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엔>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티브이 속 출연자들은 자기들끼리 킥킥대며 재미있어 보이는데 막상 그 광경을 보는 시청자는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어 어색해질 때, 채널은 돌아간다. 출연자들도 뭔가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미묘한 분위기가 편집으로도 다 지워지지 않아 그 모습을 보는 시청자의 마음이 초조해질 때, 프로그램은 사라진다. 그런데 희한한 프로그램이 하나 생겼다. 출연자들이 “이 프로그램은 망했다”고 (농담이나 겸손이 아니라) 푸념하고 심지어 편집마저 그 지루함과 어색함을 그대로 노출하는데, 채널이 돌아가기는커녕 시청자는 벌써 다음주를 기다린다. <티브이엔>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 얘기다.
나영석 피디와 배우 이서진, <1박2일>에서 처음 만나 <꽃보다 할배>에서 꽃을 피운 둘이 다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삼시세끼>는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첫 방송이 나간 10월17일, 기대를 잔뜩 안고 티브이 앞에 앉았다. 시작은 평범했다. 섭외 과정을 몰래 찍은 장면에서 투닥대는 나 피디와 이서진의 모습은 <꽃보다 할배>에서와 비슷했다. 이서진과 옥택연이 농촌 마을에 도착해 서투르게 밥을 짓는 모습도 새롭진 않았다. <아빠! 어디 가?>에서 수도 없이 봤다.
기대에 비해 별거 없네 싶어 채널을 돌릴까 고민하는데 희한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힘들게 저녁밥을 지어 먹고 집으로 들어온 이서진과 옥택연이 거실에서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모로 누워서 쉬는데, 이서진이 갑자기 실성한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이걸 보고 있는 시청자에게 되묻듯이 외쳤다. “야 이거 왜 하는 거니, 우리? 왜 이거 하는 거야?” 왜 시골에서 갑자기 밥을 짓고 있는지 모르는 출연진의 난감함이, 거실에서 티브이 속 이서진과 비슷한 자세로 이 프로그램을 보던 나를 포함한 시청자들에게 지나치게 ‘리얼’하게 전해졌다. 그 순간 이서진의 헛웃음과 비슷한 웃음이 터졌다.
이 장면 이후 이서진과 옥택연은 천장을 보고 누워 있다가 “이 프로그램은 망했어”라고 중얼대다가 주어진 메뉴에 맞춰 무표정하게 밥을 하다가 맛없는 표정으로 밥을 먹다가 낮잠을 자다가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찾아온 손님과 “이게 뭐야, 보는 사람도 지루하겠다” “이 프로그램 망했어요, 이거!” 등의 대화를 나누다가 무덤덤하게 밥을 하다가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게 이 프로그램 첫 회의 거의 전부였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 특히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의미를 찾느라 분주하다. 웃음에 감동, 교훈, 깨달음까지 주려다 보니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도 마냥 편하게 볼 수만은 없다. “과연 저 출연자가 잘할까?” “미션을 통과할까?” “웃길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지?” “저 출연자가 정말 변한 건가?” 프로그램의 기승전결을 따라가야 하고, 캐릭터를 이해해야 하며, 감동도 받아야 하고, 교훈도 기억해야 한다. 시청자도 바쁘다.
<삼시세끼> 역시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그런데 막상 ‘농촌체험을 통해 소박한 삶의 소중함 깨닫기’ 같은 목적에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세끼 밥을 해 먹으라는 미션이 있을 뿐 제작진이 요리법이나 음식의 완성도를 확인하지 않는다. 싱싱한 식재료를 썼다니 대단히 특별한 맛이 난다는, 예능 프로그램 특유의 리액션도 없다. 미션도 없고, 갈등도 없다. 어린이도 없고, 걸그룹 멤버도 없다.(강아지는 한마리 있다.) 멋진 풍경도 없고, 의미심장한 자막도 없다. 그런데 재미있다. 아니, 그래서 재미있다.
<삼시세끼>를 보다가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긴장감 없이 티브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서진과 옥택연이 거실에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짧은 순간이 평화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무런 자극이 없다는 것이 가장 새로웠다. 지금의 티브이에 가장 필요한 전략은 ‘마이너스’인지도 모르겠다. 메시지를 빼고, 의도를 빼고, 드라마를 빼고 남는 공간은 그저 비워둘 것, 그리고 뭔가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릴 것.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가 생각났다. “니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남은 방송도 첫 방송처럼 별일 없이 잉여롭게 쭉 그렇게 무심해주길.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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