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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토토가’ 열풍, 그것은 착각일까

등록 2015-01-02 18:52수정 2015-01-03 16:41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박명수가 1990년대의 아이콘 서태지를 방문해 출연을 요청한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박명수가 1990년대의 아이콘 서태지를 방문해 출연을 요청한다.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1999년 12월31일 11시59분, 종말론과 밀레니엄 버그 등으로 인한 세기말 혼란 속에 시계는 가까스로 2000년 1월1일 0시1분을 가리킬 수 있었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컴퓨터는 숫자 ‘2000’을 받아들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21세기를 시작한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2>의 그 ‘미래’인 2015년의 첫날, 음악 차트에 에스이에스(S.E.S)와 터보의 노래가, 그것도 ‘아임 유어 걸’과 ‘러브 이즈…(3+3=0)’가 올라와 있을 거라고는.

<문화방송>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이하 ‘토토가’)이 1990년대 톱 가수들을 소환하면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영화 <건축학 개론> 이후 다시 한번 시간여행 열풍이 시작됐다. 전국의 20~40대는 재결합한 터보와 에스이에스의 무대를 보면서 대동단결해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폭풍 눈물을 흘리(며 초·중·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여 있는 ‘밴드’에 “그때의 우리, ㄱ(기억)나니?” 유의 글을 올리다가 급하게 송년 모임을 빙자한 ‘급벙개’로 만나 노래방으로 직행하)고 있다.

‘토토가’ 열풍은 이전의 1990년대 열풍과 조금 다르다. 그 시절을 ‘요즘’ 배우들이 재현하거나 그 당시 노래를 ‘요즘’ 가수들이 다시 부르는 식이 아니라 실제 그 시절 가수들이 그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에둘러 가지 않고 직진한다. 열 팀이 나와 열다섯 곡 이상을 보여준다는 점도 이전과는 다르다. 활동 시기와 노래 히트 시기가 5~7년까지 차이가 있는 이들이 한 무대에 모이면서 추억할 수 있는 시간대가 넓어졌다. 또 드라마가 아니라 단순명료하게 무대로만 승부하면서 계층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추억할 수 있는 사람들 역시 무한 확장됐다. 1985년 이전에 태어나 이 땅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이 추억의 그물망에 대부분 걸린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토토가’는 이전의 1990년대 열풍보다 화력이 더 세다.

나 역시 ‘토토가’를 보면서 에스이에스 재결합 무대에 참여하지 못한 유진의 자리를 채우겠다는 듯이 양손을 어깨에 올린 채 “아임 유어 걸”을 따라 불렀고, 김현정의 손동작에 이끌리듯 양팔을 치켜들고 “다 돌려놔!”를 외쳤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그때가 좋았는데”를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건축학 개론>이 휩쓸고 지나갈 때도 그랬다. (지문-정색하며) 천장을 뚫고 나갈 것만 같았던 성장의 그래프가 뚝 꺾여버리고 양극화가 가속화되며 지금 2015년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시작된 1990년대가 ‘엑스(X) 세대’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코드로만 남는 건 아닐까, 그 시대에 대한 기억과 감각이 대중가요 한 소절로 대체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젊었던 시절의 내 모습이 그리운 것을 그 시절이 그리운 것으로 착각해버리는 건 아닐까.

예능 프로그램 가지고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1990년대를 추억하는 건 이제 특별할 것 없는 엔터테인먼트다. 게다가 <무한도전>이 매우 ‘잘’해냈기에 화력이 폭발한 거다. 맞다. 그런데 최근 2~3년 동안 1990년대 열풍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지금 ‘토토가’를 보며 즐거워하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20~40대가 벌써 추억의 사진첩을 꺼내서 보고 또 보고, 그 사진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고 한 얘기를 하고 또 하는 ‘패턴’에 접어든 하나의 징후로 읽힌다. 지나간 시간을 통째로 보지 않고 편한 부분만 꺼내 보는 것이 현실 인식에 얼마나 큰 착시현상을 가져오는지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자꾸 뒤를 돌아보는 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그릴 수 없는 기대 감소의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토토가’ 2부가 방송된다. ‘토토가’를 즐기지 않을 방법은 없지만, ‘토토가’를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와 지난해 출간된 책 <레트로 마니아>를 함께 보는 것, 강력 추천한다.

새해 첫 칼럼이니 유치한 다짐 같은 걸 해보는 건 어떨까. 2015년의 ‘창조경제’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영혼까지 끌어모아 ‘재창조’한 다음 우리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그런 경제가 되지 않도록, 추억할 건 추억하되 1990년대를, 또 2000년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선은 잃지 말기로 (새끼손가락을 내밀면서 기승전‘핑클’의 느낌으로) “약속해줘~!”

안인용 티브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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