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여자 엉덩이 클로즈업’ 금기라도 깨는 양…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

등록 2015-04-17 19:22수정 2015-04-19 16:57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한 여성이 헬스클럽 러닝머신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이때 한 남성이 여성의 옆자리 러닝머신에서 운동을 시작한다. 남성은 여성의 몸매를 노골적으로 훑어보다가 이렇게 묻는다. “넌 허리가 몇이니?” 이 상황과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모두 골라보자. ① “왜 반말해요? 그리고 그걸 질문이라고 해요?”라고 되묻는다. ② 남성의 행동에 대한 불쾌함을 표시하고 그 자리에서 사과를 요구한다. ③ 헬스클럽 관계자에게 남성의 행동에 대해 얘기하고 출입금지를 요청한다. ④ 휴대전화를 꺼내 112를 누른다. ⑤ “24요”라고 대답한다.

박진영의 신곡 ‘어머님이 누구니’의 뮤직비디오
박진영의 신곡 ‘어머님이 누구니’의 뮤직비디오
문제 속 상황은 박진영의 신곡 ‘어머님이 누구니’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에 정해진 답은 없다. 다만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는 보기는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건전한 시민의식과 상식을 가졌다면 ⑤번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아니, 알아야 한다. 그러나 박진영은 위 상황에서 ⑤번을 제시하며 상황을 이어간다. “넌 허리가 몇이니?” “24요.” “힙은?” “34요.” 박진영은 한 인터뷰에서 이 곡을 “야하고 섹시하고 퇴폐적인 곡”이라고 소개했고,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서 이 뮤직비디오는 “뭘 아는 애들이 뭘 알고 만든 뮤직비디오”라고 설명했다.

‘섹시’(sexy)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1. 섹시한(성적 매력이 있는) 2. 도발적인, 요염한 3. (성적으로) 흥분한 등 이 세 가지 사전적 설명을 놓고 다시 한번 이 곡과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안타깝게도 그 어느 곳에서도 섹시함을 찾아볼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다. 반말로 여자의 신체 사이즈를 물어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이 곡은 섹시함에서 빛의 속도로 멀어진다. 여자의 정확한 신체 사이즈가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나이와 성별을 앞세워 여자의 신체 사이즈를 심지어 반말로 물어보는 자기 자신을 남들에게 과시하듯 보여주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안하무인의 남자, 시쳇말로 ‘꼰대’가 화자인 노래에서 섹시함을 발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도입부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노래를 듣다 보면 이 노래는 엉덩이의 섹시함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르게 가슴이 아니라 엉덩이의 매력을 알고 있었고, 이를 노래로 이렇게 야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찬가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가슴보다 엉덩이를 좋아한다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취향을 내세우며 (스쾃 열풍이 몇 년 전부터였더라) 여자의 엉덩이를 카메라 앞에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금기를 깨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 이렇게 열려 있는 남자야” “나 엄청 야하지?”를 반복하는 남자가 부르는 노래라니. 한없이 지루하다. (보통 이런 유형의 남자는 ‘지루하다’고 하면 발끈하며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섹시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 정말 정말 지루하다.)

대중문화에서 명성을 쌓은 이들이 요즘 자꾸 이렇게 헛발질을 해댄다. 자신의 콘서트에서 여성 관객들을 향해 ‘다리를 벌려 달라’는 농담(!)을 던진 유희열도 그렇고, 팟캐스트에서 여성 혐오 발언을 웃겨보겠다고(!) 던진 유세윤도 그렇다. 이들뿐만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가장 이상한 단어인)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라고 불리는 연예인들도 여기저기에서 소소한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은 ‘남들과는 다른 감각과 표현력을 지닌’, ‘똑똑하고, 재치있고, 솔직한’, ‘아슬아슬하게 선을 탈 줄 아는’ 매력이 있는 남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자신들도 스스로를 그렇게 알고 있다(는 점을 대중도 알고 있다). 실제 그랬던 것도 맞다. 슬픈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확신으로 인해 표현에 있어 자기검열이 느슨해진 탓인지, 아니면 ‘매력 있는 남자’를 연기하는 데 게을러지며 ‘숨겨왔던 나의~’ 원래 생각을 감추는 법을 깜빡 잊은 탓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감이 떨어진 탓인지 지켜야 하는 선을 휙 넘고, 심지어 자기가 선을 넘었는지 아닌지도 판단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다. 이렇게들 자꾸 떠나간다.

물론 이들은 아마 앞으로도 발표하는 곡이 차트 1위를 하고, 출연하는 티브이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광고도 찍고,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에서 ‘전설’로 존경도 받을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또 이들의 ‘선배’ 격인 이들도 그런 길을 걷곤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자기 발로 지루한 남자의 카테고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버린걸. 이만 보내주자. “떠난다면 보내드리리, 뜨겁게 뜨겁게 안녕!”

안인용 티브이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