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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전도연 “카메라 앞에 서면 세상에 버려진듯 외로워요”

등록 2007-05-09 18:25수정 2007-05-10 15:43

‘밀양’ 주연 전도연
‘밀양’ 주연 전도연
‘밀양’ 주연 전도연
‘밀양’ 주연 전도연
‘밀양’ 주연 전도연
“시나리오 보고 미로에서 헤매는 것 같았어요. 전도연스럽지 않게 만들려면 왜 전도연을 캐스팅했을까? 스스로를 고문하다보니까 무언가가 나오는 것 같아요”

1997년, 친구의 애인을 사랑한 수현은 좀처럼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다. 앙다문 입술은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고 있었다. 전도연이 그의 첫 영화 〈접속〉에 캐스팅 됐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수현이 된 뒤 그는 가장 큰 가능성을 품은 배우가 됐다.

2007년, 남편과 아이를 잃은 신애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마른 울음을 토한다. 신에게 구원받았다고 믿을 때 그는 아기같이 웃는다. 이미 정상에 선 그는 10번째 영화 〈밀양〉에서 극과 극의 감정을 이음새 없이 오가며 또 한 단계 진화를 보여줬다. 지난 7일 만난 그에게 연기를 외신에서도 극찬하더라고 했더니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제가 보긴 (제 연기가) 좀 과하던데요.”

신애는 절망하고 희망하고 실성해야 한다. “시나리오를 본 첫 느낌이 중요해요. 그런데 이건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저한텐 너무 어려웠어요. 꽉 막힌 미로에서 찾아 헤매는 것 같았어요. 결국 전도연을 버리라는 건데 전도연스럽지 않게 만들려면 왜 전도연을 캐스팅했을까? 스스로를 고문하다보니까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가 나오는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 출연한 적 있는 설경구는 한 인터뷰에서 표현이 가능할까 싶은 여러가지 요구를 늘어놓은 시나리오의 지문 두고 “야비한 지문”이라고 우스개로 말했다. “감독님은 배우가 스스로 찾도록 두는데 주문은 이런 식이에요. ‘아픈데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그게 얼굴에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감정은 단선이 아닌데 표현에만 신경을 쓰면 느낌을 잊을 수 있는 걸 알려주시려고 했던 듯해요. 울음이 슬픔의 다가 아니고 웃음이 기쁨의 다는 아니니까요.”

<밀양>에서 전도연, 송강호를 빼면 모두 처음보는 얼굴이다. 생활에서 퍼낸 조연들이 집요한 사실성을 구축한다. “장로님역을 맡은 분은 고깃집 주인이에요. 연기가 너무 힘들어서 꿈도 꾸고 그러셨데요. 모두 무척 연기를 잘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밀양’ 주연 전도연
‘밀양’ 주연 전도연
“‘해피엔드’는 내가 어떤 배우인지 알게 해준 작품이죠. 남자배우는 벗는데 여자 는 안 그렇다며 꾸짖던 언론이 영화 속 역할이 제 사생활인양 이야기해 무척 화났어요”

지난 10년, 그는 말간 이마에 햇살이 부서지는 소녀였고(〈내 마음의 풍금〉 〈인어공주〉), “오빠 나만 바라봐~” 애교있는 유혹자이자 비련의 주인공(〈너는 내 운명〉)이며, 정숙하고 고지식한 사대부가의 여자(〈스캔들〉)였다. 영화 속에서 자기는 사라지고 캐릭터만 남기는 능력과 후지지 않은 작품을 골라내는 감식안을 그는 지녔다. “저는 논리적으로 시나리오를 분석하지 못해요. 읽어서 ‘좋다’ 또는 ‘나쁘다’ 밖에 없어요.”

영화 10편 가운데 〈해피엔드〉(1999년)를 그는 “내가 어떤 배운지 알게 해준, 스스로 대견했던 작품”으로 꼽는다. 〈해피엔드〉의 최보라는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바람을 피우러 갈 수밖에 없는 여자다. “이 역을 맡을 때 엄마를 설득해야 했어요. 가슴도 나오냐고 하셔서 그렇다고 했더니 ‘너 시집도 못가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하셨죠. ‘엄마 나 결혼 잘 시키려고 배우시킨 거 아니잖아’라고 했어요. 그건 저 자신한테 하는 다짐이기도 했어요. ‘그 역 때문에 나를 다른 시선으로 보는 남자라면 날 차지할 수 없어’라고 속으로 말했어요. 〈해피엔드〉 끝나고 언론에 무척 화가 났어요. 남자배우는 벗는데 여자 배우는 안 그렇다면서 여배우들의 자세에 대해 꾸짖던 언론이 이번엔 영화 속 역할이 마치 제 사생활인양 (노출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언론의 자세가 안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1999년, 그와 심은하, 고소영이 여배우 트로이카로 꼽힌 적이 있다. 심은하는 더 이상 스크린에서 볼 수 없고, 고소영은 배우로서 역량을 보여주는 데 고전 중이다. 34살이고 올 초 결혼한 그는 앞으로도 스크린 안에서 곰삭아갈 거라 안심하게 한다. “카메라 앞에 서면 세상에 버려진 것처럼 외로워요. 그런데 마냥 즐겁기만 하다면 계속 해나갈 수 없었을 거 같아요. 연기할 때가 저 자신을 가장 많이 느끼는 순간이에요. 여배우로 살아남는 방법은 기다림밖에 없어요. 궁지에 몰려도 초조해하지 않는 거죠.”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영화 ‘밀양’
영화 ‘밀양’
밀양 구원의 빛은 어디에 숨었을까

남편·아이 잃고 절망에 빠진 여자
주위 맴돌며 사랑과 관심 표현하는 남자
영혼 쉴 곳 갈구하는 인간 내면 그려

요즘 한국 영화에서 구원, 용서, 화해는 일정한 작품성을 얻는 필수적인 밑거름처럼 여겨질 정도로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주제다. 그러나 감독의 개성에 따라 구원과 화해의 양상은 사뭇 다르게 펼쳐진다.

박찬욱이 처절한 복수 끝에서의 깨달음을 이야기했다면, 김기덕은 소통할 수 없었던 영혼들의 초월적인 구원을 말한다. 100편째 영화로 돌아온 임권택 감독은 예술혼을 통해 말없이 소통하는 경지에 올라 오래된 감정의 앙금들을 털어낸다. 이창동 감독의 새 영화 <밀양>은 좀 더 일상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밀양’이라는 지명 안에 숨은 ‘빛’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칠흑같이 어두운 삶 속에서 영혼의 ‘빛’을 향해 자지러지듯 절규하는 인물의 내면을 담아낸다.

‘숨은 빛’ 혹은 ‘비밀의 빛’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밀양’은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동시에 이 영화가 전하려는 주제와 의미상으로 맞물린다. 밀양은 주인공 신애(전도연) 남편의 고향이며 그가 언제나 서울을 떠나 살고 싶어 했던 곳이다. 남편을 잃은 신애는 아들을 데리고 갑자기 그곳에 살기로 마음먹는다. 남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던 신애에게 밀양은 애정의 대상이라기보다 극복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은 남편에 대한 감정을 극복하기도 전에 자신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아들 준이 유괴되어 살해당한다. 정신적 충격으로 신애는 슬픔과 분노가 뒤엉킨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진다. 신애가 밀양에 도착하던 첫날부터 묘한 인연으로 얽히게 된 카센터 주인 종찬(송강호)은 그의 주위를 맴돌며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면서 신애를 지켜본다. 신애가 밀양에 도착하던 첫날부터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카센터 주인 종찬(송강호)은 그의 주위를 맴돌며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면서 신애를 지켜본다.

영화 ‘밀양’
영화 ‘밀양’

<밀양>은 기독교적 구원의 의미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의 감정적 한계라는 모티프를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로부터 고스란히 빌려 왔다. 기독교 색채를 전면에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한국 영화적 풍토에서 이 작품은 다소 이례적이다. 그러나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실존적 위기를 맞은 인물의 내면 그리고 거짓된 구원과 용서를 통한 자기 기만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이창동 감독은 이것을 기독교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보편 정서와 종교 일반의 문제로 풀어나간다.

뿐만 아니라 이청준의 소설에서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화자였던 남편의 존재를 지우는 대신 종찬이라는 인물을 창조해 멜로 드라마 요소를 가미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일정한 감정적 거리를 두고 있는 소설의 담담한 어조는 그대로 유지한다. 비극을 다루되 신파로 흐르지 않고, 특정한 종교에 대한 찬동이나 비판으로 머무르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갖는 큰 미덕이다. 더 나아가 용서와 구원에 관여할 수 있는 있는 인간과 신의 입지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을 끈질기게 던지며, 원작과는 다른 긍정적인 가능성을 찾는다.

<밀양>의 뛰어난 균형 감각은 많은 부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빚지고 있다. 언제나 그가 가진 연기의 정점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국면을 보여주는 배우 전도연과 송강호의 매력은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발휘된다. 질식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세상과 소통을 거부하고 자기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신애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소화한 전도연과 어디선가 한 번은 만났을 것 같은 종찬이라는 캐릭터와 하나된 것처럼 보이는 송강호의 연기 호흡이 이 영화의 역동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

신애의 끝도 없는 절망감으로 하강곡선을 그리던 감정선은 종찬이라는 인물이 갖고 있는 유머와 현실감을 발판으로 탄력적으로 상승하면서 두 시간을 훌쩍 넘는 이 작품이 시종일관 서사적 긴장력을 잃지 않도록 한다. 두 주연배우뿐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숨은 빛처럼 반짝거리는 조연들의 연기가 철학적인 주제에 현실의 살을 입히는 역할을 하며, ‘밀양’을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어 낸다.

김지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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