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가 새로운 자극을 전달하기보다 추억을 소환하며 감상에 빠지게 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사진은 <무한도전>의 ‘젝스키스 재결합’ 방송 장면. 문화방송(MBC) 제공
[토요판] 안인용의 ‘좋아요’가 싫어요
1997년 4월 데뷔해 3년 1개월 동안 활동하다가 2000년 5월에 해체한 1세대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가 16년의 시간을 달려 2016년 4월인 지금 다시 티브이에 나타났다. 젝스키스 재결합에 관한 뉴스는 라이벌 그룹이었던 에이치오티(H.O.T) 재결합 뉴스와 더불어 지난 10년 동안 끊임없이 나왔다. 그룹 해체 이후 진행자나 가수, 배우 등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토크쇼 등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 재결합에 대한 질문은 꼭 나온다. 멤버들 중 누군가 재결합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 재결합은 현실 가능성과 함께 또다시 뉴스가 됐다. 뉴스로만 소비되던 1세대 아이돌 그룹의 재결합은 2012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1990년대 아이돌 문화를 다루면서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특히 에이치오티와 젝스키스의 라이벌 구도는 그 이후 여기저기에서 1990년대의 대표적인 추억으로 불려다녔고, 그러면서 재결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들을 비롯해 1세대 아이돌 그룹 멤버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1990년대 토크로 주가를 올렸고, 그 시절 대표곡들을 부르며 추억 여행의 가이드 구실을 해냈다. 실제 재결합을 해내는 그룹들도 등장했다. 2014년에는 지오디가, 2015년에는 클릭비 등이 다시 뭉쳤다. 그리고 2016년인 지금, 문화방송 <무한도전>을 통해 젝스키스 멤버가 ‘완전체’로 무대에 섰다.
3주에 걸쳐 방영되고 있는 <무한도전>을 보면 제작진이 젝스키스 재결합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지난 2월에 재결합을 추진하기로 결정했고, 이어 젝스키스 멤버들의 게릴라 콘서트를 추진했으며, 재결합에 대한 의지가 낮았던 멤버 고지용도 설득해냈다. 이렇게 공을 들인 것은 젝스키스의 재결합 자체가 하나의 특집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확신에는 지난해 초에 1990년대 가수들을 다시 소환하며 대단한 인기를 모았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이 있다. 당시 지누션과 터보, 에스이에스(SES) 등을 다시 무대로 불러내면서 대단한 호응을 얻었기에 젝스키스의 재결합은 그에 못지않은 화제가 될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젝스키스 재결합’이라는 아이템은 분명히 세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16년 만에 다시 모였다는데 반가움보다는 어색함이 앞서고, 이미 수없이 본 화면을 또 보는 것 같은 기시감마저 드는 것은 왜일까.
무도가 소환한 젝스키스
막상 뚜껑 열어보니
반가움보다 어색함
수없이 돌려봐도 기시감 TV가 호명한 인위적 추억
보고 싶어 찾는 것인지
보여줘서 보는 것인지
이제 2016년 이야기 좀 하자 티브이가 1990년대 추억여행에 열광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젝스키스가 활동한 기간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는 얘기다. 지난 4년 동안 수없이 많은 프로그램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활동한 가수들을 부르고 또 불렀다. 특히 지난해 초 ‘토토가’ 시즌1이 이슈가 되면서 그 시절의 인기 가수, 아이돌 그룹을 소환하는 방식은 공식이 됐다. 어떤 그룹이든 재결합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무대에 오르기까지 모든 이야기는 ‘추억 소환의 공식’에 따라 진행된다. 진행자들은 1990년대 복장을 하고 멤버들 앞에 나타난다. 멤버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각자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연락이 닿지 않는 멤버를 찾고, 노래방 반주에 맞춰 옛날 노래를 부르며 추억에 빠졌다가, 오랜만에 다시 연습에 매진하고, 예전에 입었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객석에는 이제 30대에 접어든 팬들이 아직도 “오빠”를 외치고, 멤버들은 눈물을 흘린다. <무한도전>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이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지만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같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렇게 소환해낸 엇비슷한 추억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그 추억이 진짜 나의 추억인지, 티브이가 만들어준 추억인지 헷갈릴 정도다. 최근에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복면가왕>, <슈가맨>뿐만 아니라 <듀엣가요제>, <판타스틱 듀오>,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 등이 모두 가수들이 나와 노래로 감동을 전하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추억 여행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매주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려면 수없이 많은 노래들을, 그것도 모두가 기억하는 노래들을 불러와야 한다. 예전 노래와 그 시절의 가수들, 그 시절의 이야기는 일종의 패키지다. 조금이라도 더 화제가 되려면 한동안 볼 수 없었던 가수를 불러내거나 아이돌 그룹을 완전체로 불러내야 한다. 이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늘 비슷한 방식으로 불려나온다. 이렇게 불려나올 때는 ‘추억’이라는 필터가 과하게 작동된다. 한때는 꽃미남 꽃미녀 아이돌 그룹 멤버였지만 해체나 활동 중단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거나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에 휘말려서 이제는 사연 많은 30대가 됐는데도 그 시절과 함께 부를 때는 마치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의 아이돌 그룹 멤버인 것처럼 온갖 미사여구로 감동적인 자막을 만들어내느라 바쁘다. 가끔은 “저 정도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기억을 의심하기도 한다. 재결합에 성공한 이들의 다음 행보는 대체로 행사나 콘서트 등을 통해 팬들 앞에 서거나 새로운 음반을 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선보이는 음악 역시 어색함과 기시감이 앞선다. 10여년 전에 사랑받았던 그 음악과 색깔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들은 히트곡을 조금 변형해 리메이크한 것 같은 음악들을 주로 들고나온다. 2014년 재결합한 지오디의 ‘하늘색 약속’, <무한도전>을 통해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새 앨범을 낸 지누션의 ‘한번 더 말해줘’, 터보의 ‘다시’ 등이 그렇다. 그게 이들을 사랑해준 팬들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재결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진다. 중간에 멈춰진 시간을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멈춰지기 전으로 돌아가 계속 머물러 있는 방식이라면 재결합은 한 번의 이벤트에 불과할 뿐이다. 이벤트일지라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예전의 가수들을 정말 보고 싶어서 찾는 것인지, 아니면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을 추억으로 소환하는 콘텐츠의 주요 타깃층은 이들을 10대와 20대에 좋아했던 30대 초부터 40대 중반의 사람들이다. 30대와 40대는, 10대와 20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새로운 음악과 문화를 소비하는 층이다. 티브이에서는 그때의 소녀팬이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됐다는 것을 대단히 놀라운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해도 아직 활발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추억에만 빠져 있기에 30대와 40대는 너무 젊다. 문제는 티브이가 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전달하기보다 추억을 소환하며 감상에 빠지게 하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보다 한때 유행했던 상품을 가져와 새롭게 포장하고 “기억나니? 그때?” 같은 홍보 문구로 쉽게 장사를 하는 방식이 과연 콘텐츠 제작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까? 팔 수 있는 추억은 한정돼 있다. 오늘은 장사가 될지 몰라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면 내일은 없다. 이제 30대, 40대인 시청자들이 10년, 20년 뒤에도 여전히 이렇게 ‘젊었을 때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추억만 곱씹고 있어야 할까.
대중문화의 핵심은 동시대성이다. 그 시대를 반영하거나 시대의 요구를 이끌어내는 것이 대중문화이고, 그래서 대중문화는 늘 흥미롭다. 1990년대를 추억하고 회상한 지도 벌써 5년째다. 이제 응답할 만큼 응답했다. 더이상의 시간 여행은 위험하다. 이런 식은 퇴행일 뿐이다. 젝스키스의 재결합이 현실화되면서 에이치오티의 재결합에도 불이 붙었다. 에이치오티 말고도 아이돌 그룹 재결합 후보군에는 공식적으로 해체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한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핑클, 샤크라 등 여러 그룹이 있다. 이들이 모두 재결합하는 그날까지 같은 레퍼토리의 노래를 듣고 또 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2016년에는 2016년의 이야기를 하자.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막상 뚜껑 열어보니
반가움보다 어색함
수없이 돌려봐도 기시감 TV가 호명한 인위적 추억
보고 싶어 찾는 것인지
보여줘서 보는 것인지
이제 2016년 이야기 좀 하자 티브이가 1990년대 추억여행에 열광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젝스키스가 활동한 기간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는 얘기다. 지난 4년 동안 수없이 많은 프로그램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활동한 가수들을 부르고 또 불렀다. 특히 지난해 초 ‘토토가’ 시즌1이 이슈가 되면서 그 시절의 인기 가수, 아이돌 그룹을 소환하는 방식은 공식이 됐다. 어떤 그룹이든 재결합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무대에 오르기까지 모든 이야기는 ‘추억 소환의 공식’에 따라 진행된다. 진행자들은 1990년대 복장을 하고 멤버들 앞에 나타난다. 멤버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각자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연락이 닿지 않는 멤버를 찾고, 노래방 반주에 맞춰 옛날 노래를 부르며 추억에 빠졌다가, 오랜만에 다시 연습에 매진하고, 예전에 입었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객석에는 이제 30대에 접어든 팬들이 아직도 “오빠”를 외치고, 멤버들은 눈물을 흘린다. <무한도전>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이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지만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같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이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그렇게 소환해낸 엇비슷한 추억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그 추억이 진짜 나의 추억인지, 티브이가 만들어준 추억인지 헷갈릴 정도다. 최근에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복면가왕>, <슈가맨>뿐만 아니라 <듀엣가요제>, <판타스틱 듀오>,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 등이 모두 가수들이 나와 노래로 감동을 전하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추억 여행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매주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려면 수없이 많은 노래들을, 그것도 모두가 기억하는 노래들을 불러와야 한다. 예전 노래와 그 시절의 가수들, 그 시절의 이야기는 일종의 패키지다. 조금이라도 더 화제가 되려면 한동안 볼 수 없었던 가수를 불러내거나 아이돌 그룹을 완전체로 불러내야 한다. 이들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늘 비슷한 방식으로 불려나온다. 이렇게 불려나올 때는 ‘추억’이라는 필터가 과하게 작동된다. 한때는 꽃미남 꽃미녀 아이돌 그룹 멤버였지만 해체나 활동 중단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거나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에 휘말려서 이제는 사연 많은 30대가 됐는데도 그 시절과 함께 부를 때는 마치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의 아이돌 그룹 멤버인 것처럼 온갖 미사여구로 감동적인 자막을 만들어내느라 바쁘다. 가끔은 “저 정도였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기억을 의심하기도 한다. 재결합에 성공한 이들의 다음 행보는 대체로 행사나 콘서트 등을 통해 팬들 앞에 서거나 새로운 음반을 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선보이는 음악 역시 어색함과 기시감이 앞선다. 10여년 전에 사랑받았던 그 음악과 색깔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들은 히트곡을 조금 변형해 리메이크한 것 같은 음악들을 주로 들고나온다. 2014년 재결합한 지오디의 ‘하늘색 약속’, <무한도전>을 통해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새 앨범을 낸 지누션의 ‘한번 더 말해줘’, 터보의 ‘다시’ 등이 그렇다. 그게 이들을 사랑해준 팬들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재결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진다. 중간에 멈춰진 시간을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멈춰지기 전으로 돌아가 계속 머물러 있는 방식이라면 재결합은 한 번의 이벤트에 불과할 뿐이다. 이벤트일지라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예전의 가수들을 정말 보고 싶어서 찾는 것인지, 아니면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세대 아이돌 그룹을 추억으로 소환하는 콘텐츠의 주요 타깃층은 이들을 10대와 20대에 좋아했던 30대 초부터 40대 중반의 사람들이다. 30대와 40대는, 10대와 20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새로운 음악과 문화를 소비하는 층이다. 티브이에서는 그때의 소녀팬이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됐다는 것을 대단히 놀라운 이야기인 것처럼 말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고 해도 아직 활발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추억에만 빠져 있기에 30대와 40대는 너무 젊다. 문제는 티브이가 이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전달하기보다 추억을 소환하며 감상에 빠지게 하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보다 한때 유행했던 상품을 가져와 새롭게 포장하고 “기억나니? 그때?” 같은 홍보 문구로 쉽게 장사를 하는 방식이 과연 콘텐츠 제작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까? 팔 수 있는 추억은 한정돼 있다. 오늘은 장사가 될지 몰라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면 내일은 없다. 이제 30대, 40대인 시청자들이 10년, 20년 뒤에도 여전히 이렇게 ‘젊었을 때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추억만 곱씹고 있어야 할까.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