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은 <님과 함께 2: 최고의 사랑>에서 윤정수의 캐릭터를 발굴했고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케미’를 만들어갔다. <제이티비시> 제공
[토요판] 안인용의 ‘좋아요’가 싫어요
“사실 저는 이 자리가 낯설어요. 왜냐하면 사실 제가 저 끝에 있다가 갑자기 여기로 오니까.” 지난 13일 문화방송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이하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방송인 김숙은 방송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4월 출연했을 때는 게스트석 마지막 자리에 앉아 있던 김숙이 8개월 만에 첫번째 자리로 진출했다. 김구라는 김숙에게 “그만큼 대세가 됐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지난 9일에는 문화방송 <무한도전: 예능총회>가 방송됐다. 이경규와 김구라, 김성주, 윤종신 등 예능인들이 참여한 이 자리에 여성 예능인으로는 김숙과 박나래 두 명이 초대됐다. 2015년 예능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2016년을 예측한 이 자리에서 김숙은 “2015년은 남자들 판이었다”며 “여자가 살아남기 힘든 해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6년에는 남녀의 화합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남성 예능인들의 의견은 덧붙여지지 않은 채 이 이야기는 황급히 마무리됐지만, 여성 예능인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됐다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만약 ‘예능총회’가 1년 전에 기획됐다면 여성 예능인이 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여성 예능인이 앉는 자리가 달라졌고, 없던 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은 더 재미있어졌다.
김숙은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김숙의 활약은 대단치 않았다. 고정으로 출연하던 엠비시에브리원 <무한걸스>가 2013년에, 한국방송 <인간의 조건 1>이 2014년에 종영된 이후 토크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에 단발성 게스트로 출연하거나 교양에 가까운 예능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 게 전부였다. 그랬던 김숙이 ‘갓숙’이라고 불리며 대세로 떠오를 수 있었던 시작점에는 지난해 4월 송은이와 함께 시작한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하 <비밀보장>)이 있다. 이 팟캐스트는 누가 섭외를 한 것도,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다. 송은이와 김숙이 제작자이자 연출자이자 진행자로 나서 자비로 마이크와 컴퓨터 등을 구입하고 작가를 영입했다. 기존의 방송 형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팟캐스트의 특성을 한껏 활용한 <비밀보장>은 방송 시작과 함께 입소문을 타면서 팟캐스트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박나래·이국주 등 여성 성공은
대세 예능인 한 사람의 자리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만들고
더 넓은 자리로 나아가는 역할 새로운 웃음 필요한 예능 프로엔
여성 예능인 자리가 더 필요해
김구라가 최고 예능인으로 된건
여성 예능인과 협업 능력도 한몫 <비밀보장>의 성공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송은이와 김숙은 지난해 10월 에스비에스 라디오의 새로운 프로그램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를 시작했다. 김숙이 제이티비시 <님과 함께 2: 최고의 사랑>(이하 <님과 함께 2>)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비밀보장> 덕분이었다. <님과 함께 2>의 성치경 시피(CP)는 기자간담회에서 “<비밀보장>을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김숙을 섭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국에 자리가 없어 스스로 만든 자리가 또다른 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자리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김숙의 자리가 생겨나자 다른 여성 예능인들의 자리도 작게나마 생겨났다. 지난 5일과 12일 방송된 <님과 함께 2>에는 개그우먼 권진영과 김영희, 허안나가 김숙과 윤정수의 집을 찾는 내용이 방송됐다. 우렁찬 웃음소리만큼이나 시원한 웃음을 선사했다. 방송인 기욤 패트리와 배우 송민서 커플 하차 이후 새로운 커플로 합류한 오나미와 허경환 커플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김숙 효과’다. 박나래와 이국주도 한 사람의 자리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만들고 함께 더 넓은 자리로 나아가는 여성 예능인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해 9월 <라디오스타>에서 원맨쇼나 다름없는 활약을 선보이며 떠오른 박나래는 이어 문화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장도연과 함께 출연해 ‘미친 방송’을 선보였다. 지난해 12월에 박나래와 장도연, 그리고 안영미는 한껏 멋을 내고 이국주가 고정으로 출연하는 문화방송 <나 혼자 산다>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동료 여성 예능인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이들의 모습은 화제가 됐다. 지난 14일 제이티비시는 처음 시도하는 모바일 예능 프로그램 <마녀를 부탁해>에 송은이와 김숙, 안영미, 이국주, 박나래가 출연한다고 밝혔다. 2월 방송될 예정인 이 프로그램은 여성 예능인들이 꾸준히 자리를 만들어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여성 예능인의 자리가 여성 예능인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윤정수는 2013년 개인 파산을 신청하고 2014년 법원 판결 확정과 함께 채무관계를 정리한 다음 방송 복귀를 시작했지만 이후 약 1년 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박나래가 <라디오스타>에서 ‘나래바’를 소개하며 화제가 됐을 때 그 옆에 앉아 있던 윤정수를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윤정수는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방송 <일밤> 등에서 ‘태릉인’으로 불리며 건강하고 의리있는 이미지를 유지했다. 복귀 이후에는 ‘옛날 사람’이나 ‘파산의 아이콘’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캐릭터가 없었다. 그랬던 윤정수가 <님과 함께 2>를 통해 투덜대면서도 살림을 잘하고 다정다감한 새로운 캐릭터를 얻게 됐다.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한, 아니 함께 발굴해낸 이는 그의 파트너 김숙이다. “남자는 집에서 조신하게 살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모장’ 캐릭터의 김숙과 유연하게 합을 맞추며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케미’를 만들어갔기에 가능했다. 쇼윈도 부부를 내세우는 둘의 관계는 이성관계라기보다 같은 직업을 가진 파트너 관계에 가깝다. 윤정수가 남성 예능인들과 부딪히며 여전히 예전의 이미지를 이어가기를 고집했다면 대중 앞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윤정수를 보면서 떠오른 남성 예능인이 있다. 세금 논란으로 잠시 방송을 중단하고 돌아온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강호동이다. 지난해 티브이엔 웹 예능 <신서유기>를 비롯해 제이티비시 <아는 형님> <마리와 나> 등을 선택하며 소리를 지르며 힘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옛날 스타일 진행을 버리고 마음이 여리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탈바꿈을 꾀하고 있다. 이전의 캐릭터와 스타일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건 확실하지만 조금 약해졌을 뿐이지 강호동은 여전히 수많은 남성 방송인들과 함께하는 ‘형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리와 나>에서 강아지와 고양이 등 동물과 교감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내려 하지만 기대만큼의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강호동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이는 새로운 ‘케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성 예능인이 아닐까. 지난해 최고의 해를 보낸 김구라는 여성 예능인과 동료로 협업할 줄 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른 프로그램에도 여성 예능인의 자리를 만들고 추천한다. 이 점이 그를 최고의 예능인으로 만든 여러 요인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여성 예능인뿐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야 하는 주류 남성 예능인과 새로운 웃음이 필요한 예능 프로그램 모두를 위해 여성 예능인의 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제이티비시 <썰전>이 ‘사라진 예능의 딸들, 나 좀 찾아줘’를 주제로 예능 프로그램 피디들에게 여성 예능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여성들은 방어적이고 신체, 프라이버시 노출에 제한적이다” “남자가 경험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얘기한다” “남자들은 의리가 있다” “주 시청층이 여성이라서 남성을 쓸 수밖에 없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김숙과 박나래, 이국주, 장도연 등 여성 예능인들이 보여주는 활약을 떠올려보면 이 답변들은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정반대로 다시 써야 납득이 갈 정도다. 중요한 건 이들은 지난해 3월에도 방송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찾아보지 않고, 같이 해보지 않고 ‘없다’고 단정지은 것은 결국 피디들의 게으름이었다.
올해는 김숙의 바람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남녀의 화합이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멤버를 찾고 있는 한국방송 <해피선데이: 1박2일>이나 새로운 멤버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무한도전>, 진행자 규현이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라디오스타>, 암흑기를 겪고 있는 한국방송 <해피투게더 3> 등 주요 예능 프로그램들에 여성 예능인의 자리가 생기길 바란다. 연말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성 예능인들이 사회를 보고, 방송 대상 시상식에서 여성 예능인들이 최우수상을 받고 또 대상 후보가 되길 바란다. 예능 프로그램은 재미있어야 하니까, 단지 그 이유 때문이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대세 예능인 한 사람의 자리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만들고
더 넓은 자리로 나아가는 역할 새로운 웃음 필요한 예능 프로엔
여성 예능인 자리가 더 필요해
김구라가 최고 예능인으로 된건
여성 예능인과 협업 능력도 한몫 <비밀보장>의 성공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송은이와 김숙은 지난해 10월 에스비에스 라디오의 새로운 프로그램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를 시작했다. 김숙이 제이티비시 <님과 함께 2: 최고의 사랑>(이하 <님과 함께 2>)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비밀보장> 덕분이었다. <님과 함께 2>의 성치경 시피(CP)는 기자간담회에서 “<비밀보장>을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김숙을 섭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국에 자리가 없어 스스로 만든 자리가 또다른 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자리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김숙의 자리가 생겨나자 다른 여성 예능인들의 자리도 작게나마 생겨났다. 지난 5일과 12일 방송된 <님과 함께 2>에는 개그우먼 권진영과 김영희, 허안나가 김숙과 윤정수의 집을 찾는 내용이 방송됐다. 우렁찬 웃음소리만큼이나 시원한 웃음을 선사했다. 방송인 기욤 패트리와 배우 송민서 커플 하차 이후 새로운 커플로 합류한 오나미와 허경환 커플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김숙 효과’다. 박나래와 이국주도 한 사람의 자리가 다른 사람의 자리를 만들고 함께 더 넓은 자리로 나아가는 여성 예능인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해 9월 <라디오스타>에서 원맨쇼나 다름없는 활약을 선보이며 떠오른 박나래는 이어 문화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장도연과 함께 출연해 ‘미친 방송’을 선보였다. 지난해 12월에 박나래와 장도연, 그리고 안영미는 한껏 멋을 내고 이국주가 고정으로 출연하는 문화방송 <나 혼자 산다>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 동료 여성 예능인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이들의 모습은 화제가 됐다. 지난 14일 제이티비시는 처음 시도하는 모바일 예능 프로그램 <마녀를 부탁해>에 송은이와 김숙, 안영미, 이국주, 박나래가 출연한다고 밝혔다. 2월 방송될 예정인 이 프로그램은 여성 예능인들이 꾸준히 자리를 만들어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여성 예능인의 자리가 여성 예능인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윤정수는 2013년 개인 파산을 신청하고 2014년 법원 판결 확정과 함께 채무관계를 정리한 다음 방송 복귀를 시작했지만 이후 약 1년 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박나래가 <라디오스타>에서 ‘나래바’를 소개하며 화제가 됐을 때 그 옆에 앉아 있던 윤정수를 기억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윤정수는 2000년대 중반까지 문화방송 <일밤> 등에서 ‘태릉인’으로 불리며 건강하고 의리있는 이미지를 유지했다. 복귀 이후에는 ‘옛날 사람’이나 ‘파산의 아이콘’ 외에는 이렇다 할 만한 캐릭터가 없었다. 그랬던 윤정수가 <님과 함께 2>를 통해 투덜대면서도 살림을 잘하고 다정다감한 새로운 캐릭터를 얻게 됐다.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한, 아니 함께 발굴해낸 이는 그의 파트너 김숙이다. “남자는 집에서 조신하게 살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모장’ 캐릭터의 김숙과 유연하게 합을 맞추며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케미’를 만들어갔기에 가능했다. 쇼윈도 부부를 내세우는 둘의 관계는 이성관계라기보다 같은 직업을 가진 파트너 관계에 가깝다. 윤정수가 남성 예능인들과 부딪히며 여전히 예전의 이미지를 이어가기를 고집했다면 대중 앞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윤정수를 보면서 떠오른 남성 예능인이 있다. 세금 논란으로 잠시 방송을 중단하고 돌아온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강호동이다. 지난해 티브이엔 웹 예능 <신서유기>를 비롯해 제이티비시 <아는 형님> <마리와 나> 등을 선택하며 소리를 지르며 힘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옛날 스타일 진행을 버리고 마음이 여리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탈바꿈을 꾀하고 있다. 이전의 캐릭터와 스타일을 버리려고 노력하는 건 확실하지만 조금 약해졌을 뿐이지 강호동은 여전히 수많은 남성 방송인들과 함께하는 ‘형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리와 나>에서 강아지와 고양이 등 동물과 교감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내려 하지만 기대만큼의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강호동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이는 새로운 ‘케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성 예능인이 아닐까. 지난해 최고의 해를 보낸 김구라는 여성 예능인과 동료로 협업할 줄 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자신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른 프로그램에도 여성 예능인의 자리를 만들고 추천한다. 이 점이 그를 최고의 예능인으로 만든 여러 요인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여성 예능인뿐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야 하는 주류 남성 예능인과 새로운 웃음이 필요한 예능 프로그램 모두를 위해 여성 예능인의 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제이티비시 <썰전>이 ‘사라진 예능의 딸들, 나 좀 찾아줘’를 주제로 예능 프로그램 피디들에게 여성 예능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여성들은 방어적이고 신체, 프라이버시 노출에 제한적이다” “남자가 경험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얘기한다” “남자들은 의리가 있다” “주 시청층이 여성이라서 남성을 쓸 수밖에 없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김숙과 박나래, 이국주, 장도연 등 여성 예능인들이 보여주는 활약을 떠올려보면 이 답변들은 매우 이상하게 들린다. 정반대로 다시 써야 납득이 갈 정도다. 중요한 건 이들은 지난해 3월에도 방송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찾아보지 않고, 같이 해보지 않고 ‘없다’고 단정지은 것은 결국 피디들의 게으름이었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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