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이번주에 첫 방송을 시작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의 한 장면. 공효진과 성동일, 이광수가 ‘홈메이트’(모기약 아님)로 함께 살고 있는 집에 여차저차한 이유로 조인성이 들어온다. 검은색 가구와 기하학적 무늬가 눈에 띄는 뉴욕 맨해(↗)튼 느낌의 조인성 방에 공효진이 들어와 이렇게 묻는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흰색, 검정. 옷 칼라도 그러네. 혹시 강박?” 정신과 의사 선생 아니랄까 봐 방을 보자마자 진단을 내리는 공효진. 쿨내가 진동하는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인 조인성은 “아마 강박”이라고, 끈쩍함을 빨아들이는 제습기 광고 모델답게 짧게 대답한다. 조인성은 자기 방에서 나와 공효진의 방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다. 공효진의 방은 누구나 예상한 것처럼 옷가지와 쓰레기가 널려 있어 지저분하지만, 그 지저분함마저 섬세하고 세련되게 연출된 그런 방이다. 조인성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방 좀 치우지?” 정반대의 인테리어 취향만큼이나 서로 다른 남녀가 한집에 살면서 곧 사랑에 빠지(며 결국 ‘스칸디나비아식’ 인테리어로 절충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는 장면이다.
2003년에 방영된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이후 드라마든 예능이든 남녀를 한방이나 옆집에 집어넣고 본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부딪히면서 정인지 사랑인지 그런 비슷한 감정이 싹트는 이야기를 지난 10년 동안 100번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드라마와 예능이 ‘옥탑방’이 아닌 ‘주택’(이라고 쓰고 저택이라고 읽는다)으로, 남녀 1명씩이 아니라 4명 이상의 집단 거주 방식으로 관심을 돌렸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룸메이트>와 최근 종영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셰어하우스>도 10여명의 연예인이 한집에 살게 하고 있다. 모두 ‘셰어하우스’라는 그럴듯한 이름표를 붙였지만 여러 명이 거실과 부엌, 화장실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주인 없는 하숙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셰어하우스와 하숙집을 구분하는 건 생활방식이 아니라 ‘집’의 평수와 인테리어다. 드라마와 예능의 배경이 되는 집을 둘러보자. 홍대 주변 마당이 딸린 2층 주택과 성북동의 고급 주택, 계단식 정원까지 있는 양평의 거대한 주택이다. 내부 인테리어는 잡지 화보 그대로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를 동경하며 한번쯤 꿈꿔본 공간을 그대로 구현해낸다. 게다가 드라마와 예능 안에는 보증금이나 월세, 공과금에 대한 고민이 삭제되어 있다. 좋은 집에서 정상이 아니라서 더 멋진 친구들과 함께 사는, 재벌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판타지를 구현해낸다.
공간은 판타지인데,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생각보다 실망스럽다. 싱글 성인 남녀 연예인 10명을 한집에 살게 한 예능 <룸메이트>와 <셰어하우스>의 연출진은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얼마나 기대가 컸을까. <짝>처럼 결혼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애달픈 그림이 아니라 선남선녀의 시선이 마구 오가는 짜릿한 그림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출연진은 금세 가족, 그것도 대가족이 되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집단을 꼽으라면 단연 가족 아닌가. 이제 막 시작하는 <괜찮아 사랑이야>도 애정이 아니라 우정이나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힐링이 먼저 보일까 걱정이다. 노희경 작가가 다 알아서 해주겠지만.
영화 <하녀>에서 전도연과 이정재가 사랑을 나누던 바로 그 욕조를 애지중지하며 화장실에 디지털 도어록을 달고 사는 조인성의 방과 빈티지함과 사랑스러움이 공존하는 공효진의 방, 지나치게 많은 소품으로 투레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정신상태를 보여주려고 했거나 아니면 소품 협찬을 담당하고 있는 게 확실한 이광수의 방, 기러기아빠의 쓸쓸함을 베이지색으로 표현한 듯한 성동일의 방 등 <괜찮아 사랑이야>에 등장하는 수많은 집과 방들을 보고 나니, 3회 이야기보다 저기 저 소품, 저기 저 가구를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중국에 있는 니하오양과 대만의 워아이니군, 타이의 사와디캅씨도 조인성을 보려고 드라마를 내려받겠지. 한참 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의 쇼핑몰을 검색하겠지. 인테리어 소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를 하려는데 쇼핑몰에서 공인인증서를 요구하겠지. 그러다가 결국 결제를 포기할….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된다. ‘천송이 코트’ 규제 개혁을 몇달째 밀고 있는 대통령님이 다 해결해주실 거다.(그런데, “혹시 창조경제 강박?”)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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