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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아이돌과 연기 그 틈을 좁힌 힘은 어디서…

등록 2015-03-20 19:14수정 2015-03-21 11:11

에스비에스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 중인 이준
에스비에스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 출연 중인 이준
[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10대 후반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 20대 초반에 로맨스 드라마 주조연으로 연기 시작, 연기와 그룹 활동 병행, 드라마 출연작 시청률 10% 이상 기록, 영화로 활동 영역 확장, 그룹 해체 및 탈퇴와 함께 전업 연기자로 전환, 아이돌 꼬리표를 뗀 연기자. 연예계에서 이 정도면 ‘외고-서울대-사법고시 패스’급의 엘리트 코스다. 이 땅에서 은퇴 연령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에게 연기란 이들이 연예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정기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장래희망’이다. 요즘 아이돌 그룹 멤버에게 연기자 데뷔의 기회가 흔한 편임에도 이 코스를 타고 ‘A급’ 연기자로 자리잡는 경우는 드물다. ‘과외빨’로 서울대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사법고시 앞에서는 자기 능력의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인 것과 같다. 뛰어난 외모와 몸매로 잘 세팅된 무대 위에서 춤추다가 그 후광에 힘입어 드라마 한두 편에서 반짝하는 이들은 많다. 그런데 대부분 여기까지다. 이쯤에서 갈 길을 잃고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발연기도 아닌 애매한 조연급 연기자로 남는다.

문제는 ‘환상’이다. 아이돌은 무대 위에서 보는 이들의 감각을 사로잡는 연습을 하고 또 한다. 노래와 춤,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감각을 마비시키고 ‘환상’을 판다. 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 거실 소파와 티브이 사이의 거리, 딱 그만큼의 거리가 아이돌이 파는 환상이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좀더 가까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결코 내 현실로 들어오지 않는, 그래서 더 갖고 싶은 그런 존재에 대한 ‘환상’.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환상’이라는 유리관, 또는 진공 상태에 익숙해진 아이돌은 연기를 할 때도 좀처럼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로맨스 드라마를 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맨스 드라마 자체가 아이돌 그룹이 무대에서 조명을 한껏 받으며 보여주는 짧은 순간을 아주 길게 늘린 것뿐이니까. 그러나 ‘로맨스’라는 조명이 꺼지고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순간이 오면 대부분 여전히 ‘환상 속의 그대’이고 싶어하는 자신과 자신이 연기해야 하는 인물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며 방황하다가 주저앉고 만다.

이렇게 무너지는 수많은 아이돌 그룹 출신 연기자들을 뒤로하고, 특이한 길을 가는 이가 있다. 최근 아이돌 그룹 ‘엠블랙’에서 탈퇴하고 전업 연기자로 나선 이준이다. 이준은 지금 방영 중인 에스비에스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법조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사법고시생이자, 순수한 사랑만으로 결혼과 출산을 빛의 속도로 끝내버린 스무살 한인상 역을 맡았다. 이 드라마에서 이준은 기품 있는 가문에서 잘 자라 반듯하게 컸지만 철은 없고, 생각도 없고, 머릿속에는 사랑하는 여자 서봄(고아성)와 아들밖에 없는 ‘바보’ 캐릭터를 마치 그 자신인 것처럼 연기한다. 이 드라마에서 이준은 서봄을 한없이 사랑하는, 그러나 얼핏 그의 아버지 한정호의 유전자가 보이는 한인상 그 자체다.

그의 연기는 위에서 한참 설명한 여타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과는 결이 다르다. 사뭇 다른 시선을 갖고 있다고 할까. ‘내가 어떻게 보일까’에 집착하며 ‘환상 속의 그대’로서의 자신을 무대에서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에 한정시키는 게 아니라, 좋은 연기자들이 그러하듯 ‘무대-관객’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선을 인공위성처럼 저 위로 쭉 끌어올린다. 잠시 이준의 필모그래피를 뒤져보자. 드라마는 <정글피쉬2> <아이리스2> <갑동이> <미스터 백>이고, 영화는 <닌자 어쌔신> <배우는 배우다>와 아직 개봉하지 않은 <손님> 등이 있다. 그는 원샷 조명을 받는 핑크빛 로맨스 드라마의 사랑꾼이 아닌 문제아와 사이코패스, 한없이 추락하는 욕망의 사나이 같은 역을 주로 해왔다. 이준은 아이돌 그룹 시절부터 다른 아이돌과는 달랐다. 어딘가 이상했다. 무대 위에서는 무용 전공자답게 지나치게 열심히 춤을 췄고, <우리 결혼했어요>나 <라디오 스타>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카메라를 의식하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아이돌 세계는 동물의 왕국”)을 툭 내뱉곤 했다. ‘디스패치도 포기한 남자’ 아니던가.

‘환상’ 같은 데 원래 초탈한 건지, 철저하게 계산된 결과인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이런 길을 지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아이돌 그룹 출신 연기자로서 이준은, 중간 과정은 조금 다르지만 결국 엘리트 코스를 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의 차기작을 기대한다.

안인용 티브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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