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 이국주.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그의 사진을 리트위트(RT)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들어온다는 세계 최고 부호 만수르님도 살 수 없고, ‘아름다움’이란 수술과 합숙 그리고 스타일링으로 완성된다는 21세기 ‘미의 법칙’을 창조해낸 <스토리온>의 메이크오버쇼 <렛미인>도 만들어줄 수 없는 게 있다.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 매력이다. ‘악동뮤지션’은 오디션 프로그램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 ‘매력 있어’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크지 않은 눈 오똑하지 않은 코 하지만 이게 뭐야 난 네게 빠져버렸어 도대체 뭐야 날 이렇게 만든 정체가 뭐야 마법사? 마술사? 아님 어디서 매력학과라도 전공하셨나”. 이 노래는 요즘 ‘대세녀’ 이국주의 주제가로 딱이다. 물론 이국주는 이 노래마저 ‘식탐송’으로 만들어버리겠지만. (“매력 있어 내가 반하겠어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은 양념으로 두~마~리~”)
좀처럼 티브이를 보면서 웃을 일이 없는 요즘, <티브이엔>의 <코미디 빅리그> 코너인 ‘10년째 연애중’을 보다가 발을 동동 구르며 웃었다. 이 코너에서 이국주는 청순가련했던 여자친구의 10년 뒤를 연기한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았던 ‘그녀’(김진아)는 10년이 지나 라면이 아무리 뜨거워도 절대 불면서 먹지 않는 ‘그녀’(이국주)가 되었다. 이 코너의 하이라이트는 10년 뒤의 그녀가 부르는 식탐송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먹~지~요~” “비겁하다 욕하지마 어두운 뒷골목에 맛집이 많~아~요~”. 개그우먼이 ‘식탐’을 주제로 노래 가사를 비틀면서 웃기는 건 새롭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국주가 하면 그렇게 재미있다.
이국주의 식탐송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듣는 것과 이 코너 안에서 듣는 것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예능에서 들어도 웃기지만, 이 코너에서 들어야 그 맛이 살아난달까. 이 코너에서 이국주는 장기연애 커플답게 남자친구에게 무제한 식탐도 숨기지 않는다. 설명만 보면 뻔한 ‘뚱녀’ 캐릭터인데 이국주는 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연기한다. 목소리는 우렁차지만 손짓과 몸짓은 과장되어 있지 않다. 표정과 눈빛에서는 ‘뚱녀’가 아닌 ‘여자친구’가 보인다. 세심한 연기 덕분에 그녀의 식탐은 웃기기보다 귀엽고, 진상에 가까운 그녀의 행동은 뻔뻔하기보다 현실적이다. 코너 속 남자친구가 10년 동안 몸무게가 적어도 3배는 늘어버린 이 여자를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국주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는 프로그램은 토크쇼다. 진행자와 패널이 10명에 이르는 <티브이엔>의 연애 토크쇼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서 이국주는 조세호와 함께 ‘웃음’을 담당하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감’이다. 이 프로그램을 포함해 연애 토크쇼는 많고, 연애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조언을 던지는 이들도 많지만 이국주만큼 사연이나 상황 속의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를 해주는 이는 많지 않다. 지난 7월 <제이티비시>의 <비정상회담>에 이국주는 미스코리아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했다. 뚱뚱한 개그우먼과 미스코리아, 진부하기까지 한 이 상황을 이국주는 슬기롭게 헤쳐나갔다. 개그우먼과 미스코리아라는 설정을 자기비하가 아닌 방식으로 인정하고, 그다음부터 유머를 겸비한 솔직함으로 출연진과 ‘대화’를 이어갔다. 이국주가 출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 왠지 나와 얘기가 통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에 매우 정직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가 되면 ‘뚱뚱해서 웃기는 개그우먼’이라는 편견 아닌 편견은 어느새 사라지고 ‘매력적인 사람, 이국주’만 남는다.
이국주의 매력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알아보았고 최근 ‘대세’로 떠올라 여러 티브이 프로그램과 매체에서 꽤 자주 만날 수 있다. ‘매력적인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지만 ‘대세’라는 말의 유통기한은 우유의 유통기한인 일주일보다도 짧다. 설령 이국주가 ‘대세’로 소비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은 ‘밥 먹고 하자~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명언처럼 지금 그녀에게 들어오는 수많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개그우먼이 될 수 있다. 그 시범무대가 바로 오늘 밤 10시 <티브이엔>의 <에스엔엘 코리아>다. 이국주가 호스트로 출연하는 이번 방송, 꼭 보시라.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토크쇼 진행자의 ‘시작’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