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 ‘앙큼한 돌싱녀’의 연하남 국승현(서강준).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우리는 분명히 위기다. 그런데 진짜 위기는 그것이 위기인 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위기인 걸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유재석이 5월3일치 <문화방송> ‘무한도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한도전’만 위기인가. 침체기인 예능이, 방송 전반이 위기다. 아니, ‘문화융성’으로 세계 일류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 ‘창조경제’를 견인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진 대중문화가 위기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대중문화는 케이팝, 케이드라마 등 ‘케이(K) 시리즈’로 글로벌하게 놀았다. (그래도 “두 유 노우 싸이?”는 하지 말자, 약속.) 그러나 한류의 ‘영업비밀’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고, 시장이 커진 만큼 고객층이 세분화되며 눈높이도 높아졌다. 이제 티브이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 전략이 업그레이드돼야 할 때다. 흥행보장 콘텐츠는 그것대로 가되 “에이, 설마 이런 게?” 싶은 걸 내세워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이른바 ‘이원화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미래의 티브이를 근심하며 색색깔 목화씨를 예쁘게 싸서 비행기에 실어 보내는 심정으로, 이 칼럼을 시작한다.
삶이 고단한 언니누나들을 위한 만병통치약이 있다. 약 이름은 ‘연하남’이다. ‘실장님’이 만병통치약이던 때가 있었다. 2000년대 중후반,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30대 언니누나들이 20대 중반이던 시절에 ‘어른’이었던 실장님은 온갖 사건 사고부터 취직에 승진까지 해결해줬고, 사랑도 줬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언니누나들은 어느새 실장님이 됐다. 삶에 찌든 어른이 되어버렸거나 어른 대접을 받기 위한 주요 스펙인 ‘결혼’을 쌓지 못한 이들에게, 그 시절 실장님처럼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연하남이다.
최근 방영됐거나 방영되는 드라마 속 연하남을 꼽아보자. <문화방송> ‘앙큼한 돌싱녀’의 7살 연하 국승현(서강준), <티브이엔> ‘마녀의 연애’의 14살 연하 윤동하(박서준), <티브이엔> ‘막돼먹은 영애씨 13’의 9살 연하 한기웅(한기웅), <한국방송> ‘참 좋은 시절’의 보건소 연하남 민우진(최웅)까지. (<제이티비시> ‘밀회’의 20살 연하 이선재(유아인)는 예외로 두자. 이쪽은 장르가 ‘멜로+스릴러+법정+성장’이라서 얘기 시작하면 날 샌다.)
이들 연하남 캐릭터에는 일관성이 있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를 외치는 순수함과 어린 나이에도 나이 따위로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 정‘으리’로움에 가까운 개념을 가졌다. 이들은 언니누나들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주며 심장을 다시 뛰게 하도록 ‘기능’한다. 문제는 말 그대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연하남 캐릭터가 언니누나들을 만나기 전까지의 인생은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이들에겐 언니누나들의 삶에 ‘접붙이기’ 되려고 준비한 시간과 일방적 사랑을 무한리필해주는 시간만 있을 뿐이다.
연하남이 비현실적이라는 거, 언니누나들도 안다. 그럼에도 ‘생활’이라는 힘든 짐을 짊어지고 가는 유부 언니누나들과 ‘기승전결혼’의 도돌이표에서 방황하는 싱글 언니누나들을, 연하남은 웃게 해준다. 생각해보면 삶이 고된 언니누나들이 어디 한국에만 있겠나. 전세계 72억 인구 중에 최소한 1억명은 있을 이들을 집중 공략할 수 있는 연하남 캐릭터 개발, 그래 이거다.
어리고 잘생기고 착한 게 전부인 연하남은 이제 흔하디흔하다. 탁월하게 섹시하다거나 애교에 천재적이라거나 뭔가 차별화되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특정 신체 부위에 열광하는 연하남, 어둠을 밝히는(!) 연하남 등 다양한 취향을 고려한 세심한 설정도 필요하겠다. 또 언니누나들에겐 공감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던가. 연애 시장의 통상적인 거래와는 무관한 노골적인 일편단심 러브스토리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되 최소한의 경쟁은 거쳐야 언니누나들의 심박수도 더 뛴다. 덧붙여, 이들 캐릭터가 업그레이드되면 이들 드라마 속 연하남의 인생도 조금 더 살 만해지지 않을까.
전략은 세워졌으니 어서 달려가 새로운 연하남 캐릭터 개발을 ‘빡’, 생방 드라마 촬영을 ‘빡’, 피디(PD)/작가/출연진 교체에도 당황하지 않고 해외 수출을 ‘빡’, 그리고 전세계 언니누나들 신용카드를 긁으면, 끝.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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