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오에스티(OST)는 애국가나 다름없다. 드라마 매회를 거의 대부분 오에스티로 시작한다. 한국방송 제공
[토요판] 안인용의 ‘좋아요’가 싫어요
“노래방 가면 첫 곡을 애국가로 시작하는 사람이야, 내가.”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7회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지진이 일어난 현장에서 구조를 두고 유시진(송중기) 대위와 논쟁을 벌인 전력발전소 소장 진영수(조재윤)가 자신이 얼마나 국가를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강조하며 내뱉은 대사다. 이 대사를 빌려 <태양의 후예>를 설명하자면, “티브이 틀면 첫 장면을 뮤직비디오로 시작하는 드라마야, 이게” 정도 되겠다. 농담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을 오에스티(OST)로 시작한다. 가사가 없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가사가 있는 노래로, 그것도 ‘휴먼 멜로’라는 드라마 장르답게 애절한 발라드로, 심지어 윤미래와 거미가 부르는 발라드로 말이다.
2회의 시작 부분에서는 헬리콥터를 타고 작전을 수행하러 떠나며 남겨진 강모연(송혜교)을 바라보는 유시진의 모습 위로 오에스티가 흐른다. 윤미래가 부르는 ‘올웨이스’(Always)의 후렴구, ‘아이 러브 유 듣고 있나요…’다. 3회에서는 파병 현장에서 남녀 주인공이 다시 만나고 어김없이 오에스티가 흐른다. ‘그대를 바라볼 때면 모든 게 멈추죠….’ 5회는 남녀 주인공의 키스신으로 시작한다. 역시 ‘아이 러브 유 듣고 있나요…’. 6회는 강모연이 유시진의 고백을 거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번에는 거미다. ‘유 아 마이 에브리싱 별처럼 쏟아지는 운명에….’ 7회와 8회는 각각 유시진이 강모연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과 강모연이 유시진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당연히 ‘아이 러브 유 듣고 있나요…’가 흐른다. 이렇게 대놓고 ‘아이 러브 유’라고 외치고 또 외치는데 듣지 못할 리가 없다.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만 같은 이 장면들은 드라마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며 남녀 주인공이 ‘운명의 데스티니’ 같은 사랑을 하고 있음을, 특히 남자 주인공이 대단히 멋있음을 보여준다.
대놓고 ‘아이 러브 유’ 음악
단순한 이야기 구조
극단적인 남자 주인공 캐릭터 보면
여심 공략 캐릭터가 이 드라마 전부 의도는 적중했고
한·중 열광적인 반응 거의 전부
유시진 캐릭터에 대한 것
작품성을 찾는 건 어불성설 ‘태양의 후예’ 성공은 고무적이지만
성공한 드라마는 내일을 개척하고
‘좋은 드라마’는 무한의 시간을 개척한다 이 드라마에서 오에스티는 애국가나 다름없다. 드라마에서 애국가가 나오면 몸을 돌려 태극기가 있는 곳을 향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 남녀 주인공은 오에스티만 흐르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눈을 촉촉하게 적시고 서로를 바라본다. 드라마의 내용만 봐서는 둘이 왜 사랑에 빠졌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오에스티가 ‘별처럼 쏟아지는 운명에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고’(거미 ‘유 아 마이 에브리싱’), ‘내 운명이죠 세상 끝이라도 지켜주고 싶은 너’(첸, 펀치 ‘에브리타임’)라며 주인공들의 속마음을 읽어주니 그렇다고 믿게 된다.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진 2회부터 지난 목요일 방영된 8회까지 매회 오에스티가 서너 곡씩 흘러나왔고, 드라마는 시청률(수도권 기준) 30%를 찍었으며, 지금까지 발매된 <태양의 후예> 오에스티 음원은 모두 차트 1위를 비롯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드라마에 있어 배경음악과 오에스티는 중요하다. 좋은 멜로디를 가진 오에스티는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이야기가 잘 흘러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곡이라고 해도 오에스티는 ‘그저 도울 뿐’이어야 하는데 이야기를 앞서가면 드라마의 리듬이 흔들린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 오에스티는 앞서 나가는 것으로도 부족한지 시청자에게 일정한 감정을 반복해서 주입한다. 오에스티뿐만 아니라 배경음악까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은 장면 장면을 설명하느라 바쁘다. 지진 등 재난 장면이 나오면 ‘휴먼’이 흘러넘치는 웅장한 스트링 사운드가 ‘긴장하라’고 주문하고, 남녀 주인공 투샷이 잡히면 ‘멜로’가 흘러넘치는 발라드가 ‘감상하라’고 주문한다. 오에스티와 배경음악 덕분에 이 드라마는 따라가기가 쉽다. <태양의 후예>를 쓴 김은숙 작가는 항상 오에스티로 화제가 됐다. <시크릿 가든>도 그랬고, <신사의 품격>도 그랬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오에스티의 쓰임이 유난히 단순하다. 단순한 건 오에스티의 쓰임뿐만이 아니다. 재난 현장을 배경으로 군인과 의사를 등장시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듯하지만 이야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사람들의 욕망과 제어되지 않는 자연재해, 각자의 의무와 책임이 뒤섞여 제법 입체적인 얘기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갈등에는 관심이 없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 그뿐이다. 유시진의 캐릭터는 극단적으로 완벽하다. 이 모든 쉬움과 단순함이 남자 주인공을 빛나게 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김 작가는 판타지에 가까운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와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신사의 품격>의 김도진, <상속자들>의 김탄 모두 그랬다. 그들은 모두 말을 잘하고, 특히 여성을 설레게 하는 말을 대단히 잘한다. 적당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고, 사랑 앞에서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유시진은 그중에서도 발군이다. 강모연에게 툭툭 던지는 대사들은 소위 픽업 아티스트의 교과서가 있다면 당당히 여러 페이지에 걸쳐 올라와도 될 정도다. 유시진에게는,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보여준 바에 따르면, 단 하나의 흠결도 없다. 가족관계, 인간관계, 일에 대한 사명감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문제 될 만한 게 없다. 이 정도면 완전무결한 남자 주인공이다. 실패도 좌절도 없고 거의 모든 문제를 그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척척 해결한다. 그를 시험에 들게 하지도 않는다. 유시진 캐릭터의 독특한 점은 그가 남다른 삼각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도, 사랑하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남자도 아닌 인류애, 국가와의 삼각관계가 그것이다. 강모연은 그가 군인이라는 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의 걸림돌이 애국심, 군인으로서의 명예라니. 그렇다고 이 삼각관계가 대단히 긴장감 넘치는 것도 아니다. 강모연이 유시진의 애국심을 이해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린 다음 ‘슈바이처식’의 인류애를 장착하면 쉽게 해결될 갈등이다. 현실에 기반해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는 대신 인류애를 가장 쉽고 단순하게 해석한 설정을 선택하고, 그래서 여러 티브이 칼럼니스트들이 지적했듯이 군국주의나 애국주의에 머무르는 데 그친다. 유시진의 완전무결함은 드라마의 기획 의도에 써 있는 것처럼 모두가 원하는 ‘진짜 영웅’이 되기에는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좋은 드라마’, ‘재미있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나라를 사랑하고 강모연을 사랑하기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그의 말과 행동을 비롯해 드라마의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그의 욕망이나 내면을 읽을 수 없다. 수많은 언론에서 관성적으로 쓰는 표현처럼 ‘여심’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남자 주인공 캐릭터가 이 드라마의 거의 전부다.
이 드라마는 이런 부분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의도적 혹은 전략적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오에스티 과잉이나 단순한 이야기 구조, 극단적인 남자 주인공 캐릭터 등을 보면 그렇다. 이 드라마는 중국의 투자를 받아 제작됐고 중국에서 동시 방영되고 있다. 한국 시청자뿐 아니라 중국 시청자도 동시에 겨냥해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얘기다. 이 단순함은 한국과 중국 시청자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가장 쉬운 타협점은 아니었을까. 어쨌든 의도는 적중했다. 이 드라마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열광적인 반응은 거의 전부가 송중기가 연기하는 유시진 캐릭터에 대한 것이다. 이 드라마의 성공은 고무적이다. 여러 매체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중국 내 한국 드라마 열풍을 몰고 온 <별에서 온 그대>와 <상속자들>을 이을 수 있는 드라마가 나왔고, 이번에도 중국 관광객 유치 등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성공을 두고 작품성을 거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전제작을 했다고 해서, 유명한 작가가 썼다고 해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출연했다고 해서 덮어두고 성공의 원인을 작품성에서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순한 이야기 위에 홀로 빛나는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구축한 드라마가 과연 좋은 드라마일까. 성공하는 드라마가 다 좋은 드라마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좋은 드라마라고 해서 무조건 성공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성공한 드라마와 좋은 드라마를 구분할 필요는 있다. 중국이라는 시장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지금,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공한 드라마는 내일을 개척하지만 좋은 드라마는 그다음 무한의 시간을 개척한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단순한 이야기 구조
극단적인 남자 주인공 캐릭터 보면
여심 공략 캐릭터가 이 드라마 전부 의도는 적중했고
한·중 열광적인 반응 거의 전부
유시진 캐릭터에 대한 것
작품성을 찾는 건 어불성설 ‘태양의 후예’ 성공은 고무적이지만
성공한 드라마는 내일을 개척하고
‘좋은 드라마’는 무한의 시간을 개척한다 이 드라마에서 오에스티는 애국가나 다름없다. 드라마에서 애국가가 나오면 몸을 돌려 태극기가 있는 곳을 향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 남녀 주인공은 오에스티만 흐르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눈을 촉촉하게 적시고 서로를 바라본다. 드라마의 내용만 봐서는 둘이 왜 사랑에 빠졌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오에스티가 ‘별처럼 쏟아지는 운명에 그대라는 사람을 만나고’(거미 ‘유 아 마이 에브리싱’), ‘내 운명이죠 세상 끝이라도 지켜주고 싶은 너’(첸, 펀치 ‘에브리타임’)라며 주인공들의 속마음을 읽어주니 그렇다고 믿게 된다.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진 2회부터 지난 목요일 방영된 8회까지 매회 오에스티가 서너 곡씩 흘러나왔고, 드라마는 시청률(수도권 기준) 30%를 찍었으며, 지금까지 발매된 <태양의 후예> 오에스티 음원은 모두 차트 1위를 비롯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드라마에 있어 배경음악과 오에스티는 중요하다. 좋은 멜로디를 가진 오에스티는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이야기가 잘 흘러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곡이라고 해도 오에스티는 ‘그저 도울 뿐’이어야 하는데 이야기를 앞서가면 드라마의 리듬이 흔들린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 오에스티는 앞서 나가는 것으로도 부족한지 시청자에게 일정한 감정을 반복해서 주입한다. 오에스티뿐만 아니라 배경음악까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은 장면 장면을 설명하느라 바쁘다. 지진 등 재난 장면이 나오면 ‘휴먼’이 흘러넘치는 웅장한 스트링 사운드가 ‘긴장하라’고 주문하고, 남녀 주인공 투샷이 잡히면 ‘멜로’가 흘러넘치는 발라드가 ‘감상하라’고 주문한다. 오에스티와 배경음악 덕분에 이 드라마는 따라가기가 쉽다. <태양의 후예>를 쓴 김은숙 작가는 항상 오에스티로 화제가 됐다. <시크릿 가든>도 그랬고, <신사의 품격>도 그랬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오에스티의 쓰임이 유난히 단순하다. 단순한 건 오에스티의 쓰임뿐만이 아니다. 재난 현장을 배경으로 군인과 의사를 등장시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듯하지만 이야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사람들의 욕망과 제어되지 않는 자연재해, 각자의 의무와 책임이 뒤섞여 제법 입체적인 얘기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갈등에는 관심이 없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 그뿐이다. 유시진의 캐릭터는 극단적으로 완벽하다. 이 모든 쉬움과 단순함이 남자 주인공을 빛나게 하기 위해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김 작가는 판타지에 가까운 남자 주인공 캐릭터를 만드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파리의 연인>의 한기주와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신사의 품격>의 김도진, <상속자들>의 김탄 모두 그랬다. 그들은 모두 말을 잘하고, 특히 여성을 설레게 하는 말을 대단히 잘한다. 적당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고, 사랑 앞에서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유시진은 그중에서도 발군이다. 강모연에게 툭툭 던지는 대사들은 소위 픽업 아티스트의 교과서가 있다면 당당히 여러 페이지에 걸쳐 올라와도 될 정도다. 유시진에게는,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보여준 바에 따르면, 단 하나의 흠결도 없다. 가족관계, 인간관계, 일에 대한 사명감까지 그 어느 것 하나도 문제 될 만한 게 없다. 이 정도면 완전무결한 남자 주인공이다. 실패도 좌절도 없고 거의 모든 문제를 그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척척 해결한다. 그를 시험에 들게 하지도 않는다. 유시진 캐릭터의 독특한 점은 그가 남다른 삼각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도, 사랑하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남자도 아닌 인류애, 국가와의 삼각관계가 그것이다. 강모연은 그가 군인이라는 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의 걸림돌이 애국심, 군인으로서의 명예라니. 그렇다고 이 삼각관계가 대단히 긴장감 넘치는 것도 아니다. 강모연이 유시진의 애국심을 이해하고 세속적인 욕망을 버린 다음 ‘슈바이처식’의 인류애를 장착하면 쉽게 해결될 갈등이다. 현실에 기반해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는 대신 인류애를 가장 쉽고 단순하게 해석한 설정을 선택하고, 그래서 여러 티브이 칼럼니스트들이 지적했듯이 군국주의나 애국주의에 머무르는 데 그친다. 유시진의 완전무결함은 드라마의 기획 의도에 써 있는 것처럼 모두가 원하는 ‘진짜 영웅’이 되기에는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좋은 드라마’, ‘재미있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나라를 사랑하고 강모연을 사랑하기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그의 말과 행동을 비롯해 드라마의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그의 욕망이나 내면을 읽을 수 없다. 수많은 언론에서 관성적으로 쓰는 표현처럼 ‘여심’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남자 주인공 캐릭터가 이 드라마의 거의 전부다.
안인용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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