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안인용의 미래TV전략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 ‘미래’가 ‘발전’이라든가 ‘진보’ 또는 ‘희망’과 같은 의미를 빠르게 잃어가고 있기에 오히려 이런 말이 청소년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안하게도)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2014 청소년 통계’를 보면, 13~24살 청소년의 절반 이상(56.8%)이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6.4%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74.2%는 ‘외국인과 결혼해도 상관없다’고 응답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률은 대학생 90.4%, 고등학생 78.1%로 나타났다. 중·고등학생이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유해 매체는 ‘휴대전화 성인물’(52.6%)과 ‘케이블 티브이 성인용 프로그램’(42.7%) 순서였다. 디지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우리의 미래’는 이렇듯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에 따른 여러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티브이는 과연 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가고 있을까? 여기 그 실마리가 될 만한 두 프로그램이 있다.
<순결한 동거 드라마: 더러버>가 지난 4월3일 <엠넷>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다. ‘더럽다’와 ‘연인’(The Lover)이라는 중의적 의미의 제목을 내세운 이 드라마는 네 커플의 동거 이야기를 옴니버스 구성으로 다룬다. 동거 2년차인 30대 커플, 동거 1년차인 12살 연상연하 커플,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시작한 커플, 우연히 같은 집에 살게 된 남남 커플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더러버는 동거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 동거 커플을 결혼한 커플과 비교하지 않고, 동거를 결혼이라는 ‘완성’을 향한 과정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동거 커플의 성생활은 현실과 유머 사이를 오가며 재치 있게 그려낸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건 일상툰(웹툰 중 일상을 그리는 장르)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실제 연기자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캐릭터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쭉 나열한다. 사건도, 갈등도 없다. 대신 공감이 있다. 침실에서는 뜨겁지만 거실에서는 한없이 불안하고 덜컹대는 이들의 ‘관계’는 보는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충분하다.
지난 4월25일에는 <문화방송>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 정규방송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김구라와 요리사 백종원 등 출연진 5명이 각자 자신의 채널로 인터넷 생방송을 진행하고, 각 채널의 시청률에 따라 우승자가 결정된다. ‘인터넷 생방송+지상파 방송’이라는 형식의 결합도 주목할 만하지만 마리텔이 흥미로운 건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이야기 힘이 ‘랜선’에 있다는 점이다. 정규방송은 한 시간씩 두 차례 정도에 걸쳐 방송되지만 인터넷 생방송은 채널별로 세 시간 정도 진행된다. 마리텔 인터넷 생방송의 파급력은 꽤 대단하다. 생방송이 시작되면 생방송 채팅창은 물론이고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이 마리텔 이야기로 들끓는다. 인터넷 용어와 언어, 맥락을 이해해야만 즐길 수 있는 ‘드립’이 난무하고, 그 속에서 화제가 만들어진다. 이는 방송이 끝난 다음에도 돌고 돈다. 이는 정규방송의 흐름과 자막으로 이어진다. 시청자라기보다 이용자에 가까운 대중이 직접 서사를 만들어내고 또 즐기며 소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이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이 마리텔의 매력이다. 일상의 스토리텔링을 적극적으로 가져온 더러버와 디지털 네이티브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수용한 마리텔은 티브이가 ‘우리의 미래’와 만나는 좋은 예다.
‘2014 청소년 통계’에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통계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초·중·고등학생의 93.5%는 ‘남자와 여자는 모든 면에서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양성평등 의식은 2013년 통계보다 1.8%포인트 높아졌고, 초등학생(94.2%)-중학생(93.6%)-고등학생(92.8%) 차례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미래’는 양성이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티브이는 어떤가? 여성 등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일삼는 ‘옹달샘’(유세윤, 장동민, 유상무)이 계속 티브이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티브이여, ‘미래’를 따라갈 자신이 없다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지는 말자. 5월이다. 출연자 교체하기 참 좋은, 푸르른 5월이다.
안인용 티브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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