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펀치>에 출연 중인 김래원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 TV 전략실’
<에스비에스> 드라마 <추적자>(2012)와 <황금의 제국>(2013),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펀치>는 박경수 작가의 이른바 ‘권력 삼부작’이다. 박경수 작가는 정치와 돈, 그리고 법 앞에 딸을 잃은 아버지와 더는 잃을 게 없는 남자, 3개월 시한부 삶을 사는 남자를 던져놓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개개인의 욕망이 우리가 ‘정의’ 혹은 ‘선’이라고 부르는 가치와 어떻게 부딪히는지, 이때 순간의 판단과 선택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려낸다. 박경수 작가의 드라마가 흥미로운 것은 그가 그 욕망을 불러내는 곳이 바로 밥상머리, 그러니까 식탁이라는 점이다. 드라마 세 편의 부제를 ‘한국인의 밥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드라마는 국내 최초 ‘권력형 먹방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펀치>는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과 그의 오른팔인 검사 박정환(김래원)이 아군에서 적군이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9회가 방영된 <펀치>에서 가장 결정적인 한 장면을 꼽으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조재현과 김래원의 ‘짜장면 신’이다. 김래원은 조재현의 집무실로 짜장면을 한 그릇 보내고, 자기 자신도 똑같은 짜장면을 먹는다.(사진) 예전에 함께 먹었던 짜장면을 이제는 각자의 방에서 먹는다. 1분30초 동안 대사 없이 나무젓가락으로 짜장면을 비비는 소리, 단무지를 깨무는 소리만 들려온다. 여기에서 짜장면은 김래원이 조재현을 위해 차려준 ‘밥상’을 이제 치우겠다는 적나라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 장면은 이 드라마의 화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조재현이 또 다른 정적인 법무부 장관 윤지숙(최명길)과 벌이는 기싸움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누구의 입맛에 맞출 것인가’는 힘을 재는 저울의 역할을 한다. 조재현이 유리한 상황에서는 그가 정한 메뉴인 홍어를 먹고, 최명길이 우위에 있을 때는 파스타를 먹는다. 짜장면, 홍어, 파스타, 라면 등 음식을 먹는 ‘먹방’ 장면은 인물들의 관계와 사건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먹방’ 장면은 시청자로 하여금 ‘먹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과 마주하게 한다. 뭐든 참 맛있게 먹는 조재현을 보노라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이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드라마 속 인물들의 권력에 대한, 돈에 대한 욕망이 남이 먹고 있는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한다. ‘먹는다’는 행위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누구나 배가 고프고, 누구나 그 허기짐을 채워야 한다. 남이 먹고 있으면 먹고 싶어지고, 그 순간 입이 원하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매일 두세번씩 겪는 일상이지만,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행복의 증거가 되기도 하고 불행의 단면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먹방’은 가장 평범하지만 동시에 가장 자극적이며 본능적이다. ‘먹방’이 예능 프로그램의 필수 장면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먹는 행위가 이뤄지는 식탁은 그래서 가장 일상적인 공간이자 동시에 가장 원초적인 공간이다. 박경수 작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요 무대로 항상 식탁을 선택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해낸다. <추적자>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을 식탁 위에 주인 없이 놓인 수저로 보여준다. 손현주가 딸의 수저를 들고 오열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슬프다. 슬퍼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 앉아야 하고, 똑같이 하루에 세 번 가족의 부재를 확인해야 하는 곳이 식탁이다. <황금의 제국>에서는 성진그룹을 두고 가족끼리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를 때마다 낙오된 자가 떠나는 곳이 식탁이다. 성진그룹의 둘째 딸 이요원은 최후의 승자가 됐지만 결국 아무도 없는 식탁에 홀로 앉아 밥을 먹게 된다. 제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가졌다고 해도 밥을 먹을 때만큼은 두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진짜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곳이 바로 식탁이다.
박경수 작가가 ‘권력 삼부작’ 이후 어떤 드라마를 계획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권력’과 숫자 ‘3’이 묘하게 어울리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그가 드라마로 쓰면 어떨까 자꾸 상상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청와대의 이른바 ‘문고리 삼인방’ 얘기다. ‘없었던 것’으로 결론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모임을 가졌다는 이유로 강남의 중국요리 식당이 화제가 된 것만으로도 ‘먹방’ 느낌이 팍 오는데, 콜?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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