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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심심한 재료로 만들어 낸 ‘톡 쏘는 맛’

등록 2015-01-30 19:18수정 2015-01-31 15:22

<냉장고를 부탁해>
<냉장고를 부탁해>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3%. <제이티비시>의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가 지난 1월19일에 기록한 자체 최고 시청률(닐슨코리아)이다. 월요일 밤 9시40분, 지상파 드라마 편성시간에 종편 채널에 자리잡은 이 프로그램은 이제 <제이티비시>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제 막 3%를 찍었지만, 실제 이 프로그램의 체감 시청률은 10% 정도다. 요즘 볼만한 예능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프로그램을 꼽겠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게스트의 냉장고를 가져와 셰프들이 두명씩 그 안의 재료로 15분 안에 요리를 한 다음, 게스트의 선택을 받은 셰프가 별을 다는 프로그램이다. 시작 전에는 이 프로그램을 ‘그렇고 그런 종편 예능’일 거라고 생각했다. 요리 프로그램이 케이블 채널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고, 정형돈과 김성주의 조합도 그다지 특별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 뭐랄까, (이 프로그램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김풍 셰프의 요리가 샘 킴 셰프의 요리를 눌렀을 때의 그런 느낌이다.

연예인의 냉장고를 열었을 때의 안도감(냉장고가 절반은 음식물 쓰레기통인 건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니었어!)과 셰프들의 의외의 예능감, 흔한 재료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신기함은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많은 장점 중에 단연 돋보이는 건 스포츠 경기를 방불케 하는 15분간의 요리 시합이다. 축구경기 전에 선수들이 애국가를 부르듯 두명의 셰프는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조리대 앞에 경건하게 선다. 그리고 타이머가 켜지면 셰프들의 눈과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동시에 정형돈과 김성주 이 두명의 중계와 해설도 시작된다.

스포츠캐스터 출신의 아나운서로 문화방송 월드컵의 중계를 도맡아 하고 있는 김성주는 자타 공인 중계의 달인이다. 세밀한 관찰력과 정확한 전달력, 대단한 스피드를 자랑하는 그의 중계는 양파나 감자를 썰거나 프라이팬에서 재료를 볶는 특별할 것 없는 요리 과정마저도 손에 땀을 쥐면서 보게 한다. 불에 올려진 음식이 타는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마치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외친다. “탔어요! 탔습니다!” 김성주가 쉴 틈 없는 중계로 요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면, 정형돈은 셰프들의 캐릭터를 살려주며 대결의 ‘맛’을 더하고 요리의 맥을 잡는다. 허세와 실력의 경계를 넘나드는 최현석 셰프와 자취요리 달인 김풍 셰프, 여자 게스트를 위한 요리에는 사랑을 조미료로 쓰는 미카엘 셰프 등 이들은 정형돈의 애드리브를 위한 최상의 재료다. 정형돈은 이들을 재료로 그가 사랑하는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처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대척점에 있는 프로그램이 <한국방송>의 <우리동네 예체능>이다. 연예인과 스포츠, 왕년의 스포츠스타까지 재료는 참 좋은데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은 참 좋다. 관심 없는 종목이라도 한번 보기 시작하면 저절로 이를 악물고 보게 되는 게 스포츠 경기 아닌가. 초창기 탁구 때만 해도 괜찮았다. 기본이 없던 출연자들의 실력이 서서히 늘어가고, 이들이 각 지역의 베테랑들과 맞붙어 가끔 이길 때마다 짜릿함과 희열도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출연자와 종목만 바뀔 뿐 ‘실력 없음-기본기 갖춤-실전에서 큰코다침-연습-도전과 실패 반복’ 등 비슷한 서사가 반복됐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일컬어지는 게 스포츠 경기인데, 이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예상이 가능한 스포츠 예능이라니. 그러면서 스포츠 경기 특유의 긴장감과 리듬감은 사라졌다. 스포츠 경기를 포착해내는 그림도, 현장감을 줘야 할 중계도, 열심히 하는 건 알겠는데 웃음 포인트는 올리지 못하는 출연진도 간이 덜 된 찌개처럼 밋밋해졌다.

결론은 요리법, 그러니까 ‘레시피’다. 좋은 재료를 좋은 요리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레시피가 필요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다소 심심할 수 있는 기획을 스포츠 경기로 요리해 톡 쏘는 맛을 냈다. 반면 <우리동네 예체능>은 고유의 맛을 살리려면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격이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족구 편에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안정환과 ‘B1A4’의 바로, 샘 오취리, 이규한까지 이 좋은 출연진에 ‘지니어스’ 정형돈, 이름부터 차진 ‘족구’까지 좋은 재료는 다 갖췄다. 부디 쫀득쫀득하게 요리해 꼭 이렇게 외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족구’ 같은 맛, 제대로네!”

안인용 티브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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