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방송중
그야말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 급하게 살아서 그런 걸까? 요즘 낱말 앞에 ‘급’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다. 급전화, 급만남, 급수리, 심지어 급결혼까지…. 세상은 그야말로 ‘급’ 발전하고, 이를 ‘급’ 추격하고, ‘급’ 소화해 내느라 급체에 걸리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세상이 변해온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에 있다. ‘이제는 나도 한번 인터넷이란 걸 해봐야겠다’는 부모님의 선언에 진땀을 빼본 사람이라면 그 변화의 폭을 쉽게 체감할 것이다. ‘우선 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시고…’란 말을 던지려다 벌써 그 수많은 영어단어들과 신조어들 앞에 막막해지곤 한다.
이제는 무거운 걸음 이끌고 만원버스를 타지 않아도, 클릭 한 번이면 우체국, 은행, 백화점, 또 방송국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지만, 또한 놀랍도록 설명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모님께 컴퓨터 가르치기란 애인에게 운전 가르치는 일 못지않은 인내심과 이해심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인내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이미 전방위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라도 “더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시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셔야 된다. 라디오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제이들은 편지 주소보다는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준다. 이제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분은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을 찾아”주셔야 하는 것이다.
최근 라디오에선 더 획기적인 사건도 있었다. 이른바 인터넷 라디오의 등장이다. 이제 라디오 자체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됐다. 내려받기 클릭 한번이면 라디오라는 기계 없이도 라디오를 수신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진보가 약속하는 것은 엄청난 편리함이다. 클릭 한번으로 라디오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메시지를 보내고, 그 메시지를 바로 제작진이 확인할 수 있으니, 소통의 거리도 크게 축소된 셈이다. 아직 라디오 매체의 재정립을 운운하긴 이르지만, 3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 인터넷 라디오의 내려받기 횟수가 벌써 40만건에 이른 걸 보면 과연 편리함의 힘이 대단하긴 한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의 진보가 내용의 질까지 담보할 수 없다는 것도 명확하다. 다만 편하게, 그리고 빨리 만날 수 있게 됐을 뿐, 라디오를 매개로 만나서 나누고 채우던 생각과 감정들은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언제나 무언가를 퇴장시키는 동시에 등장시킨다. 퇴장과 등장의 기로에서 이 변화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지 가늠하기 힘들다. 인터넷 라디오를 실행시켜 웃고, 메시지를 보내는 이들에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기억과 추억을 채워가는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이 변화가 즐거우십니까?”
양시영/문화방송 라디오 피디
양시영/문화방송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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