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배우 김래원 13일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해바라기’의 언론시사회. 주연배우 김래원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영화 '해바라기' 주인공 오태식 역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부은 자의 미세한 떨림. 진이 다 빠지고, 머리가 텅 비어 있는 듯한 모습.
23일 개봉하는 영화 '해바라기'(감독 강석범, 제작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를 내놓은 김래원에게서 그런 떨림이 전해졌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10년 동안 복역한 후 세상에 다시 나온 오태식. 그에게 생전 처음 '희망'이란 걸 느끼게 한, 죽음들 당한 자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족 이상의 의미다. 행여나 생채기라도 날까 두려워 소중히 지켜왔던 그것이 산산히 부서졌을 때의 절망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김래원의 '해바라기'는 최근 젊은 남자 배우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남성 영화'로도 보인다. 권상우의 '말죽거리 잔혹사', 류승범의 '사생결단', 조인성의 '비열한 거리'가 배우에게 의미심장한 방점을 찍었듯 김래원에게도 '해바라기'는 그의 배우 인생을 두고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이다.
"정말 진심으로 말하지만, 후회 없습니다. 제가 가슴으로 느낀 영화였고,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시 하라고 한다면 더 못할 정도로 촬영 당시 행복하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오태식으로 지내면서 가슴 아프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고. 설사 개봉을 하지 못한다 해도 제겐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영화죠."
그는 "미련이 없다"고 단언했다. 한동안 영화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시사회를 본 뒤에 또 이틀간을 앓았다. 긴장감 때문일까. 갑자기 눈에 이상이 와 인터뷰하는 날 안대를 착용하고 왔다. 개봉하지 못해도 좋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그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다는 걸 몸이 말해준다.
"10년 동안 감옥에 있던 태식이 세상에 나와 여러 일을 겪으며 달라지는 모습이 화면에 비쳐지듯이 저 역시 연기하면서 태식이를 만들어갔습니다. 엄마와 여동생에 대한 사랑을 만들어간 거죠. 점점 자연스럽게 사랑도 생기고, 책임감도 생겼습니다."
모든 걸 잃은 태식이 오라클 나이트클럽에서 벌이는 마지막 액션신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그렇게 봐주시면 고맙죠"라면서도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게 있다"고 덧붙인다.
"감독님은 잔잔하게 남기고 싶어하셨던 것 같아요. 한번에 폭발하지 않았으면 했던 거죠. 그런데 전 촬영하면서 제가 더 감정에 빠져들어 너무 진지하게 갔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감독님이 '내가 이 작품을 쓸 때 오태식은 가공의 인물이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욕심이 생겼죠." 오태식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세 가지 약속인 '다시는 싸우지 말자'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가 무너지는 마지막 액션신에 이르기 전 그는 술을 마시며 운다. 화면에 소주 다섯 병 정도가 등장하는데 실제 소주 두 병을 마시며 촬영했다. 촬영도 들어가기 전부터 울었다. "조명을 맞출 때 부터 울었어요. 제가 원래 잘 울지 못하잖아요. 조명과 상관없이 계속 울었고, 그걸 촬영감독님이 계속 찍었습니다. 그래서 더 관객 가슴에 와닿는 장면도 있었을 텐데 감독님은 그걸 원하시진 않았던 것 같아요. 편집된 걸 보니." 나이트클럽 장면을 찍기 전 어머니 역의 김해숙에게 전화를 했다. 김해숙은 촬영 초반 김래원에게 "선배가 아닌 동료로 대해달라"고 말해 그를 실제 푸근하게 만들었다. 그는 계속 김해숙을 '엄마'라 칭했다.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싸우러 가고 싶었어요. 촬영하느라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셨죠. 나중에 엄마가 음성과 문자 메시지로 얼마나 미안하다고 하셨는지. 그런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맞아. 엄마가 죽었으니 전화를 받을 수 없지'라고." 얼마나 오태식에 빠져 있었는지 가늠케 한다. 이 신은 액션과 불타는 장면 때문에 열흘 정도 리허설을 했다. 대신 5~6일을 예상했던 촬영은 나흘 만에 끝났다. 감독의 "야, 이제 그만하자"는 탈진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스스로 말하듯 주로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보여왔던 김래원이 '미스터 소크라테스'에 이어 남성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다른 생각 없어요. 나이에 맞게 과정대로, 크게 봤을 때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선배들 말씀대로 연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거니까요. 다만 '굿모닝 소크라테스' 때 너무 아쉬웠어요. 정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다만, 이젠 밝고 건강하고 감동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네요." '이제는 뭘 볼 수 있는 눈이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나'라고 스스로 평한다. 요즘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가장 크게 자리하느냐고 물었다. "어렵네요"라며 한참을 머뭇거린 그는 얼마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봤다는 말을 꺼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해봤어요. 배우가 아닌 내 삶도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은 내 삶 자체가 배우로서의 삶이며, 거기서 행복도 아픔도 느끼고 있죠. 그러나 배우로서의 삶은 배우로서의 삶이고, 너무 일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한 어른이 제게 '넌 왜 스캔들 한번 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맞아요. 이제는 제 나이 때 연애도 하고 그러는 건데." 김래원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김가희 기자
"감독님은 잔잔하게 남기고 싶어하셨던 것 같아요. 한번에 폭발하지 않았으면 했던 거죠. 그런데 전 촬영하면서 제가 더 감정에 빠져들어 너무 진지하게 갔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감독님이 '내가 이 작품을 쓸 때 오태식은 가공의 인물이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욕심이 생겼죠." 오태식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세 가지 약속인 '다시는 싸우지 말자'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가 무너지는 마지막 액션신에 이르기 전 그는 술을 마시며 운다. 화면에 소주 다섯 병 정도가 등장하는데 실제 소주 두 병을 마시며 촬영했다. 촬영도 들어가기 전부터 울었다. "조명을 맞출 때 부터 울었어요. 제가 원래 잘 울지 못하잖아요. 조명과 상관없이 계속 울었고, 그걸 촬영감독님이 계속 찍었습니다. 그래서 더 관객 가슴에 와닿는 장면도 있었을 텐데 감독님은 그걸 원하시진 않았던 것 같아요. 편집된 걸 보니." 나이트클럽 장면을 찍기 전 어머니 역의 김해숙에게 전화를 했다. 김해숙은 촬영 초반 김래원에게 "선배가 아닌 동료로 대해달라"고 말해 그를 실제 푸근하게 만들었다. 그는 계속 김해숙을 '엄마'라 칭했다.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싸우러 가고 싶었어요. 촬영하느라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셨죠. 나중에 엄마가 음성과 문자 메시지로 얼마나 미안하다고 하셨는지. 그런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맞아. 엄마가 죽었으니 전화를 받을 수 없지'라고." 얼마나 오태식에 빠져 있었는지 가늠케 한다. 이 신은 액션과 불타는 장면 때문에 열흘 정도 리허설을 했다. 대신 5~6일을 예상했던 촬영은 나흘 만에 끝났다. 감독의 "야, 이제 그만하자"는 탈진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스스로 말하듯 주로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보여왔던 김래원이 '미스터 소크라테스'에 이어 남성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다른 생각 없어요. 나이에 맞게 과정대로, 크게 봤을 때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선배들 말씀대로 연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거니까요. 다만 '굿모닝 소크라테스' 때 너무 아쉬웠어요. 정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다만, 이젠 밝고 건강하고 감동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네요." '이제는 뭘 볼 수 있는 눈이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나'라고 스스로 평한다. 요즘 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가장 크게 자리하느냐고 물었다. "어렵네요"라며 한참을 머뭇거린 그는 얼마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봤다는 말을 꺼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해봤어요. 배우가 아닌 내 삶도 정말 중요합니다. 지금은 내 삶 자체가 배우로서의 삶이며, 거기서 행복도 아픔도 느끼고 있죠. 그러나 배우로서의 삶은 배우로서의 삶이고, 너무 일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한 어른이 제게 '넌 왜 스캔들 한번 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맞아요. 이제는 제 나이 때 연애도 하고 그러는 건데." 김래원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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