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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케이팝스타 시즌4’ 심사평이 너무 앞서나간다

등록 2014-12-19 21:02수정 2014-12-20 10:58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에스비에스>의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 시즌 4>가 ‘핫’하다. 보통 오디션 프로그램이 화제라고 하면 오디션에 출연하는 이들의 노래 실력이나 자작곡, 살아온 이야기가 눈길을 끌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는 다르다. 심사위원 세 명의 심사평이, 노래도 사람도 아닌 말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방송된 최소한 15개 이상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평이 화제가 되는 경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영혼이 없다”는 식의 독설 심사평과 “공기 반 소리 반” 같은 깨알웃음 심사평, 오열에 가까운 눈물 심사평 등이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제인 이유가 다르다. 극찬(극단적인 칭찬)이자 격찬(격렬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다. 매회 “제 필명인 ‘디 아시안 솔’(The Asian Soul)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음악 관둘게요. 음악 난 못 하겠다, 더 이상” “전주 피아노 라인을 칠 때 의식을 잃었어요” “저도 지금까지 200~300곡을 쓴 것 같은데 이보다 좋은 곡이 없는 것 같아요”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에요” 등 ‘들어본 적 없는 심사평’이 쏟아진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조언자에 가까운 전문가의 역할이다. 음악에 있어 전문가인 그들의 눈과 귀를 통해 시청자는 그 노래를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또 좋든 별로든 그 이유가 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다음으로 시청자 대신 공감을 표현해주는 대변인의 역할을 한다. 일반 대중인 시청자들이 그 노래를 듣는 순간 하고 싶은 말과 표정, 웃음 때로는 눈물을 대신 해준다. 티브이를 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심사위원이 해주면 물개박수가 절로 나온다.

<케이팝스타>의 심사위원인 양현석과 박진영, 유희열의 조합은 시즌 3을 통해 두 가지 역할을 잘해냈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서로 다른 각도로 출연자를 바라보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돋보이게 했다. 셋의 재치와 입담 덕분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원초적인 재미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시즌 4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서는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차고 넘치는 심사평 때문이다.

심사평이 넘치는 이유가 뭘까? 제작진의 설명처럼 녹화 현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수사에 불과하지만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놀라고 감동했을 수도 있다. 그 말들이 거짓이라거나 일부러 부풀린 말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심사평이, 그 말들이 듣는 사람이 따라오기도 전에 저 앞에 먼저 달려가버린다는 게 문제다. 수없이 많은 참가자들에게 비슷한 칭찬과 비슷한 지적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뭔가 새로운 얘기를, 더 센 얘기를 해야만 생각과 감정이 전달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수많은 모니터링을 통해 그 순간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어떤 표정이나 제스처를 취해야 티브이에 ‘잘 나오는지’ 알고 있을 거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말과 표정, 제스처가 스스로 진화한 건 아닐까.

말이 앞서가다 보니 시청자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노래가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극찬과 격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 시청자는 “내가 음악을 잘 몰라서 그런 건가?”에서 “아무리 음악을 저들만큼은 몰라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로, 결국 “전문가 맞아? 요즘 음악을 잘 안 듣나?” 혹은 “시청률 올리려고 오버하는 건가?”에 이르게 된다. 심사평에 공감하지 못하니 심사위원의 전문성을, 또 진심을 의심하게 된다는 얘기다. 프로그램을 다 보고 나면 그 음악이 좋아서 음원 차트를 뒤적이는 게 아니라 그렇게 좋은 게 맞는지 확인차 음원 차트를 클릭한다. 음악이 끝나면 머릿속에 남는 건 가사나 멜로디, 보컬 능력이 아니라 심사평이다. 심사평을 기준으로 ‘그만큼 좋다’ ‘그 정도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다음 곡으로 넘긴다.

케이팝스타는 이제 4회 방송을 마쳤다. 말이 더 앞서간다면 시청자와의 거리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럴 때 전략이 필요하다. 심사평 자체를 ‘케이(K)’ 콘텐츠의 하나로 만드는 전략이다. 심사평에 멜로디를 붙이거나 심사평 자체를 리믹스 해서 음원으로 출시하는 거다. 극찬과 격찬의 심사평은 특히 천 번 흔들리느라 정신 없는 ‘케이-청춘’들에게 환한 웃음을 주는 귀한 음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된다면 차트 1위는 물론, 박진영이겠지? 괜히 ‘디 아시안 솔’이 아니다.

안인용 티브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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