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생중계는 정치 콘텐츠의 중심에 정치 비평과 해설보다 정치인과 정치인의 말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국회방송 갈무리
[토요판] 안인용의 ‘좋아요’가 싫어요
2009년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온에어’ 칼럼에 이런 내용을 쓴 적이 있다. ‘늘 그랬듯 별생각 없이 채널을 넘겼는데, 낯선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시시티브이(CCTV) 화면이었다. 채널명은 교통방송 케이블 채널인 ‘티브이(TV)서울’이었다. 카메라는 어두운 강변북로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자동차를 비추고 있었다. (중략) 집이 서울시 교통상황실도 아닌데, 그리고 서울 시내 교통 상황이 유일하게 좋은 새벽 시간에 시시티브이를 틀어주다니, 서울의 야경을 감상하라는 건가? 이 도시에, 이 새벽에 나 말고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굉장한 생방송을 보고 있구나. 저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달리고 있을까? 그러다 보니 1시간이 지나갔다. 다음날 ‘티브이서울’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편성표를 뒤져봤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 제목은 정직하게도 <시시티브이 방송>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발견한 다음부터는 우울하거나, 심란하거나, 잠이 오지 않거나, 무한 상상이 필요하거나 할 때는 이 방송을 본다. 보고 있으면 희한하게도, 위로가 된다.’
아이피티브이(IPTV)의 시대, 유튜브의 시대, 엠시엔(MCN, Multi Channel Network)의 시대다. 채널은 많고 볼 것은 더 많다. 그중에는 교통방송 채널처럼 ‘발견’하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깨닫기 어려운 채널들이 있다. 국회방송 채널도 그중 하나다.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어서 티브이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도 좀처럼 머무를 일이 없는 채널이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 등 국회 활동을 생중계해주는 ‘의사 및 의정 중계’ 프로그램은 화면도, 나오는 이들도, 다루는 주제도 재미가 없다. 콘텐츠로서의 정치는 포털 사이트에서 보는 기사와 저녁에 보는 뉴스, 식당에서 보는 종편 채널, 출퇴근 시간에 듣는 팟캐스트, 에스엔에스(SNS) 타임라인에 떠다니는 정치인들의 실언, 정치인이 악의 축으로 묘사되는 영화나 드라마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충분히 지겹고, 충분히 화가 나는데 굳이 국회방송까지 챙겨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앞서 열거한 수많은 정치 콘텐츠에서 만나는 정치인들은, 대통령과 장관을 포함해 대부분 한심하다. 문자와 영상으로 짧게 전달되는 그들의 말들은 비상식적이거나 품위가 없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확한 발음으로 의사를 전달할 때는 믿기 힘든 유무형의 성과를 자랑할 때 정도다. 한심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나마 이름을 아는 몇몇 정치인에 국한된다. 정치 콘텐츠는 ‘한심하다’는 감정을 가상의 적을 향한 조롱이나 분노로 극대화시키는 데에서 재미를 찾아낸다. 그 재미의 본질은 풍자나 비판이 아닌 혐오에 가깝다. 혐오 콘텐츠는 효과가 빠르고 오래간다. 자기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던져버리고 잊어버리게 만드는 마취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마취제의 겉면에는 ‘국가의 안보’나 ‘사회의 정의’ 같은 그럴듯한 말이 쓰여 있다. 종편이나 몇몇 정치 관련 팟캐스트는 그런 전략으로 시청자나 청취자를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
‘한심하다’고 조롱하고 혐오 부추기는
정치 콘텐츠와 달리
콘텐츠화 안된 정치인의 말 생중계 국회는 연단 빼곤 텅 비어 있었지만
수많은 채널 통해 가상공간 만들어
온라인·에스엔에스 뜨겁게 달구고
국회방송 평소 시청률 20배 넘게 뛰어 가공되지 않은 정치 콘텐츠 ‘신선’
몇 년 전 발견한 교통방송 채널처럼
국회방송도 위로가 될 것 같다 사전에서 정치를 찾아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고 쓰여 있다. 토막난 채로 뉴스에 떠다니는 정치인들의 ‘말말말’을 보면 그 수준으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정치 콘텐츠가 정치의 전부를 보여주는 건 아니기에 실제 정치는 그래도 미디어에 비치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길 바라지만, 그 바람과는 별개로 정치 콘텐츠가 끊임없이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불안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다. 테러방지법 통과를 합법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지난 2월23일부터 192시간25분 동안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됐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방송 채널과 인터넷 의사중계 시스템, 유튜브를 통해 중계하는 ‘팩트티브이(TV)’ 등에서 생중계됐다. 192시간의 생중계는 정치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가장 먼저 콘텐츠화되지 않은 정치를 경험했다. 야당 의원 38명의 말은 방송 시간에 맞춰, 혹은 방송의 의도에 맞게 편집하거나 생략하거나 정리하는 과정 없이 그대로 전달됐다. 콘텐츠화되지 않은 정치인의 말은 의외의 사실을 일깨워줬다. 정치인은 헌법에 근거한 가치와 신념, 지성을 가진 국민의 대표이고 일을 열심히 하며 이들의 말이 꽤 들을 만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38명의 정치인이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기대 이상이었던 이들도 있었고 실망스러웠던 이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을 소속 정당이나 계파, 과거의 활동이 아닌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그들의 말 전체를 들으며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납득하거나 반박하는 등 생각하는 정치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필리버스터 생중계는 수많은 채널을 통해 가상의 광장을 만들어냈다. 필리버스터가 벌어지는 물리적인 공간인 국회에는 연설을 하는 국회의원과 그 뒤에서 졸음으로 힘겨워하는 의장만 존재했다. 좌석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생중계되는 카메라와 티브이, 컴퓨터, 웹사이트, 휴대전화 등 각자의 개인 채널을 통해 공유됐고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함께했다. 채팅창과 에스엔에스(SNS),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덧붙이고 굴려갈 수 있었다.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의원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그 의견이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모두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이 가상의 광장에는 경찰과의 대치나 구호, 몸싸움 대신 정리된 말과 논리정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 내용은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다가올 우울한 미래에 대한 예언과 지금까지 겪어온 암울한 과거에 대한 회고 등이었지만 각자 자신의 채널로 그걸 지켜보는 방식만큼은 유희적이었다. 필리버스터 생중계를 문화방송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빗대어 ‘마이 국회 텔레비전’, 줄여서 ‘마국텔’이라고 부르며 재미를 덧씌웠다. ‘마국텔’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국회방송의 일일 시청률은 0.014%에서 20배가 넘는 0.283%까지 뛰었고, 온라인으로 생중계를 시청한 누적 접속자는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버스터의 절박함과 버티기가 주는 긴장감이 시청률 견인에 큰 역할을 했지만 어쨌든 ‘마국텔’은 흥행에 성공했다. ‘마국텔’의 흥행 성공은 방송이 정치라는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 역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치 콘텐츠의 중심에는 정치에 대한 비평과 해설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정치인과 정치인의 말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정치의 본질인 연설과 토론, 논쟁을 비롯해 의정활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콘텐츠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소통에 있어서는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다. 정치 콘텐츠가 달라진다고 해도 그 영향력이 지금 당장 실제 정치에 미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눈앞의 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말과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필리버스터 생중계라는 뜻밖의 정치 콘텐츠는 가장 정치적인 결말로 조기 종영을 맞았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정치인들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이름 석 자를 알렸고, 이들의 ‘어록’은 이미지로 만들어져 랜선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여당은 몇몇 정치인이 유명세를 얻고 선거에 이용한 게 필리버스터의 전부라며 깎아내렸다. 어쨌든 테러방지법은 통과됐고 유명세를 얻은 야당 국회의원들 중 재선에 성공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며 이들의 이름은 곧 잊힐 것이다. 그러나 함께 밤새우며 가상의 광장을 지켰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경험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며 언제든 다시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은 어딘가에 저장된다. 습관으로 저장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7년 전 교통방송을 발견한 다음 종종 보며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이번에 발견한 국회방송 역시 생각날 때마다 돌려볼 것이다. 나 말고 누군가 역시 그 채널을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희한하게도 위로가 될 것 같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치 콘텐츠와 달리
콘텐츠화 안된 정치인의 말 생중계 국회는 연단 빼곤 텅 비어 있었지만
수많은 채널 통해 가상공간 만들어
온라인·에스엔에스 뜨겁게 달구고
국회방송 평소 시청률 20배 넘게 뛰어 가공되지 않은 정치 콘텐츠 ‘신선’
몇 년 전 발견한 교통방송 채널처럼
국회방송도 위로가 될 것 같다 사전에서 정치를 찾아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고 쓰여 있다. 토막난 채로 뉴스에 떠다니는 정치인들의 ‘말말말’을 보면 그 수준으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정치 콘텐츠가 정치의 전부를 보여주는 건 아니기에 실제 정치는 그래도 미디어에 비치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길 바라지만, 그 바람과는 별개로 정치 콘텐츠가 끊임없이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불안을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다. 테러방지법 통과를 합법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지난 2월23일부터 192시간25분 동안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됐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방송 채널과 인터넷 의사중계 시스템, 유튜브를 통해 중계하는 ‘팩트티브이(TV)’ 등에서 생중계됐다. 192시간의 생중계는 정치 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가장 먼저 콘텐츠화되지 않은 정치를 경험했다. 야당 의원 38명의 말은 방송 시간에 맞춰, 혹은 방송의 의도에 맞게 편집하거나 생략하거나 정리하는 과정 없이 그대로 전달됐다. 콘텐츠화되지 않은 정치인의 말은 의외의 사실을 일깨워줬다. 정치인은 헌법에 근거한 가치와 신념, 지성을 가진 국민의 대표이고 일을 열심히 하며 이들의 말이 꽤 들을 만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38명의 정치인이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기대 이상이었던 이들도 있었고 실망스러웠던 이들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을 소속 정당이나 계파, 과거의 활동이 아닌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그들의 말 전체를 들으며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납득하거나 반박하는 등 생각하는 정치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필리버스터 생중계는 수많은 채널을 통해 가상의 광장을 만들어냈다. 필리버스터가 벌어지는 물리적인 공간인 국회에는 연설을 하는 국회의원과 그 뒤에서 졸음으로 힘겨워하는 의장만 존재했다. 좌석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생중계되는 카메라와 티브이, 컴퓨터, 웹사이트, 휴대전화 등 각자의 개인 채널을 통해 공유됐고 수만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함께했다. 채팅창과 에스엔에스(SNS), 커뮤니티 게시판 등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덧붙이고 굴려갈 수 있었다.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의원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그 의견이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모두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이 가상의 광장에는 경찰과의 대치나 구호, 몸싸움 대신 정리된 말과 논리정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 내용은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다가올 우울한 미래에 대한 예언과 지금까지 겪어온 암울한 과거에 대한 회고 등이었지만 각자 자신의 채널로 그걸 지켜보는 방식만큼은 유희적이었다. 필리버스터 생중계를 문화방송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빗대어 ‘마이 국회 텔레비전’, 줄여서 ‘마국텔’이라고 부르며 재미를 덧씌웠다. ‘마국텔’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국회방송의 일일 시청률은 0.014%에서 20배가 넘는 0.283%까지 뛰었고, 온라인으로 생중계를 시청한 누적 접속자는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버스터의 절박함과 버티기가 주는 긴장감이 시청률 견인에 큰 역할을 했지만 어쨌든 ‘마국텔’은 흥행에 성공했다. ‘마국텔’의 흥행 성공은 방송이 정치라는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 역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정치 콘텐츠의 중심에는 정치에 대한 비평과 해설도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정치인과 정치인의 말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정치의 본질인 연설과 토론, 논쟁을 비롯해 의정활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콘텐츠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소통에 있어서는 기대하는 거의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다. 정치 콘텐츠가 달라진다고 해도 그 영향력이 지금 당장 실제 정치에 미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눈앞의 변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말과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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