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안인용의 ‘좋아요’가 싫어요
2015년의 티브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쿡방’이다. 티브이 안팎에서 다들 열심히 요리했고, 또 열심히 먹었다. 제이티비시 <냉장고를 부탁해>(이하 <냉부>)와 문화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전>, 티브이엔 <삼시세끼 어촌편>,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등 수많은 쿡방과 요리 관련 프로그램이 연일 상한가를 쳤고, 요리연구가 백종원을 비롯해 최현석, 이연복, 샘 킴, 오세득 등 스타 셰프들, 그리고 차승원 등 요리 능력자들은 광고계를 접수했다. 쿡방이라는 소재 중심의 방송이 티브이의 트렌드를 이끌어간 것은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특정 방송인이나 특정 프로그램이 대단한 인기를 끄는 일이야 늘 있어왔고 ‘오디션’이나 ‘1990년대’ 같은 유행의 키워드도 있어왔지만 요리라는 구체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요리사라는 인물, 요리법이라는 정보와 먹는 즐거움까지 패키지로 구성된 방송의 내용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경우는 드물었다. 티브이를 넘어 요리하는 남자, 혼자 먹는 밥, 집밥 등 현실적이며 사회적인 키워드와 연결되며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움직여 사회의 풍경을 작게나마 바꾸는 일은 더욱이나 드물었다.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쿡방도 시간 앞에서는 별수 없나 보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면서 쿡방의 기세는 눈에 띄게 꺾였다. 시청률이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요리사들과 그들이 하는 요리 모두 이전과 같은 화제를 모으지는 못하고 있다. 봄부터 여름, 초가을까지 10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비슷한 요리법으로 쿡방을 끓이고 또 끓여댔으니 이제 물릴 법도 하다. 요리를 카메라 앞에 바짝 들이대고 “맛있겠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이제는 웬만한 요리를 봐도 침이 고이지 않는다. 쿡방의 인기를 이어갈 만한 새로운 프로그램도, 새로운 요리사도 이제 없다. 시청자야 다른 채널로 돌리면 그만이지만 가파르게 상승하다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가라앉는 쿡방을 바라보는 프로그램 연출자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이들의 고민은 한가지다. “쿡방 다음에는 뭘까?”
2015년 안방 접수한 쿡방 기세꺾여
방송쟁이들이 찾은 먹거리는 ‘집방’
jtbc ‘헌집 새집’ tvN ‘내 방의 품격’
쿡방의 포맷 따라가며 노력하지만… 백종원 같은 스타 보이지 않고
취향인 인테리어, 보편적 만족 못줘
아무리 싸도 50만원 결정적 약점
“쿡방 이을 트렌드? 성급한 생각”
이번달에 제이티비시와 티브이엔은 각각 <헌집줄게 새집다오>(이하 <헌집새집>)와 <내 방의 품격>(이하 <내 방>)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름은 달라도 이 두 프로그램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테리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집을 고치는 방송이라는 뜻의 ‘집방’이라는 신조어를 내세운다는 점, 그리고 프로그램 스스로 ‘쿡방이 가고 집방이 온다’고 홍보한다는 점이다. 두 프로그램의 연출자는 제작발표회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헌집새집>의 성치경 시피(CP·책임프로듀서)는 “다른 방송 다른 피디들도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며 “‘쿡방’ 다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저희는 ‘쿡방’ 다음은 ‘집방’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 방>의 김종훈 시피 역시 “올해 쿡방, 먹방이 지나가며 새로운 트렌드를 고민했다”며 “생활밀착형 예능에 시청자가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 프로그램이 주장하는 것처럼 쿡방 다음은 집방일까?
지난 10일 첫 방송을 시작해 지난 24일 3회가 방송된 <헌집새집>은 김구라와 전현무가 진행을 맡고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연예인 패널이 팀을 이뤄 인테리어 대결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냉부>의 형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냉부>가 초대손님 연예인의 냉장고를 그대로 스튜디오에 가져와 그 안의 재료를 가지고 20분의 제한시간 동안 요리사들이 대결을 벌인다면, <헌집새집>은 초대손님 연예인의 방을 그대로 스튜디오에 재현하고 각 팀이 99만원의 예산 안에서 인테리어를 바꾸는 대결을 벌인다. 성공한 프로그램인 <냉부>의 형식을 가져왔고 김구라와 전현무라는 카드를 쓴 만큼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적당한 긴장감과 안정적인 재미를 준다. <헌집새집>은 첫회부터 시청률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3일 첫 방송을 시작한 <내 집>은 노홍철과 김준현, 오상진, 박건형이 진행을 맡아 셀프 인테리어로 유명한 일반인을 초대해 인테리어에 대한 정보를 듣고 방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인테리어에 관심은 있지만 하는 법은 전혀 모르는 진행자들이 페인트칠 하는 법과 전동드릴 사용법 등 기초적인 지식을 하나씩 배우며 동시에 시청자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집밥 백선생>의 인테리어 버전이다. 물론 ‘백선생’ 대신 일반인 전문가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헌집새집>과 <내 방>모두 쿡방이 성공한 발자국을 따라가려고 노력한 흔적이 선명하게 보인다. 요리라는 소재가 제대로 먹힌 것도 ‘요리요리’스러운 요리가 아닌 자취방에서 혼자 해먹을 수 있는 요리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 것처럼, 인테리어 역시 집을 통째로 리뉴얼해 인생을 바꾸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는 <러브하우스>식의 이야기 대신 한번쯤 시도해볼 만한 실용적인 방 인테리어에 초점을 맞춘다. 두 프로그램 모두 시청자가 시도할 수 있는 인테리어 방법을 쉽게 설명하고 소개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또 쿡방이 그러했듯 집방도 사회적인 맥락과 어느 정도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특히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젊은 세대와의 연결고리가 분명하다. 월세 시대가 시작되면서 “내 집을 사서 꾸며야지” 같은 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졌기에 20대와 30대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정확히 이 방을 꾸미는 것이 제법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또 이전 세대에 비해 뚜렷한 취향과 취미를 갖고 있는 그들에게 인테리어는 단지 집을 꾸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조립식 가구와 다양한 인터넷쇼핑몰의 등장으로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이 ‘셀프’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도 한몫한다. 또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인테리어는 이미지로 소비하기에 가장 적당한 대상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집방이 쿡방을 이을 제법 유력한 트렌드 후보가 될 수는 있겠지만, ‘쿡방 다음 집방’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많은 것들이 비어 있다. 무엇보다 인물이 없다. 쿡방을 이끈 것은 요리연구가와 셰프, 요리비평가 등 전문성과 예능감을 함께 보여주며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었다. 집방 프로그램들 역시 전문가들을 데려다가 직접 인테리어를 하게 하거나 조언자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지만 아직 눈여겨볼 만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요리사는 요리복을 입은 모습부터 요리하는 모습까지 직업적 특수성 때문인지 칼질만 해도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하나의 쇼가 연출된다. 그러나 페인트를 칠하고 가구를 개조하는 인테리어 전문가의 움직임은 지루하다. 결정적으로 인테리어가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이 생각만큼 대단하지 않다. 음식은 본능의 영역에 있지만 인테리어는 취향의 영역에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취향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기에 이 프로그램이 ‘짜잔!’ 하며 보여주는 인테리어 화면에 대해 ‘와!’ 하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또 동시에 터져나오기 쉽지 않다. 물론 <헌집새집>과 <내 방>이 모두 다루는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처럼 요즘 20~30대가 선호하는 취향이 있긴 하지만, 이러한 보편적인 취향을 만족시켜 줄 만한 이미지와 방법은 이미 블로그에 널리고 깔렸다. 결정적으로 인테리어는 비싸다. 제아무리 ‘싸다’는 것을 강조해도 50만원에서 100만원의 지출과 며칠간의 육체노동을 감수해야 한다. 인테리어가 ‘생활밀착형’이라고 제아무리 강조해도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막 시작한 두 프로그램에 벌써 초를 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집방이 2016년의 트렌드’라거나 ‘쿡방을 이을 트렌드’라는 주장이 성급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새로운 트렌드를 선점하고 싶은 초조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트렌드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이 주장한다고 생겨나는 게 아니다. 시청자가, 대중이 반응을 보일 때 생겨나는 게 트렌드다. 제아무리 집방이 뜬다고 해도 쿡방만큼의 파급력을 가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기대를 낮추자. 이제 겨우 2016년이다. 기대를 낮춘다고 판단의 기준까지 낮아지는 건 아니지만, 뭐라도 낮춰야 조금이라도 뜨지 않을까.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방송쟁이들이 찾은 먹거리는 ‘집방’
jtbc ‘헌집 새집’ tvN ‘내 방의 품격’
쿡방의 포맷 따라가며 노력하지만… 백종원 같은 스타 보이지 않고
취향인 인테리어, 보편적 만족 못줘
아무리 싸도 50만원 결정적 약점
“쿡방 이을 트렌드? 성급한 생각”
제이티비시가 선보인 <헌집줄게 새집다오>는 20~30대 중심으로 작은 방을 꾸미는 ‘월세 시대’의 사회적 맥락을 드러낸다. 제이티비시 제공
티브이엔이 선보인 <내 방의 품격>은 20~30대 중심으로 작은 방을 꾸미는 ‘월세 시대’의 사회적 맥락을 드러낸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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