 때도 도슈코는 재미있었다. 드라마나 영화, 가요 등 연예계에서 요구하는 ‘예쁨’과는 다른 모델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패션 화보 촬영에서 단 하나의 순간을 잡아내는 과정, 그리고 모델들끼리의 기싸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백조의 우아한 자태와 물속에서의 신경질적인 발버둥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이 프로그램에 때로는 늑대 같고 대부분은 순한 강아지 같은 남자 모델들이 합류했다.
도슈코의 남자 모델들은 뻔한 눈코입 대신 저마다 개성 있는 생김새, 선과 각이 살아 있는 얼굴 골격, 몸의 비율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줄사다리와 링, 뜀틀 등을 이용해 사진을 촬영하는 현장에서는 남자의 몸이 갖고 있는 역동성과 강렬함을, 런웨이를 걸을 때나 영상을 촬영할 때는 세밀한 몸짓으로 드러내는 멋스러움을 발견하게 해준다. 남녀가 함께 있다 보니 ‘러브라인’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강요)도 있지만, 그보다 남자 모델끼리 혹은 남녀 모델끼리의 신경전이야말로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유지하게 하는 끈이다. 시즌이 진행 중인 아직까지는 심사위원과 시청자 모두 남자 모델의 매력에 더 많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번 시즌 도슈코에서 만나 반가운 이가 한 명 더 있다. 심사위원으로 출연하는 모델 김원중이다. 남자 모델계에서 최고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김원중은 ‘모델 출신’이 아닌 ‘현직 모델’로 출연해 조언을 하고 심사도 하며 시청자에게 남자 모델의 세계를 소개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김원중을 비롯해 최근 패션 채널에서는 박성진이나 조민호 등 현직 모델들이 출연하는 패션·스타일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모양새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들이 여자 모델들과 더불어 패션·스타일 프로그램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모델 출신 연기자가 많아지는 것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어느 세계든 그 세계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그 세계를 ‘지나간’ 이들만큼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앞으로 할’ 이들이 받는 조명과 관심이 중요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슈코 가이스, 털ㄴ업(turn up)!”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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